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피부에 와 닿는 현실 경제 해부학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는 B급 경제학’
우종국 지음┃실버라이닝┃462쪽┃1만5500원

왜 경제학 책을 펼치기만 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까.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는 B급 경제학’의 저자는 이에 대해 “교수·박사님들은 뛰어난 농부나 사냥꾼이지만 요리에는 서툴다”고 얘기한다.

한경비즈니스 기자로 10년 넘게 현실 경제의 현장을 꾸준히 관찰한 기자는 일상의 수많은 재료들을 버무려 멋진 ‘경제학’ 요리로 만들어 냈다. 도표와 그래프가 없는 대신 풍부한 사례들을 통해 어렵게 느껴지던 경제 개념들이 쉽게 이해되도록 한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심지어 연애와 결혼까지도 경제적 툴을 통해 봐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쉬워 보이지만 이 책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가볍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 플라모델 만들기에 심취했던 저자는 제조업의 현장을 보며 현대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탐구했다.

아이폰을 보면 스티브 잡스처럼 아무 ‘노동’도 하지 않은 창조적 아이디어 제공자가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가져가고 실제로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 노동자들은 낮은 부가가치를 가져가고 있다. 이를 통해 칼 마르크스가 주창한 ‘노동가치이론’은 과잉생산 시대에는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람보르기니, 에르메스, 오데마 피게 같은 명품일수록 숙련된 소수의 장인이 생산하는 것을 보고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분업의 효율성이 지금의 자본주의에서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이런 부가가치의 분배 구조가 소비자들의 선택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비싼 원조 맛집 앞에는 줄을 서고 그 옆의 값싼 짝퉁 가게는 텅텅 비는 것처럼 ‘세상에 없던 매력적’인 것은 원가의 몇 배 가격에도 팔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원가 이하에 내놓아도 팔리지 않는다.

이를 통해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일사불란함을 바탕으로 한 ‘효율성’이 아니라 매력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성’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즉 1970~1980년대 개발 시대의 향수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서지만 영화감독과 소설가를 꿈꿨던 저자의 재기 넘치는 글솜씨에 빠져들다 보면 현실 경제를 보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종우의 독서 노트
[Book] 피부에 와 닿는 현실 경제 해부학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는 B급 경제학’
‘블랙기업’

사라진 일본의 고용 철학

한 달 평균 112시간의 잔업.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반복되는 노동. 월급은 19만4500엔. 그것도 80시간에 달하는 잔업을 채워야 겨우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일본의 초밥 체인점 다이쇼). 4일간 80시간 근무, 점장이란 호칭을 붙여주는 대신 잔업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일본 SHOP99).

한국이나 일본이나 취업 준비생의 목표는 정규직이다. 그러면 정규직이 되면 행복할까. 그렇지 않은 기업도 많다. 장시간 노동, 낮은 임금 등 온갖 방법으로 노동력을 빼먹은 뒤 잘라버리기 일쑤다. 해고할 때는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내 연수라는 명목으로 온갖 모욕을 줘 스스로 퇴사하도록 만든다. 이런 회사를 일컬어 ‘블랙 기업’이라고 얘기한다. 원래 이 단어는 폭력 조직과 연계된 기업을 의미했지만 경기가 장기 침체를 겪으면서 뜻이 변해 노동력 착취를 일삼는 기업을 지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경기 침체와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블랙 기업이 늘어났다.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노동력을 쥐어짜기 시작하면서 평생 고용, 복지 우선 같은 일본의 고용 철학도 사라졌다. 입사만 하면 무덤까지 보장해 주던 일본 기업들이 수익을 위해 비정규직과 파견 근로, 임금 인하 등 각종 수단을 통해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익 도구로 전락한 근로자는 노조를 통한 집단 저항보다 자살을 택했다.

정부도 블랙 기업을 눈감아 줬다. 당장 눈앞의 고용률이 중요했기 때문에 이런 기업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기업의 탐욕이 최소한의 제어 장치도 없이 확대되면서 블랙 기업들은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그만큼을 해고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아직도 개인이 주의하는 것 외에 블랙 기업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 기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얘기하지만 그건 옛날처럼 좋은 일자리가 널려 있을 때에나 할 수 있는 말일 뿐 10중 4명이 비정규직인 지금으로선 세상 모르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탐욕을 인정하는 제도다. 탐욕이 끝없이 커지면 자본가와 근로자 양쪽은 서로를 협력자로서 보기보다는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젊은 놈들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 나이든 세대들이 자주 하는 얘기다. 충성심과 근면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나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개발 연대처럼 회사의 성공이 내 성공이 될 수 있다면 열심히 일할 젊은이들이 많다.

아이엠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jwlee@iminvestib.com



[Book] 피부에 와 닿는 현실 경제 해부학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는 B급 경제학’
21세기 자본
전 세계에 ‘피케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 교수의 책. 경제적 불평등을 배태하는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소득 불평등의 근본 원인으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높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즉 자본이 스스로 증식해 얻는 소득이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을 웃돌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저자의 대안은 대담하다. 극소수의 최고 소득에는 현 수준보다 훨씬 더 높은 세율로 과세하는 것과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그것이다.

토마 피케티 지음┃장경덕 외 옮김┃글항아리┃820쪽┃3만3000원



[Book] 피부에 와 닿는 현실 경제 해부학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는 B급 경제학’
한국 자본주의

김대중 15대 대통령 당선자의 ‘국민의 정부 경제 개혁 정책’ 총괄 책임자였던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는 선진국들과 크게 다르다고 말한다. 선진국들의 핵심 문제인 소득 불평등, 양극화 심화, 고용 없는 성장과 함께 극도로 불공정한 시장의 경쟁 구조, 재벌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선진국들과 다른 한국 자본주의 문제들의 원인과 과정을 낱낱이 파헤치고 ‘정의로운 경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저자는 정의롭고 공정한 소유·경쟁·분배를 강조한다.
장하성 지음┃헤이북스┃724쪽┃2만8000원



[Book] 피부에 와 닿는 현실 경제 해부학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는 B급 경제학’
비합리성의 심리학

의사들은 환자의 병을 오진하고 야전 사령관들은 멍청한 전투 계획을 고집한다. 관객들은 영화가 지루해 죽겠는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공무원들은 나태와 이기심을 조장하는 비합리적 시스템에 젖어 공금을 아무렇게나 운용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에게 엄청나게 해를 끼치는 잘못된 결정을 되풀이하는 걸까. 영국의 대표적 실험 심리학자이자인 저자는 인간이 왜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지, 비합리성이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무엇인지, 비합리적 행동을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스튜어트 서덜랜드 지음┃이세진 옮김┃교양인┃484쪽┃2만 원
[Book] 피부에 와 닿는 현실 경제 해부학 ‘한국은행 총재도 모르는 B급 경제학’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