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밀려버린 편지의 가치…‘기다림의 미학’이 그리운 계절

[문화심리학으로 풀어보는 삼국지] 영웅을 죽이고 살린 편지 한 장의 힘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히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과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소설가 김훈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단호하면서도 절절하다.

멀리 떨어진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욕망은 원초적인 것인 만큼 아마도 인류가 문자를 발명하자마자 편지라는 형태가 생겨났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만큼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내용과 형식도 천차만별이었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로 시작되는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은 그가 이영도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였다. 로마제국을 좌지우지했던 카이사르도 그의 정부 세르빌리아에게 연애편지를 썼다. 유럽을 뒤흔들었던 나폴레옹이 여섯 살 연상의 과부인 조세핀에게 보낸 편지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대개의 연애편지가 그렇듯이 유치하기 짝이 없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시작된 편지의 역사
편지가 이렇게 유치한 것만은 아니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이 퇴계 이황과 8년에 걸쳐 나눈 편지는 조선 유학사에 빛나는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이라는 대논쟁의 정수이기도 하다. 역시 성리학자인 남명(南冥) 조식(曹植)이 당시 명종에게 올린 상소문은 임금을 고아, 대비를 과부로 지칭하는 등 요즘 사람도 깜짝 놀랄 정도다.

“전하의 정사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해버렸습니다. 하늘의 뜻은 이미 가버렸고 인심도 떠났습니다. 대비께서 생각이 깊다 하나 구중궁궐의 과부일 뿐이고, 전하께서는 나이 어린 선왕의 고아일 뿐입니다. 대체 흐트러진 이 민심을 어찌 다 수습하시렵니까?”

옛말에 “이밀(李密)의 ‘진정표(陳情表)’를 읽고 울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고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를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병든 조모의 봉양을 위해 황제가 내린 벼슬을 사양하며 이밀이 황제에게 올린 표문에는 재가한 어머니를 대신해 어렸을 적부터 병약한 자신을 키워 준 할머니에 대한 효심이 잘 배어 있다. ‘삼국지’ 최고의 지략가 제갈량은 북벌을 떠나며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에서 이렇게 말한다.

“선황(유비)께서 창업하신 뜻을 제대로 이루기도 전에 돌아가시고, 천하는 삼분되어 나라의 존망이 위급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비록 늙고 아둔하나마 있는 힘을 다하여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황실을 부흥시키는 것만이 신의 직분이옵니다. 신이 받은 은혜에 감격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이제 멀리 떠나는 자리에서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하겠나이다.”

‘삼국지’ 시대에는 목간이나 죽간이 여전히 사용됐지만 이미 채륜에 의해 제지술이 발명돼 종이가 대량으로 보급돼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한(漢)제국이 무너지고 혼란기를 거쳐 새로운 통일제국이 성립한 이면에는 종이에 의한 정보 혁명이 새로운 정치 혁명의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100년이나 지속된 전란의 시기에 온갖 군사 정보, 정치 정보가 편지 형태로 유통되고 있었다.

‘출사표’처럼 신하가 황제에게 올리는 표문도 있지만 ‘삼국지’ 시대 자체가 전란의 시기였던 만큼 소설 ‘삼국지’에는 주로 군사·외교적인 내용의 편지가 오가며 치열한 첩보전·정보전이 벌어진다.

서기 190년 하진이 죽고 동탁이 세를 얻자 드디어 원소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의 군웅들이 모여 반(反)동탁연합군을 결성한다. 이때 손견이 낙양의 불에 탄 궁궐터에서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전국옥새를 손에 넣게 된다. 원소가 요구했다. “손견공! 그대는 전국옥새를 내게 바쳐라!” 손견이 딱 잡아떼자 원소는 형주자사 유표에게 편지를 보내 손견을 공격하라고 한다. 유표의 공격으로 겨우 사지에서 벗어난 손견은 강동으로 도망갔다.

손책의 세력이 커지자 오군태수 허공이 조조에게 편지를 보낸다. “손책을 하루빨리 제거함이 가한 줄 아뢰오!” 그런데 이 편지가 중간에 발각되고 손책은 허공을 죽여 버린다. 이에 앙심을 품은 허공의 집에 머무르던 식객(食客) 3인이 허공의 원수를 갚겠다고 나선다. 그들은 사냥 중인 손책을 습격하고 손책은 크게 다쳐 결국 이 상처로 죽게 된다.


따뜻한 손 편지 한 장의 추억
한편 서주목이 된 유비에게 의탁했던 여포가 도리어 유비를 배신하고 서주를 차지하자 두 사람의 사이가 틀어졌다. 조조는 유비에게 서주목의 지위를 내리면서 편지를 썼다. “현덕공! 여포를 제거하시오!” 여포와 유비의 ‘두 마리 호랑이를 이간질해 서로 잡아먹게’ 만들려는 소위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였다. 그러나 이 계책은 유비가 말을 듣지 않고 이 편지를 여포에게 보여주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가만히 있을 조조가 아니었다. 조조는 이번에는 원술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비가 그대를 치려 하오!” 유비에게도 황제의 이름으로 조서를 보냈다. “현덕은 원술을 치라!” 황제 명령이라 부득불 원술의 대군과 싸우게 된 유비. 설상가상으로 장비가 술 먹고 사고까지 치는 바람에 유비는 대패했다. ‘호랑이를 몰아세워 이리를 집어삼키게’ 하는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가 여기서 나왔다.

조조가 조인을 시켜 형주를 공격했는데 크게 패했다. 패인이 서서(徐庶)의 자문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조조는 정욱의 계책에 따라 서서의 모친을 납치한다. 모친의 글씨를 흉내 낸 위조 편지를 서서에게 보내 효성이 지극한 서서가 제 발로 위나라로 오게 만든 적도 있다.

공명의 제4차 북벌 때의 일이다. 공명이 위나라 조진의 군대를 공격했다. “촉나라 군대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오!” 사마의와 내기까지 했던 조진은 참패 끝에 사마의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수치심 때문에 조진은 몸져누웠다. 공명이 편지를 보내 염장을 질렀다. “동향 후배 조진에게! 이 못난 소인배야, 이제 너는 무슨 낯으로 고향의 어른들을 볼 것이며, 무슨 뱃심으로 고향집 대청에 오르겠느냐?” 조진은 울화통이 터져 그날 밤 진중에서 죽었다.


사족. ‘삼국지’ 시대 전란기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삭막한 이야기만 나온다. 사실 편지가 상대방이 있는 공간까지 배달되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심리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면서 이런 ‘기다림의 미학’이 사라지고 있다. e메일로 상징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시대에는 자신의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상대방에게 전송된다.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전선의 향기 품어/ 그대의 향기 품어~”

결혼 후 아버지를 군대에 보낸 우리 엄마는 라디오나 축음기에서 울려 나오는 대중가요 ‘향기품은 군사우편’을 들으면서 아버지의 병영 편지를 기다렸을 것이다.

“어느 날 그대 편질 받는다면/ 며칠 동안 나는 잠도 못자겠지~” 1991년 뒤늦게 공군 장교로 입대한 나는 훈련소에서 틀어주는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지겹도록 들었다. 오늘 밤에는 지금은 추억이 된 김민우의 노래를 들으면서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아내에게 보내는 연필이나 만년필로 정성을 들인 손 편지나 한 장 써야겠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