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라증권의 ‘대변신’

일본의 노무라증권이 올해 신입 사원 연봉을 기존의 3배로 인상하기로 했다. 노무라증권은 현재 240만 엔(약 3000만 원) 수준인 신입 사원 연봉을 투자은행 사업부문과 거래·연구·법무부문 직원들의 경우 650만 엔(약 8125만 원)까지 올리기로 했다.

노무라가 신입 사원들의 연봉을 파격적으로 인상한 것은 2008년 가을 인수한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신입 직원들과 연봉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다. 리먼브러더스는 파산 직전 일본 대학에서 신입 사원을 모집하면서 첫해 연봉으로 650만 엔을 주기로 약속했다.

노무라도 이를 고려해 신입 사원 연봉을 끌어올리기로 한 것이다. 연봉 인상 발표 직후 국제금융가에선 “노무라증권이 마침내 글로벌 금융회사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본의 노무라증권이 변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인수 이후 연봉 체계를 미국식으로 바꾸고 조직도 글로벌 사업 체제로 개편했다. 글로벌 금융회사로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신엔 물론 리먼브러더스의 인수가 큰 발판이 됐다. 노무라는 리먼브러더스의 유럽과 아시아부문 인수를 계기로 해외 매출 비중을 크게 늘리며 수익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가운데 9일 도쿄 니혼바시 인근의 노무라증권 본사
/허문찬기자  sweat@  20060209
일본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가운데 9일 도쿄 니혼바시 인근의 노무라증권 본사 /허문찬기자 sweat@ 20060209
◇ 리먼 인수 성공 평가 = 노무라증권의 지주회사인 노무라홀딩스는 지난해 4분기(10~12월) 102억 엔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2분기(114억 엔)와 3분기(277억 엔)에 이어 3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해외 사업부문 수익 규모가 일본 국내 수익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리먼브러더스 인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2008년 9월 리먼의 유럽·아시아·중동 부문을 인수했던 노무라증권은 작년 1분기까지 5분기 연속 순손실을 냈다. 리먼 인수에 따른 후유증이었다. 이 때문에 노무라증권은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금융 위기 당시 리먼을 인수한 것이 허영은 아니었다는 점을 증명해 보인 셈이다.

노무라증권은 한발 더 나아가 “올 3월 말 끝나는 2010년 사업연도는 3년 만에 흑자를 낼 것”이라고 자신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자본시장 회복과 함께 리먼 인수 효과로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노무라는 그동안 일본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아시아 시장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어느 정도 활약했지만 글로벌 IB들에는 경쟁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리먼을 인수한 노무라의 위상은 달라졌다. 노무라의 4분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말 글로벌 시장에서 1.5%에 불과했던 IB 부문 시장점유율은 작년 말 5.2%로 높아졌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LSE)에선 작년 말까지 6개월 연속 주식거래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유럽 지역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유럽 주식시장 분석 능력을 설문 조사한 결과 전년보다 8단계 뛰어올라 미국 은행인 JP모건체이스와 나란히 2위를 차지했다. 미국 경제 전문 채널 CNBC는 “리먼을 인수한 노무라가 글로벌 금융 위기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라고 했다.

AFP도 “노무라가 리먼 인수로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했다”고 평가했다. 노무라증권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로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해외 지점을 모두 인수하면서 8000명의 리먼 직원을 고용 승계했다. 인수 전 노무라증권 직원 수는 1만8000명이었다.

◇ 성공 요인은 글로벌화 = 노무라의 성공 비결은 한마디로 글로벌화로 요약할 수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미국 외 지점을 모두 인수한 노무라증권은 보수 경력 관리 등 인사 시스템 전반을 리먼의 ‘영미 방식’으로 바꿨다.

최근 노무라증권 인사부는 기존 노무라 직원들에게 서구형에 가까운 성과와 보수를 연결하는 새로운 근로계약 체결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노무라는 앞으로 성과에 밀접히 연관된 보수 체계를 도입하고 개인별 보수 격차도 크게 할 방침이다.

노무라는 많은 서구 투자은행들보다 보수를 적게 주면서 고용을 보장해 왔다. 일본식 기업 문화 그대로다. 실제 씨티그룹의 비크람 팬디트 최고경영자(CEO)가 2008년 혼자서 1082만 달러의 연봉을 받을 때 노무라증권의 이사 8명과 임원 13명에게 총 1640만 달러가 지급됐다.

노무라가 성과급 중심의 인센티브로 보수 시스템을 바꾼 것은 세계적 금융회사로 변모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노무라는 직원들의 경력 관리 체제도 확 바꿨다. 그동안 여러 부서를 돌면서 다방면에 능력을 갖춘 직원을 양성하던 일본 방식을 버리고 한 부서에서 집중적으로 머물러 전문가가 되도록 하는 방식을 채용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양태도 변했다. 노무라증권 임원은 “리먼 인수 이후 큰 변화 중 하나는 사내 대화의 절반 이상, e메일의 70%가 영어로 이뤄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최강의 증권사로 군림하고 있는 노무라지만 세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바로 글로벌 금융 인력이 부족해서였다. 와타나베 겐이치 노무라 사장이 “노무라에 대한 지명도는 없는 것과 동일하다”고 한 것이나 ‘노무라는 투자 타이밍을 모른다’는 시장의 평가가 나온 것도 모두 글로벌 금융 인력의 절대적 부족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노무라는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던 금융권 임직원들의 임금을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하면서 ‘우수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섰다. 이는 리먼브러더스 출신 인력들이 노무라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리먼 효과 ‘톡톡’…글로벌 금융사 재탄생
◇ 이제 목표는 미국이다 = 노무라증권은 최근 미국에서 30억 달러(약 3조4800억 원) 규모의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했다. 노무라가 달러표시 채권을 발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노무라는 이 조달 자금을 바탕으로 미국 금융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노무라가 발행한 각각 15억 달러 규모의 5년 만기와 10년 만기 채권은 시장에 나와 1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끌어들였다. 채권 수익률은 5년물이 5%, 10년물은 6.7%로 미국 국채보다 각각 2.75%포인트와 3.1%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손버그 투자 자문 회사의 론 에릭슨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노무라는 비슷한 수준의 해외 금융회사들과 비교할 때 (회사 입장에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채권을 발행했다”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노무라가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고 이전에 미국에서 채권 발행이 없었던 점이 (낮은 조달비용에)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노무라증권은 “이번 채권 발행은 미국 법인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라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아시아 IB 사업부문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 중이다. 작년 4월 말 기준으로 720명이던 미국법인 직원 수를 오는 3월 말까지 1600여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리먼 인수를 계기로 오랜 숙원인 월스트리트 진출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라증권이 4월 1일자로 사업 법인의 담당을 세계 공통의 섹터(산업)별로 재편한 것도 미국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다. 노무라는 국내 사업 회사를 담당하는 기업금융본부의 체제를 변경했다.

전기·정밀소재·에너지·부동산·헬스케어 등 10개 업종으로 부서를 새롭게 분류한 뒤 유럽이나 아시아 등 해외 기업 담당과 통합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인수·합병(M&A)의 자문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지주회사인 노무라홀딩스는 ‘리스크 자문그룹’을 신설해 글로벌 사업 확장에 따른 리스크 관리 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미국을 향한 노무라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