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아이콘 따라잡기 여덟 번째

창간 10주년을 맞은 한 남성 패션 잡지는 얼마 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남자 배우 중 겸손과 정중함을 지키고 정직과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남자 배우 4인으로 이병헌·정우성·권상우·송승헌을 선정했다.

그리고 그들의 블랙 턱시도 컷을 표지로 하여 네 종류의 창간 기념호를 이례적으로 발행했다. 모두 각기 다른 매력으로 멋있었지만 필자의 베스트 커버는 단연 카리스마 넘치는 이병헌의 것이었다.

“예전엔 오히려 나이가 들어 보이고 싶어 슈트를 많이 입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완벽하지 않으면 아예 슈트를 입지 않게 됩니다.”

이병헌이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패션관에 대해 이야기 한 대목이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그의 슈트 내공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남자에게 슈트는 철저히 완벽해야만 하는 옷이다.

그가 할리우드 첫 진출 작인 영화 ‘지.아이. 조(G.I. JOE)’ 홍보 차 레드 카펫에 섰을 때의 모습도 그가 왜 이 시대의 스타일 아이콘인지 설명하기 충분하다. 고풍스러운 울 슈트는 기괴한 장신구의 도움 없이도 대한민국에서 온 최고의 영화배우라는 존재감과 기품을 대중에게 어필했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완벽하게 흐르는 슈트의 피트는 (그가 할리우드에서 아직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동양계 남자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오, 저 멋진 사람, 배우? … 멋있다!”라는 궁금증과 관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는 분명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천적으로 비율 좋은 신체를 가지고 있는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슈트를 입으면 태가 나는 넓은 어깨와 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배우다운 면모와 태도(attitude)를 살릴 수 있는 소위 ‘슈트발’이 존재한다. 키가 작아도 그가 스크린에서 더 꽉 차 보이는 이유다.

남자에게 슈트는 가장 완벽해야 하는 옷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그는 블랙 슈트의 전형을 교과서처럼 보여준다. 어깨와 허리를 감싸는 완벽한 피트와 사이즈, 자신의 얼굴과 목 사이즈를 고려한 화이트 셔츠 디테일의 섬세함은 그의 눈빛과 더해져 느와르의 캐릭터를 완성했고, 그 덕분에 블랙 슈트가 그의 시그너처 스타일이 됐다.
[황의건의 Style&Story] 블랙 슈트 카리스마, 이병헌
반면 영화 ‘놈 놈 놈’에서는 같은 블랙 슈트 차림을 하고 있지만 캐릭터에 맞게 좀 더 와일드하고 마초적이다. 재킷의 피트는 좀 더 과감한 것을 선택했으며 거기에 단추를 두개 정도 더 풀어 헤친 깃이 깊고 큰 화이트 셔츠를 입었다.

또 버클 장식이 커다란 웨스턴 스타일의 벨트와 검은 가죽 장갑, 눈은 깊은 스모키 아이라인으로 마무리해 캐릭터를 살렸다.

여자와 다르게 남자는 공적인 자리에서 필요한 의상에 다양한 옵션이 별로 없다. 그저 슈트 한 벌에 잘 닦은 구두뿐이다. 그런 자리에서는 특히 화려한 장식도, 분에 넘치는 백도 남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그만큼 슈트가 더 완벽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본인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보완하고 살려낼 수 있는 자신만의 슈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찾는 것이 요즘 남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과제다.

인터넷으로 이탈리아 남자들이 슈트를 입고 자연스럽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진들을 한번 클릭해 보라. 대부분 키도 작고, 배가 나오고, 머리가 큰 평범한 우리 한국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들이 훨씬 더 스타일리시하게 보이게 해주는 이병헌의 ‘슈트발’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슈트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잘 맞는 슈트 한 벌을 고르는 안목이 없다면, 그것을 소화해 낼 스타일 내공이 없다면 슈트를 입고도 멋져 보일 꿈은 그저 꿈으로 남아야 할지도 모른다.

황의건 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