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적장의 머리는 최고의 전리품…서구 신화에선 창조의 원천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목 잘린 이를 위한 ‘참수(斬首)’의 변명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후반부는 정유재란의 막바지가 배경이다. 조선을 도우러 온 명나라 장군 진린은 전쟁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이를 눈치 챈 일본군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기 부하들의 수급(首級)을 뇌물로 바치고 일본 본토로 달아났다. 머리를 자르는 것을 참수(斬首), 잘려진 머리를 수급이라고 한다. 진린과 마주 앉은 충무공이 먼저 물었다.

“적선들이 장군께 다녀갔다고 들었소이다.”

“그렇소. 고니시가 사람을 보내왔소. 적들은 전쟁을 포기했소. 통제공, 이미 끝난 전쟁이오. 고니시가 내게 선물로 수급 2000개를 주겠다고 합디다. 남해도에 연락선을 보내 수급을 실어올 터이니 배를 한 척 통과시켜 달라고 했소.”

‘이 자를 여기서 베어야 하나. 허리에 찬 칼이 천근의 무게로 늘어졌다. 임진년에 총 맞은 어깻죽지가 쑤셨다. 여기서 이 자를 베어버리면 아마도 사직은 끝장이 나고 전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세계 전체를 적으로 맞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겨우 말했다.’

“이번 싸움에서, 모든 수급을 장군께 바치리다.”


수급은 공로를 따지는 최고의 척도
예로부터 수급은 공로를 따지는 최고 척도였다. 한고조 유방이 천하의 패권을 잡은 뒤 공신들을 숙청하던 시절이다. 종리매는 원래 항우 휘하의 장수였는데, 한신이 겁도 없이 수배령이 내린 종리매를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있었다. 소문은 돌고 돌아 유방의 귀에 들어갔다. 놀란 한신은 종리매의 수급을 들고 유방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미 독이 오른 유방의 심사를 달랠 길이 없었다. 한신 역시 종리매처럼 참수되고 만다. 제 부하들의 머리를 바치고 목숨을 구걸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권력투쟁에 패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참수된 것?낮?말이다.

아이러니한 일은 또 있다. 프랑스 혁명기에 공포정치를 주도하며 정적 당통을 단두대로 보냈던 로베스 피에르. 단두대를 발명하기도 했던 그는 4개월 뒤에 자신이 만든 단두대에서 참수됐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에 나오는 주인공 맥베스도 반란군 수괴의 목을 베고 그 머리를 성벽에 높이 내건다. 그러나 종국에는 왕위를 찬탈한 죄로 목이 베이고 그의 머리가 성벽에 효수(梟首)된다.

참수나 효수는 동서고금의 다반사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믿고 있던 부루투스 등 반대파 정적들에 의해 암살당하고 로마 시내에 효수된다. 개화파 지식인 김옥균이 주도했던 갑신정변(1884년)은 ‘3일 천하’로 끝난다. 김옥균은 일본을 거쳐 청나라로 망명했다. 정적들은 집요했다. 결국 김옥균은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조선 정부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된다(1894년). 본국으로 송환된 그의 시체는 능지처참됐다. ‘대역부도 옥균(大逆不道 玉均)’이라는 깃발과 함께 한성부 저자거리에 효수된 김옥균의 사진이 지금까지 전해온다.

전쟁 소설 ‘삼국지’는 달리 보면 참수의 기록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제갈량이 울면서 사랑하는 부하 마속의 목을 베었던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일 것이다. 물론 백문루에서 조조가 여포의 목을 벤 일, 계륵 사건으로 유명한 양수가 조조의 미움을 사서 참수 당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일도 있었다. 군대를 끌고 허도를 지나가던 조조가 “민간인 소유의 보리밭을 함부로 밟으면 참수하겠다”는 명령을 내렸다. 하필 그때 날아오르는 비둘기에 놀란 조조의 말이 보리밭을 침범한다.

“내 스스로 목을 베어 군령의 준엄함을 보이겠노라!”
부하들이 조조의 자결을 극구 말렸다. “승상이 보리밭을 침범해 마땅히 참수해야 하지만 특별히 머리털을 자르는 것으로 대신하니 그대들은 더욱 조심하라!”
마지못해 칼을 거둔 조조는 이렇게 지시했다. 조조의 연기가 일품이다.

‘삼국지’ 최대 비극의 주인공은 관우다. 번성에서 위나라 조조의 군대와 대치 중이던 관우는 형주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다. 불행하게도 오나라 여몽의 계략에 빠져 아들 관평과 함께 사로잡힌다. 관운장을 높이 산 손권은 한나절이 넘게 “항복하라”고 설득한다. 충의의 화신 관우가 넘어갈 리가 있나. 끝내 손권은 관우의 목을 벴다. 유비의 복수가 두려웠던 손권은 관우의 수급을 상자에 넣어 조조에게 보낸다.

관우의 수급을 받은 조조는 “우리 관공께서 그간 별고 없었소”라며 비아냥거렸다. 바로 그때 관우가 눈을 부릅떴다. 산발한 머리도 바람에 흩날리듯 움직였다. 혼비백산한 조조는 그 길로 병을 얻어 드러누웠다. 후환이 두려워 관우를 후하게 장사지내긴 했지만 사건의 충격으로 조조는 결국 죽고 만다.


참수, 창조와 변환을 낳다
중국 민간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온다. 허무하게 죽은 관우의 혼령이 형주 일대에 출몰했다. 하루는 예전에 관우를 위기에서 구해준 승려인 보정대사 앞에 관우의 혼령이 나타났다.
“대사님! 제발 저의 목을 찾아주세요!” 보정이 나무랐다.

“관공! 세상에는 인과(因果)가 있는 법이요. 관공이 그리 말하면 그대가 참수한 화웅과 안량과 문추의 목은 어찌해야 하오? 조조에게서 떠나올 때 애꿎게 죽인 다섯 관문의 장수(五關六將)의 목은 또 어찌해야 하오?”
할 말을 잊은 관우가 보정대사에게 큰절을 하고 떠났다고 한다.

의형 관우를 잃은 장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부하들에게 린치까지 가한다. 분을 품은 부하 범강과 장달이 몰래 장비의 목을 벴다. 둘은 장비의 수급을 들고 오나라로 항복하러 간다. 도중에 손권이 유비에게 화친을 청했다는 소문을 들은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수급을 장강에 내던지고 줄행랑을 쳤다. 장비의 머리는 정처 없이 흘러가다가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렸다. 기겁한 어부가 다시 강물에 버렸으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장비가 나타났다.

“내가 어찌 원수의 나라인 오나라로 가겠소? 제발 나를 촉나라 땅에 묻어 주시오!” 어부는 사람들과 합세해 장비 말대로 고이 묻어 주고 사당까지 지어 줬다.

알다시피 머리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요하다. 몸 전체를 대표한다. 타인과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표지다. 따라서 사람의 머리를 자르는 일은 목숨 자체를 끊는 것이다. 투쟁과 갈등의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참수와 효수는 일벌백계(一罰百戒)가 목적이었다. 한마디로 “까불면 죽는다”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항거와 모반은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사족.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다. 그는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 버린다. 그 순간 메두사의 목에서 날개 달린 천마(天馬)인 페가수스가 태어난다. 이건 어떤 심리학적 의미가 있을까. 분석심리학자인 에드워드 에딘저는 “메두사에 들어 있던 부정적 에너지를 잘 변형하면 긍정적·창조적인 힘을 가진 페가수스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살벌한 역사와 달리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신화에서 참수는 긍정적·창조적인 변환을 상징하기도 한다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흔히 직장에서 해고되면 “목이 잘렸다”고 말한다. 혹시 지금 이런 분들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우울한 현실을 딛고 일어나 천마처럼 화려하게 부활했으면 좋겠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