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조직을 파괴하는 필패 신드롬 ‘확신의 덫’
장 프랑수아 만초니·장 루이 바르수 지음│이아린 옮김 | 위즈덤하우스│440쪽│1만8000원

밤을 새워가며 만든 기획안을 내놓은 A 대리. 누구보다 뛰어난 성과라고 자부하며 제출했지만 돌아온 상사의 대답은 뜨뜻미지근하기만 하다. 매번 이런 식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그에게만 가면 평범한 아이템으로 전락하곤 한다. 반면 하등 뛰어날 것도 없는 동료의 결과물엔 언제나 최상급 칭찬 세례가 쏟아진다. 비슷한 실수를 해도 내게는 심각한 경고가, 동료에겐 너그러운 관용이 뒤따른다.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자책도 해보지만 대답은 늘 같다.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장 프랑수아 만초니가 위와 같은 주제로 15년간 3000여 명의 비즈니스맨들을 만났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A 대리에게는 잘못이 없다. 문제는 뛰어난 기획과 아이디어를 몰라준 상사에게 있다. 저자는 오랜 기간 상사와 부하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한다. 아무리 일을 잘하는 부하 직원이라도 상사로부터 일을 잘 못한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실제로 무능해져 버린다는 것이다. 부하 직원이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상사는 직원이 성공할 의지가 없다거나 업무의 우선순위를 모른다거나 심지어 지시??따르지 않았다는 등 어떤 이유에서든 부하 직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번 낙인찍힌 부하는 상사의 낮은 기대치에 맞는 성과를 내게끔 유도되고 결국에는 개인도 조직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역학 구도를 ‘필패 신드롬(set-up-to-fail syndrome)’이라고 명명한다.

어느 조직이나 필패 신드롬을 피해가기 어렵다. 심리학적으로 자신의 주관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인식하는 ‘확증 편향’ 때문이다. 부하 직원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상사처럼 ‘확신의 덫’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한다.

저자는 조직에 문제가 있는 관리자·팀장·리더라면 무엇보다 확신의 덫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부작용이 당사자들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조직과 회사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섣부른 확신에서 시작된 파장은 조직 전체를 무기력에 빠뜨리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다. 확신의 덫은 결코 기업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의 확신, 성적이 나쁜 선수들을 대하는 코치의 확신 등 누구나 쉽게 빠질 수 있는 덫이다. 저자는 상사와 부하, 교사와 학생, 코치와 선수가 서로를 격려하고 지?幣纛막館?더 나은 성과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이종우의 독서 노트
‘과학의 민중사’
과학을 탄생시킨 농부와 대장장이
[Book] 조직을 파괴하는 필패 신드롬 ‘확신의 덫’

클리퍼드 코너 지음│김명진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664쪽│2만7000원

과학은 경험의 산물이다. 위대한 천재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걸 만들어 낸 경우도 있지만 오랜 시간 축적돼 온 경험이 서로 얽히면서 발명으로 이어진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중요한 과학적 결과물의 이면에는 언제나 민중이 자리 잡고 있다.

히포크라테스 시대의 의학을 보자. 체조 선생과 신체 훈련 지도사로부터 골절과 탈구 치료법을 배운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아다녔다. 의학 지식은 여러 환자를 접하면서 배운 치료법이 도제식으로 전수되는 정도였다.

중국에서는 아예 소외 계층이 과학을 이끌었다. 칼 만드는 기술자가 보다 단단한 재질을 얻기 위해 탄소를 섞는 과정에서 강철이 탄생했고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천구의를 이용해 천체 관측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것 역시 노비 출신인 경순이란 인물이었다. 화학·야금술·재료과학은 고대의 광부·대장장이·옹기장이들이 생산해 낸 지식이 기반이 됐다. 수학은 그 존재와 발전의 많은 부분을 수천 년에 걸쳐 측량사·상인·서기들에게 빚지고 있다.

산업혁명기의 업적 역시 경험에 기반을 뒀다. 16세기까지 시계는 하루에 몇 분이나 차이가 날 정도로 조악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를 개량하려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됐는데 금속 세공사가 정교한 솜씨로 톱니바퀴를 깎아낸 덕분에 현실화될 수 있었다. 증기기관을 만든 제임스 와트는 도제 기간조차 채우지 못해 길드에서 쫓겨난 기계공 출신이었다.

과학에서 업적을 남긴 사람 중 귀족이나 왕족도 있긴 있었다. 대항해 시대를 이끈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가 대표적 예인데, 이런 인물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특권 계급이었던 사람조차 대부분이 대학의 자리나 다른 후원의 형태를 이용해 그 지위에 올라선 보통 인물들이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귀족들이 손노동을 경멸했기 때문인데, 기원전 1100년께 이집트의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학문에 뜻을 두고’ 손노동을 피하라는 조언의 전통이 3000년 가까이 이어져 왔다.

양자 이론이나 DNA 구조를 규명한 공로를 장인이나 농부에게 돌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근대과학을 마천루에 비유한다면 20세기에 이뤄진 과학의 승리는 비천한 많은 이들이 만들어 낸 경험의 토대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만약 과학을 자연에 대한 지식이라고 이해한다면 과학이 자연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농부·선원·대장장이-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ee@imvestib.com



짝 찾기 경제학
[Book] 조직을 파괴하는 필패 신드롬 ‘확신의 덫’
데이트 시장의 변화와 남녀의 사랑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인생의 동반자를 찾는 과정에 적용되는 경제학의 원리를 파헤친 책. 전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출신이자 스탠퍼드경영대학원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 역시 ‘돌싱’이다. 2010년 이혼한 저자는 돌싱이 되어 20년 만에 데이트 시장에 뛰어든다. 각종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짝을 찾던 저자는 이 시장이야말로 철저하게 경제학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시장·경제학·데이트의 움직임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폴 오이어 지음│홍지수 옮김│청림출판│300쪽│1만5000원



완벽한 프로젝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Book] 조직을 파괴하는 필패 신드롬 ‘확신의 덫’
해외 신도시 건설, 선박·정보기술(IT)·발전·석유시추·담수화 같은 초대형 일감은 어떻게 수주하는 걸까. 이런 프로젝트는 누가 어떻게 짜고 돈은 얼마나 벌었을까. 혹시 기획하는 사람은 기획만 하고 영업하는 사람은 영업만 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항상 투덜거리며 뒤치다꺼리만 한다고 여기지는 않는가. 포항공대 엔지니어링 대학원에서 프로젝트 관리를 가르치는 이성대 교수와 서울대 엔지니어링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과정을 맡고 있는 박창우 교수가 준비에서 완료에 이르는 성공 프로젝트 처방전을 제시한다.

이성대·박창우 지음│이콘출판│240쪽│1만4000원



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Book] 조직을 파괴하는 필패 신드롬 ‘확신의 덫’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로 세계의 지성으로 통하는 지그문트 바우만 리즈대 명예교수의 대담집. 신용카드로 저당 잡힌 사람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유행, 진보와 필패와 보수의 필승 등 모두가 풀고 싶어 하지만 해답을 알 수 없는 문제에 해답을 제시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8장으로 나뉜 대담집에서 저자는 지금까지 일부 제시돼 온 관점과 개념을 포괄적으로 재점검한다. 19세기 자본주의와 현대 자본주의의 차이, 더 이상 실현이 불가능한 ‘사회복지국가’에 매달리는 진보의 향수를 비판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조형준 옮김│새물결│320쪽│1만7500원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