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디올 등 '명품 건물' 경연장
색깔 잃은 가로수길과 대조적

[상권 17] 상위 1%를 위한 '하이엔드 상권' 청담동
헨리베글린(4월), 크리스찬 디올(6월), 라펠라(9월), 아크네 스튜디오(9월), 버버리(10월). 2015년 한 해 동안에만 청담동 명품거리에 입성한 해외 유명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들이다.

샤넬과 까르띠에도 이곳에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준비 중이다.

세계 럭셔리 브랜드들이 청담동 상권으로 앞다퉈 몰려들고 있다. 이들은 ‘더 크고 화려한’ 플래그십 스토어를 앞세우며 치열한 ‘명품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 때문에 청담동은 대한민국 상위 1%를 위한 ‘하이엔드 상권’이라는 기존의 이미지가 더욱 극대화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오죽하면 ‘청담동 문화’라는 별칭까지 생겼을까. 청담동은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의 ‘부와 명성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1990년대 최고급 아파트로 손꼽히던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 등과 인접해 있다. 지금도 이 일대에는 매매가가 60억원대를 넘어선다는 고급 빌라와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그 덕분에‘대한민국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상권’의 대명사가 된 청담동 명품거리는 최근 들어 그 화려함이 한층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한 버버리는 매장 규모가 지하 2층, 지상 11층에 달한다. 아시아 3대 매장 가운데 하나다. 금빛 체크무늬가 수놓아진 외관도 눈에 띈다. 버버리를 대표하는 트렌치코트의 주요 소재인 개버딘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대한 갤러리’ 된 명품거리

크리스찬 디올의 플래그십 스토어인 ‘하우스 오브 디올’은 마치 꽃봉오리를 닮은 건축물로 시선을 끈다. 디올의 물결치는 드레스 자락을 형상화했다.

이탈리아 명품 이너웨어 업체인 라펠라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1층 면적이 462㎡(140평)로 전 세계 매장 가운데 최대 규모다. 명품에 예술적 색채가 더해지면서 청담 상권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처럼 변모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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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각국의 유명 브랜드 매장들이 이처럼 청담 상권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프라이버시’에서 찾을 수 있다. 청담동 상권은 기본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량을 이용해 움직이기 때문에 거리에는 행인들조차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바깥에서 바라보면 매장이 텅텅 빈 듯 보인다.

매장마다 퍼스널 쇼퍼(VIP 고객들의 맞춤형 쇼핑을 도와주는 사람)와 함께 프라이빗한 룸에서 쇼핑을 해결한다. 최상위 소득 계층의 쇼핑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다.‘하이엔드 상권’으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갖고 있는 만큼 이곳에 매장을 오픈하는 것만으로도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청담동 명품거리를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명품 편집숍이 몰려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세계는 2000년부터 압구정로데오역과 청담동 명품거리 사이에 자리한 골목에 명품 브랜드 편집숍 분더샵을 운영 중이다.

인근에는 삼성물산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탈리아 편집숍 10꼬르소꼬모도 들어서 있다. 현재 10꼬르소꼬모 매장에는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발망·꼼데가르송·톰브라운·지암바티스타 발리 등 명품들이 판매되고 있다.

◆ 가로수길 임대료 오르며 ‘U턴’ 현상

일반 투자자들은 범집하기 힘든 ‘그들만의 리그’임에도 명품거리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만큼 청담동 상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청담동 상권은 극심한 경기 불황으로 2012년 무렵 크게 타격을 받으며 한동안 침체된 분위기가 강했다. 압구정과 청담 지역의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가로수길이 일종의 대안 지역으로 급부상했다.

세련되고 독특한 개성을 갖춘 패션숍과 레스토랑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로수길 역시 임대료가 치솟으면서 메인 도로가 천편일률적인 대기업들의 패션 매장으로 채워진 지 오래다.

색깔을 잃어 가는 가로수길과 대조적으로 최근 들어 청담 상권은 하이엔드의 문화적 색채가 강해지면서 ‘제2의 부흥’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청담동 상권은 ‘압구정로데오역-청담동명품거리-학동사거리’를 꼭짓점으로 한 삼각형 모양의 블록을 핵심 지역으로 볼 수 있다. 고급 주택가들 사이사이에 유명 레스토랑과 웨딩숍, 명품 브랜드 편집숍 등이 산재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골목은 10꼬르소꼬모에서부터 분더샵까지 이어진 압구정로 60길이다. 일지아트홀부터 카페 먼데이투선데이까지 이어진 선릉로 152길도 고급 레스토랑들이 유독 많이 몰려 있어 뜨는 골목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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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모던 한식이나 프렌치 레스토랑들이며 한식·중식·일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청담동 건물들이 워낙 고급 빌딩이다 보니 건물주들이 냄새가 많이 나는 업종은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 골목 인근으로 도산대로 61길 등도 최고급 헤어숍과 메이크업숍·웨딩숍 등이 몰려 있어 웨딩 골목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삼각형 블록에서 벗어난 외곽 지역도 변화가 감지된다. ‘하이엔드 문화’의 영향권에 속하면서도 청담동 내부 상권에 비해 개인 창업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이미 가로수길도 압구정이나 청담 지역만큼 임대료가 높아졌다”며 “가로수길의 임대료 장점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재작년부터 청담 상권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33㎡(10평) 정도의 가게를 창업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로수길은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이 5000만~1억원, 권리금 1억~2억원 정도로 대략 3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이 정도 자금이면 청담동 상권의 외곽 지역에서 권리금이 없는 곳을 찾는다면 초기 투자비용(보증금 및 인테리어)으로 충분하다.

여기에 2011년 압구정로데오역 개통 이후 청담 상권의 접근성이 높아진 것 또한 ‘청담동 U턴 현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청담 외곽 중에서도 압구정 로데오거리 인근 지역으로 이 같은 현상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인테리어에 1억~2억 투자…권리금은 없어

청담에 자리한 건물들은 대부분이 규모가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임대되는 매물의 규모도 클 수밖에 없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작은 매물이 99~132㎡(30~40평)이고 대부분이 165㎡(50평) 이상”이라고 말했다.

1층 매장은 165㎡ 기준으로 대략 보증금 2억원에 월 임대료는 1000만원 수준이다. 2층은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7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권리금은 1억원 이상이지만 따로 요구하지 않는 곳이 더 많다. 대형 매장에 고가인 만큼 거래가 쉽지 않아 권리금을 주장하다가 계약 기간이 다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대료도 임대료지만 청담동 상가는 다른 상권에 비해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많다. 3.3㎡(1평)당 적게는 300만원, 많게는 400만~500만원을 투자한다. 165㎡ 기준으로 1억5000만~2억5000만원이 소요되는 셈이다.

초기 인테리어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계약은 5년 단위로 이뤄지는 곳이 많다.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할 때까지 영업권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다만 월 임대료는 2~3년에 한 번씩 조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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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자산 관리 전문 업체인 어반에셋의 이동열 이사는 “청담 상권은 하루 종일 소비자들이 머무르면서 먹고 즐기고 쉬는 것을 한 번에 해결하며 ‘머무르다 가는 상권’이 아니다”며 “대부분이 목적지를 찾아왔다가 볼 일이 끝나면 자신의 차량을 타고 돌아가는 형태의 소비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단골손님 확보에 실패하거나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함부로 덤비기에는 어려운 상권 중 하나다. 상가 전문가들에 따르면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만큼 매출이 따라가지 못해 창업 1~2년이 채 못돼 문을 닫는 가게들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키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가격에 상관없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이들을 소비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역 등의 상권과 비교해 객단가가 2~10배 정도 높다. 일반 상권과 달리 소품종 대량 판매 전략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 판매’로 공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판 미슐랭 가이드를 표방하는 블루리본어워드 2015 수상자 다섯 명 가운데 네 명(강민구·임정식·임기학·이현희 셰프)이 청담 부근에서 매장을 운영 중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곳에서 5년째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에드워드 권 셰프가 설립한 EK푸드의 브랜드 매니지먼트팀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비싼 음식 값을 지불할 수 있고 그만한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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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SK텔레콤의 빅 데이터 비즈니스 플랫폼 지오비전의 분석 결과에도 잘 나타난다. 청담동 상권의 유동인구는 2015년 11월을 기준으로 16만59명이다. 압구정로데오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m를 조사한 결과다. 매출액은 1299억원에 달한다. 1인당 1일 평균 매출액을 계산하면 80만원을 넘어선다.

이곳의 한 의류 매장 관계자는 “청담동 상권은 싼값에 물건을 많이 파는 곳이 아니다”며 “하나를 팔더라도 아주 고가의 제품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객단가가 높다는 점은 창업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인 동시에 위험 요소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한 번 단골손님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 돋보기
하루 유동인구 16만명, 1일 총 매출액 1299억원
[상권 17] 상위 1%를 위한 '하이엔드 상권' 청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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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SK텔레콤 빅데이터 비즈니스 플랫폼 지오비전(www.geovision.co.kr)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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