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의 아버지]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법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집안 모든 가구와 가전제품에 빨간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식구는 이사했다.

3남매 모두 각방이 있었던 집에서 이사 간 곳은 하나의 방에 모든 식구들이 모여서 잠을 자야 하는 곳이었다. 유년 시절에 우리 집에는 친인척이 많이 오고 갔다.

아버지는 전남 장흥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서울로 올라와 고생하시며 시작한 작은 일이 큰 사업으로 성장해 서울과 인천 지역에 여러 채의 집을 보유했었다. 그래서 장흥 시골에서는 아버지가 성공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고 그래서 친가의 사촌들과 외삼촌들이 우리 집에 머무르며 일을 배웠다.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이 집에 컬러텔레비전이 있는 사람, 자동차 있는 사람 등 집안 형편을 묻는 질문을 할 때 손을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이 있고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아버지는 우리 삼남매를 데리고 바다, 강, 산 등에 다니셨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한 유년 시절 사진이 많이 있다. 하지만 청소년기 사진은 거의 없다. 집안에 빨간딱지가 붙은 이후 넉넉했던 모든 것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변했다. 주인집 아줌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보았고 등록금이 밀리는 상황에서 담임선생님 눈치와 친구들에게 부끄러움이 생기면서 학교 가는 것이 싫어졌다. 그런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늦잠을 주무신 적 없이 항상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 후 단정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가 늦은 밤에 돌아오셨다.

명절에 시골에 내려가면 아버지는 집안 형편과 다르게 늘 넉넉한 인심을 쓰고 오곤 하셨다. 아버지의 그런 이기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도 아버지만 멋있는 사람이고 시골에 주고 오는 돈이면 부족한 생활비를 채울 수도 있을 텐데, 왜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들을 이렇게 고생하게 하는지 내 어린 눈에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밉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다. “사람은 자신보다 더 가진 사람과 비교하는 것보다 덜 가진 사람을 생각하며 감사와 행복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어린 나는 못 가진 자의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 내가 알게 된 아버지의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강하고 성공한 분이셨다. 아버지는 이 글에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상황에서 포기할 수 있는 자신을 일으키신 분이고 늘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사업에 실패해 자신을 놓아버리는 사람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집에서 백수가 되어버리는 사람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한 분이셨는지 늦게야 알 수 있었다. 얼마 있으면 칠순의 나이지만 현재도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새로운 아이템과 기회를 고민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공은 넘어지는 횟수보다 한 번 더 일어서는 것”이라는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말처럼 아버지는 성공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신 것이었다.

2003년 헤드헌팅 사업을 시작했고 7년이 흐르는 동안 내게도 시련이 오고 갔다. 힘든 시기를 겪던 중에 예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박 이사님이 “이 대표는 오뚝이 근성을 갖고 있잖아! 머지않아 다시 일어설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내게 좌절에서 다시 일어서는 법,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법을 알려 주신 것이었다. 다시 일어설 때, 희망을 새롭게 만들 때 나보다 더 가진 사람과 비교할수록 그들보다 내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함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 자신을 짓누르게 되지만 덜 가진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으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셨던 아버지의 귀한 경험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아! 나의 아버지]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만드는 법
이경임 다이아나컨설팅 대표


1973년생. 세진컴퓨터랜드 및 전자신문 인터넷 마케팅 근무. 2003년 헤드헌팅 전문회사 다이아나컨설팅을 설립해 인재 스카우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 대학에서 취업 강의를 하고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