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앞에 선 인간은 나약한 존재…자연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운명 갈리기도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프랑스혁명을 일으킨 가뭄과 우박
하필 왜 18세기 말에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을까. 사회과학자들은 대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심화된 데다가 나라의 재정이 파탄이 났다. 여기에 프랑스 민중의 구체제(앙시앵 레짐)를 전복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기후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은 사뭇 다르다. 정치권력이 왕족과 귀족에서 자본가 계급으로 옮겨가는 세계사적인 전환점이 됐다고 평가받는 것이 프랑스대혁명이다. ‘세계사 캐스터’의 저자인 로라 리는 혁명의 원인을 심각한 가뭄, 우박을 동반한 폭풍, 엄청난 혹한 등의 세 가지로 본다.

대혁명 바로 전 해인 1788년 봄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농사를 망쳐 식량 부족으로 허덕이던 차에 여름 들어서는 둘레가 40cm나 되는 초대형 우박을 동반한 폭풍이 프랑스 전역을 덮쳤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겨울에는 사상 유례가 없는 혹한이 들이닥쳤다. 생존 자체가 기적 같은 나날이었다. 혁명이 날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기상이변으로 민심 이반한 18세기 프랑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동한말년은 어땠을까. 역사학자들은 당시 황실 외척과 지방 호족들이 발호해 권력투쟁과 이권 챙기기에만 혈안이 돼 오랜 기근과 혹세무민에 찌든 민심이 이반되면서 각지에 반란이 일어났다고 기술한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의 분석은 좀 색다르다. 그는 동한말년의 중국은 소빙하기였다고 추정한다. 당시 중국의 연평균 기온이 오늘날에 비해 평균 1도 정도 낮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지구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하면 대재앙이 온다고 예상하는 기후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할 때 기온 1도 하강의 부작용은 엄청났을 것이다. 여기에 극심한 가뭄과 그에 따른 대기근의 조짐, 두 차례에 걸친 큰 지진과 일식, 역병의 창궐이 더해지면서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다는 설명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단순히 권력욕에 눈이 뒤집힌 일부 정치 세력이나 종교 세력의 부추김만으로 전국 각지에서 들불 번지듯이 민란이 일어나고 도적떼가 들끓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몇 년 전 동남아를 휩쓸고 간 쓰나미는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보라. 태풍이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수만 명의 이재민이 나오고 수천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후폭풍으로 생긴 약탈·방화·강간·폭동도 심각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속수무책이었다. 미국은 자연의 대재앙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21세기 미국도 사정이 이러한데, 고대인들은 오죽했으랴.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한 고대인들에게 각종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는 지도자의 부덕함의 소치이거나 심지어 망국의 징조로 간주되기도 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 초반부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건녕 2년 보름날 영제가 온덕전에서 좌정하려는 순간 문득 바람이 일더니 시퍼런 구렁이가 황제의 보좌를 차지했다. 땅을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우박과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건녕 4년 낙양에 지진이 나고 바닷물이 넘쳐 피해가 엄청났다.”

“광화 원년에는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는 일이 있었고 7월에는 옥당에 난데없이 무지개가 서고 산기슭이 온통 무너져 내리기도 했다.”

한편 ‘삼국지’가 전쟁소설인 만큼 위·촉·오를 막론하고 삼국 공히 기상이나 자연현상을 전술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적벽대전이다. 적벽대전 초기 조조에 대항해 손권과 유비가 손잡고 전쟁을 준비하던 시절이다. 오나라 도독 주유는 제갈량의 탁월한 재능에 대해 심한 질투심을 느꼈다.

“공명을 살려 뒀다가는 필히 후환이 될 것이다!”

그는 합법을 가장해 공명을 제거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우리가 화살 10만 개가 필요한데 만들어 줄 수 있겠는지요?” 주유의 부탁에 공명이 “이런 비상시국에 열흘은 무슨, 사흘이면 충분합니다”라고 화답했다. 주유는 ‘이 자가 제 무덤을 파는구나!’하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군법이 지엄하니 약속을 못 지키면 아무리 군사(軍師)라고 해도 엄히 다스리겠습니다.”


자연을 이용해 대승 이끈 제갈량
사흘째가 돼도 공명은 유유자적하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걱정이 돼 찾아온 노숙과 함께 공명은 배 스무 척에 짚으로 만든 인형을 가득 싣고 길을 나섰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안개 자욱한 강물을 헤치며 유유히 조조 진영으로 다가갔다. 공명은 군사들에게 꽹과리를 치며 함성을 지르게 했다.

놀란 조조 진영에서는 야간 기습인 줄 착각했다. 안개 때문에 선뜻 나오지 못하고 화살만 마구 퍼부었다. 순식간에 짚 인형에 화살 10만 개가 꽂혔다. 공명이 조조 진영을 향해 소리쳤다.
“조승상! 주신 화살은 고맙게 쓰겠소이다. 하하하!”

이것이 짚 인형 실은 배로 화살을 마련했다는 초선차전(草船借箭)의 고사다.

제갈량이 안개라는 자연현상을 기막히게 활용한 것이다. 이어진 전투에서 공명은 한겨울에 바람(동남풍)을 이용해 멋지게 조조의 선단(船團)을 일거에 불태운다. 조조의 80만 대군이 거의 전멸하다시피한 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것은 안개와 바람이라는 자연조건을 잘 활용한 전술의 승리였다.

조조는 여포를 공격할 때 여포의 근거지인 하비성이 기수와 사수의 두 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기수와 사수의 강둑을 무너뜨려 하비성을 물바다로 만든 것이다. 여포는 사로잡아 참수했다. 관우와 장비가 번성전투에서 위나라 우금의 군대를 물리친 것도 강둑을 무너뜨린 수공(水攻)작전 덕분이었다.

오나라 주유가 죽고 난 뒤 다시 손권을 치기로 한 조조는 그에 앞서 마초부터 치기로 한다. 조조는 마초의 성 앞에 토성을 쌓아 공략하려고 했지만 토질이 모래흙이라 여의치 않았다. 이때 지역의 한 노인이 꾀를 냈다.

“지금이 한겨울이니 토성을 쌓자마자 물을 부어 얼리세요.”

조조는 곧 콘크리트보다 튼튼한 ‘얼음’으로 성을 만들었다. 마초 군대는 궤멸됐다.

한편 조조와 유비가 매실주를 앞에 놓고 누가 천하의 영웅인지 논할 때 유비가 ‘천둥’ 소리에 놀라는 척 연기를 했던 일, 유비의 삼고초려 중에서 공명을 두 번째 찾아가는 도중에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관우와 장비가 불평을 늘어놓던 일, 적벽에서 완패하고 화용도를 거쳐 ‘폭우’까지 맞아가며 물에 빠진 생쥐 꼴로 퇴각하던 조조 일행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고대에는 ‘혜성’의 출현도 불길한 징조로 보았다. ‘삼국지’에는 공명이 혜성이 떨어지는 걸 보고 방통의 죽음을 직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족. 한국의 ‘제헌절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삼백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

현대 한국의 헌법 제정을 기리는 노래가 고대 신화의 풍백(風伯)·운사(雲師)·우사(雨師)와 같은 신격화한 자연 앞에 겸손한 모습을 노래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고대인들이 가졌던 자연 앞의 겸허함을 상기하라는 소리인가 보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