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난 취재 때 이원영 사장을 만나지 못했다. 오늘의 제니퍼를 설계한 주인공이다. 마침 미국 출장 중이라고 했다. 그게 계속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괴짜 CEO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걸까. 그가 갖고 있을 혜안과 자신감이 못내 궁금했다. 수은주가 또 한번 치솟은 8월13일(월) 오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로 향했다.

제니퍼는 요즘 새 식구를 맞는 일로 분주했다. 여기저기 언론을 타면서 신입사원 모집에 300~400명이 몰렸다. 이날도 이 사장은 1층 카페에 입사 지원자 두 명과 마주앉아 면접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희가 찾는 프로그래머 상과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 사장의 너무나 솔직한 말에 두 사람은 무척 놀란 눈치였다.


이 사장은 "수백명 지원자 중에서 5명을 뽑았다"며 "이들이 제니퍼의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전직원이 18명인데 5명은 너무 많지 않나.
- 우리 규모로 보면 분명히 많다. 하지만 이들은 제니퍼의 미래다. 그동안 제니퍼가 해온 일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이들이 만들어 낼 거다. 생각만해도 벌써부터 신난다. 앞으로 1년은 아무 일도 맡기지 않고 책만 읽게 할거다. 아침에 오면 신문 보고. 해외 기업 탐방도 보내고.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내는 스케치 능력, 프리젠테이션 기법, 브레인스토밍 방법 같은 공통 소양을 익히고, 거기에 더해 각 역할 별로 전문적인 교육도 한다. 7년 가까이 사업을 해보니 어떤 비즈니스 던지 기획, 마케팅, 프로그래밍, 리더십, 디자인 등 5가지 역량을 갖춰야 아귀가 맞는다. 이번에 뽑은 5명은 한명한명 각자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분들이다.


= 어떤 기준으로 뽑았나.
- 사유의 능력을 봤다. 얼마나 깊이 생각하는가 하는. 또한 생각의 방향성이 얼마나 진보적인 가도 중요하다. 개인적 성공이 아니라 이 사회를 온전하게 바꾸려는 건전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기획자로 지원한 어떤 분이 자신의 꿈은 적정기술을 아프리카에 적용하는 삶을 사는 것인데, 제니퍼라는 회사의 틀 내에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메일을 보냈더라. '너무 기쁘다, 제니퍼는 오히려 그런 걸 적극 권장한다'고 답을 보냈다. 리더십 쪽으로 뽑은 분은 나이가 정말 어린 데도 사회과학적인 측면이나, 철학적인 측면이 아주 뛰어나다.


= 지원자가 많았다는데.
- 가장 놀란 게 신입사원 모집 분야에 경력자들이 굉장히 많이 지원했다는 점이다. 하나같이 애잔하고 눈물 나는 사연을 갖고 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직장, 행복할 수 있는 직장, 자기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직장, 자기 아이들과 가정을 꾸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직장, 누구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직장. 이런 건강한 기업에 대한 절절한 고민과 갈구가 배어있다. 15년 경력자가 신입사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 급여 수준은 어떤가.
- 급여는 비밀이다. 대안적 기업으로서 급여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최근에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 기존의 급여 보상 시스템은 멤버들의 기여가 있으면, 그걸 평가하고, 거기에 비례해서 보상을 하는 방식이다. 새롭게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는 평가와 보상의 관계를 단절 하자는 것이다. 평가는 평가고 보상은 다른 걸로 하자는 거다. 그럼 뭐가 있나. 그 사람이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보상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적 동기, 열정, 꿈을 향한 전진, 소명의식, 실행력, 공감과 소통의 능력, 삶과 일의 균형이 잡힌 노력, 그런 문화를 만들려는 의지 등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경우도 그 포션이 커서는 안 된다. 전통적인 방식은 인센티브를 높여서 자꾸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도록 내몬다. 기본 임금을 충분히 높이고 보상은 작은 부분으로 하되, 정성적 평가를 통해 내적 동기를 유발하는 쪽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 해외 유학을 보낸 직원도 있다던데, 정말인가.
- 1년 어학연수를 보냈다. 비용은 회사에서 전부 지원했다. 또 한 직원은 비행사 자격증을 따고 싶어해 지원했다. 지금은 김포에서 강릉까지 경비행기 몰고 왔다갔다한다.

= 왜 그런 일을 하나.
- 기업이라는 틀 속에서 구성원들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슨 비전이 가능할까. 직무에 대한 커리어 패스?. 소극적인 차원이다. 좀더 넓혀 보면 개개인의 꿈이 중요하다. 몇십년 지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하는 문제다. 그건 모두가 다 다르다. 그걸 인정하고 진정으로 지원해 주려고 한다. 때로는 금전적으로, 때로는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약속으로. 한 직원은 앞으로 아시아 지역 헤드쿼터을 설립하면 거기서 자기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정년없는 회사를 꿈꾸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들을 죽을때까지 노동자로, 노예로 가둬놓고 싶지는 않다. 작자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지금은 단지 우리가 뜻이 같기 때문에 함께하는, 거쳐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 많은 투자를 했는데 그 사람이 이직하면 어떻게 하나.
- 투자를 많이 하지만 그들이 지금과 같은 괄목할만한 성과도 만들어 내고 있다.


= 대학 생활은 어땠나. 학생운동을 했나.
- 경북대 수학과를 나왔다. 학생운동의 끝자락인 90학번이다. 1학년 때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이 진전돼 쌀 수입개발을 반대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거기에 참여했다 3개월간 미결수 생활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 특사로 사면 복권됐다. 당시 학생들의 그런 노력이 지금까지 우리 농촌이나 사회에 여러 가지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믿고 싶다.


= 그때 경험이 이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그때 사유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직장생활 8년 동안 계속 눌려있다가 창업해 법인설립하고 어떤 회사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생각하면서 다시 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금은 그걸 하나씩 실천하는 과정이다.


= 대학 졸업하고 어떤 일을 했나.
- LG-CNS(현 LG-EDS)에 입사해 미들웨어 연구원 생활을 했다. 그후 한국IBM으로 옮겨 프리세일즈 엔지니어, 테크니컬 엔지니어 생활을 5년간 했다.


= 직장때도 개발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공유 운동을 했다고 하던데.
- 자바서비스닷넷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1999년에 쓴 '모든 자바개발자에게 고함'이라는 글이 있다. '모든 정보는 공유되어야 하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되찾아야 할 시점입니다. 모든 자바 개발자여 지식을 한 곳으로 모읍시다. 이곳은 당신의 이름 그 석자를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지금 봐도 잘 썼지 않나.(웃음) 자바서비스닷넷은 지금도 운영된다. 내가 사회에 환원해야 할 봉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뽑은 5명 중에 이 커뮤니티를 담당할 사람도 있다.



(사무실 바닥에 제니퍼의 철학을 자바 언어로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위는 유토피아를 찾고 판타시아로 간다, 아래는 고정되있으면 유연성을 찾고 닫혀 있으며 열고 창의성을 실천하라는 의미)


= 커뮤니티가 법인으로 전환된 건가.
- 아니다. 처음에 회사 이름은 커뮤니티와 연관성을 나타내기 위해 자바서비스컨설팅으로 지었을 뿐이다. 이후 제니퍼라는 제품 브랜드가 중요해져 회사 이름을 제니퍼소프트로 바꿨다.


= 창업을 함께한 동료들은 어떻게 됐나.
- 뜻이 맞지 않아 설립 1년 지나 헤어졌다. 정체성이나 가치관은 쉽게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요즘도 진보성을 강조하는 게 사회적으로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다.


= 그래도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게 좋지 않나.
- 맞다. 요즘 젊은이들은 진보가 진부하다고 느낀다. 정치적인 싸움으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진보는 보다 온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다. 그게 진보의 정의다. 이걸 누가 반대하겠나. 진보는 가난하고 도덕적으로 완벽 해야만 하는 고지식한 게 아니라 멋있는 진보, 간지나는 진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걸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야 한다.

= 외부 투자자는 없나.
- 없다. 제니퍼는 비상장회사를 꿈꾼다. 미국 회사면서도 가장 미국적이 않은 회사인 SAS가 롤델이다. 이 회사는 아직도 비상장사로 남아있다.


= 대기업 생활은 어땠나.
-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다. 물론 장단점이 있다. 기업은 제 2의 가정이자 구성원들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틀이기 때문에 이제 이윤추구 이외의 것들을 고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 기사 댓글 중에 재벌기업들이 제니퍼를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 이러다 LG나 삼성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지금 모든 사장님으로부터 제니퍼가 공공의 적이 되어가고 있다.(웃음)


= 제니퍼 소프트웨어는 어떤 건가.
- 성능관리 소프트웨어다. 인터넷 뱅킹을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데, 국내 은행 인터넷 뱅킹 시스템에 대부분 제니퍼가 탑재돼 있다. 추석이나 명절 때 사용자가 폭주하면 시스템 응답 속도가 늘려지고 성능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제니퍼가 탑재돼 있으면 사용자가 몇 명 들어왔고 응답 속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개별 서비스가 어떤 위치에서 병목이 발생하는지 비주얼한 그래픽을 통해 즉시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다. 시스템 담당자가 성능 장애 원인을 즉각 판단해 조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단층 촬용을 통해 몸 안의 암 세포 위치와 전이 정도를 파악하는 것과 같다. 제니퍼는 웹 미들웨어 시스템 내부를 단층 촬영해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제너퍼 소프트웨어에 대해 설명하는 이원영 사장)


= 해외 시장 진출은 어떤가.
- 제품을 개발 할 때 첫 버전부터 한국어와 영어, 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5개국어로 제품을 만들었다.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거다. 창업 1년만인 2006년 일본 법인을 설립했고, 곧이어 미국 사무소도 개설했다. 건강한 글로벌 기업이 제니퍼의 비전이다. 현재 일본과 미국, 오스트리아, 태국에 법인이 있다. 말레이시아, 폴란드, 영국, 브라질, 네덜란드, 독일은 협력사가 있다.


= 성장 전망은 어떤가.
- 많은 사람이 제니퍼의 성장을 궁금해 한다. 복지를 저렇게 시행하면서도 저렇게 잘 성장하는 기업이 있다니, 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것 보다는 대안적 기업을 만들어가는 실험적인 모습을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정말 많은 근로자들이 건강한 노동을 통해 근사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 열망이 지금 극에 달해 있다. 그걸 충족하고 채워 줘야 할 기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걸 화두로 삼고 있다.


= 지난번에도 느낀 거지만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 (웃음) 여기 쉬던 직원들도 방금 올라갔고 외근 중인 직원도 있다. 재택 근무나 외부 근무도 적극 권장한다. 요즘 시대는 자리에 꼭 앉아서 뭘 할 필요가 없다. 수영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고 한 건 몰입과 여유의 균형이 창의력을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몰입은 단기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효과적이고, 여유는 장기적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둘의 균형이 필요하다.

= 어려움은 없나.
- 비슷한 생각을 가진 기업가들과 모임을 만들고 싶다. 안철수 원장이 이윤추구는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라고 했다. 공감한다. 나는 이윤추구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윤추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전부가 아니라면 그럼 나머지는 뭔가. 혼자 열심히 찾아가지만 한계가 있다. 대안적 기업의 틀을 함께 만들고 싶다. 인사보상 평가 시스템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고, 기업의 정년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또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는지 아이디어도 교환하는 거다. 그동안 자신도 제니퍼 같은 기업을 만들고 싶다며 몇 분이 찾아왔다.


= 사옥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가 뭔가.
- 공간은 사유를 압도한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큰 영향을 받는다. 계속 스트레스 받고 답답한 곳에 있으면 건강한 마음을 갖기 힘들고 새로운 통찰력 있는 생각을 하기 힘들다. 반대로 자연적인 공간, 여유로운 공간, 아름다운 공간에 있으면 마음도 그런 쪽으로 가게 된다. 자율적인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사각형 박스 안에 넣어 놓으면 자율적이 되기 어렵다. 글로벌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글로벌로 나가 생각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다. 각고의 고통 속에서 여기 있는 모든 걸 있고 머릿속 사유만으로 미국을 생각하고 네덜란드를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거기에 가면 그 순간 한국은 잊어버리고 그곳에 집중하게 되는데 말이다. 공간은 사유를 압도한다. 그래서 공간에 대한 투자는 아깝지 않다.


= 날씨가 마치 유럽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 요즘 글로벌화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 자랄 때도 세계화가 화두였다. 지금은 글로벌 다음 단계를 고민 할 때다. 한때 미국이나 유럽에 가면 그곳에 파라다이스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막상 가보니 그런 건 없다. 한국과 다른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그곳이 꿈꿔왔던 파라다이스는 아니더라. 그곳에도 나름대로 문제가 있고, 개선해야 할 것들이 있다.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한국을 벗어나는 게 답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처한 환경 속에서 필요하면 만들어 가는 거다. 헤이리 사옥을 짓고 내가 꿈꿨던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서 생활하면 이곳이 바로 파라다이스다. 한국을 버리고 외국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한국을 품은 탈영통화, 탈세계화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삶에 가장 영향을 준 인물이 누군가.
- 아버지다. 태백산맥 꼭대기 오지마을인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태어나셨다. 국민학교만 있던 그곳에 중등과정 학교인 고등공민학교 설립을 주도하셨다. 정년 퇴직할때까지 월급 받으면 학비 못내는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빈 봉투만 어머니한테 가져왔다. '자연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가 가훈이었다. 어릴 때는 그게 잘 이해도 안되고 조금 부끄러웠다. 학교에서 가훈 적어 내라면 친구들은 성실하게 살자 이런 수준인데 우리집은 자연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라니. 선생님도 의아하게 생각하셨다. 그런데 20~30대 지나면서 그 말이 정말 삶의 나침반으로 작용했다. 지금도 정정하시고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신다. 내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라, 직원들에게 최선의 선의와 복지를 베풀라는 말씀이다. 요즘도 한겨레, 경향신문 등 신문 4개 보시고, 월간지도 2~3개 보신고, 책도 한 달에 2~3권씩 보신다.


장승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