[경제 돋보기]
루스벨트 대통령이 보낸 가상 편지 [김태기의 경제 돋보기]
[한경비즈니스 칼럼 =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뉴딜(new deal), 새로운 약속. 문재인 대통령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경제 위기 해법이다. 원래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 대공황을 해결하려고 내놓은 일련의 방대한 정책을 말한다.

미국의 뉴딜은 대량 실업 구제(relief), 경기 회복(recovery), 제도 개혁(reform)에 초점을 맞췄다.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고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렸고 노동 기본권 등을 보장했다. 한국에는 당연한 정책이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을 꺼렸던 미국으로서는 뉴딜이라고 할 만큼 경제 정책 전반의 대전환이었다.

미국의 뉴딜은 대량 실업과 경기 회복에 효과가 그다지 크지 못했고 경기 침체를 길어지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수정자본주의와 복지 국가를 지향해 정부의 역할 전환과 정책의 적극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한국은 경제 발전 전략에 이미 미국의 뉴딜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국가 주도 성장이라는 비판까지 받는다. 당시 미국과 지금의 한국을 비교하면서 문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일을 루스벨트 대통령이 보낸 가상 편지로 정리해 본다.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께. 저를 존경하신다니 영광입니다. 뉴딜을 하신다기에 몇 가지 충고를 드립니다.

첫째, 미국의 대공황은 근본 원인이 산업 혁신으로, 생산성이 올라갔지만 노동자의 임금은 그렇지 못했던데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미국과 정반대고 게다가 특이하게도 노동조합이 고임금과 고용 보호의 혜택을 누리는 대기업·공공 부문에 집중돼 있으면서도 전투적이어서 소득 불평등이 커지고 비정규직이 많아져 경기가 침체된 것입니다. 뉴딜은 이런 모순을 해결해야 합니다.

둘째, 뉴딜을 디지털에 둔 일은 잘한 겁니다. 한국은 디지털 사회간접자본에도 투자를 많이 해왔고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아 디지털 기술 활용에 유리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장점을 살리지 못해 왔습니다. 4차 산업혁명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 기술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게 규제를 풀고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대기업과 격차를 줄이며 직업 훈련을 강화하는 뉴딜이 필요합니다.

셋째, 재정으로 경제를 성장시키는 소득 주도 성장은 제가 생각한 뉴딜이 아닙니다. 저는 재정 균형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재정은 경기를 일시적으로 부양하지만 너무 의존하면 국가 부채가 커져 또 다른 위기를 일으킵니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빨라 유럽에서 봤듯이 재정 악화가 불가피합니다. 정부의 지원은 취약 계층에 집중해도 모자랍니다. 효과가 없는 재정 사업은 과감하게 폐지하고 지속 성장이 가능한 나라를 만들도록 뉴딜 하기 바랍니다.

넷째, 미국에도 저를 들먹이며 인기를 올리려는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엘리트를 위한 제도라며 일반 사람을 선동했지만 저는 여기에 반대합니다. 제 전임자이자 경쟁자인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정책을 대폭 수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이 제 이상이지만 평등은 자유를 위한 것이고 평등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커져야 하지만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포퓰리즘이 설치지 못하게 하는 뉴딜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진작 저의 뉴딜을 많이 따랐기에 새삼 뉴딜이라면 ‘바뀐 게 없는데 뭐가 뉴딜인가’라는 말을 듣기 쉽다는 점을 간언(諫言)하며 이만 줄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9호(2020.05.30 ~ 2020.06.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