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뷰 Leader's View]
잘나갈 땐 ‘재벌 개혁’,  어려워지니 ‘무한책임’
(일러스트 김호식)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한진해운의 법정 관리에 따른 ‘해운대란’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한진해운의 법정 관리에 따른 물류 혼란으로 현재 접수된 국내 업체의 피해 사례는 200여 건이 넘고 신고 된 피해 규모는 수천억원대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경제적 피해를 주고 있다.

미국의 연말 쇼핑 시즌이 시작될 판이고 물류 지연으로 장기적인 대규모 소송전이 시작될 공산이 커 한진해운의 청산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법정 관리에 들어갔지만 이 회사가 갚아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청산된다면 경제의 직접적 피해액이 17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선주협회는 예상하고 있다.

이런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자 이 사태의 책임에 대한 사회적 공방이 뜨겁다. 국회는 청문회를 열고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들을 힐난하는가 하면 대통령까지 나서 물류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한진그룹이라며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고 책임지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즉 정부에 쏠리는 비난과 책임론을 기업에 전가하며 정부에 쏠리는 책임론을 비켜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형국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파산과 경영 부실이 커다란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되는 후진적 구조조정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중 정부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이나 최근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은 모두 거대 기업의 사업 실패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비정상적인 구조조정 악순환의 예들이다.

그러면 시장에서 조용하고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안 되고 한진 사태와 같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하는 최악의 구조조정이 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실패 가능성이나 수익성이 낮은 기업을 시장을 통해 부실 징후가 있기 전에 매각할 수 있어야 기업들이 그 매각 자금으로 다른 투자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정 관리에 들어가고 망한 기업에 CEO나 전임 경영자들의 사재까지 출연하라고 압박하는 식의 구조조정은 재투자는커녕 계열사의 동반 부실 가능성만 키우는 최악의 구조조정이다.

자발적인 매각과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의 실패가 발생하는 데는 물론 경영주의 무능이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시장 실패를 국민의 세금으로 연명해 주는 대마불사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 관치 경제도 원인이다. 그러다 보니 한진그룹이 이 부실기업을 떠안고 인수하는 악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즉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의 실패에 대해 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신호를 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운동 시 정치권에서 앞다퉈 조선 회사들을 방문해 해고가 있는 구조조정이 일어나지 않게 지원하겠다는 식의 구태를 반복한 것들이 이러한 경제 운영의 원칙에 대한 혼란을 가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태를 보면 정치권과 한국 사회가 아직도 시장경제에 대한 원칙과 철학의 빈곤이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선 기업을 운영하다 실패한 전임 CEO를 국회에 불러내 사재를 출연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주식회사는 투자한 만큼 책임을 지고 유한책임을 전제한 제도인데 CEO이자 재벌이기 때문에 무한책임을 지라는 식이다.

이 논리를 뒤집으면 우리의 재벌 오너들이 지분에 상관없이 무소불위의 지배권을 행사하라는 말과 같다. 무한책임을 질 경영자에게 무한권한을 줘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한진그룹과 조양호 회장에게 법정 관리에 들어간 부실기업을 지원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대통령과 정치권 또한 경영진에게 배임을 강권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재벌 기업들의 오너들은 최근 부실 계열사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배임 처벌을 받아 왔다. 그러면 배임은 정부와 사법 당국에 잘못 보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선택적 범죄란 말인가.

야당은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에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정책 조율을 한 소위 서별관회의에 대해 청문회를 열고 비난해 왔다. 그러다가 한진해운의 물류 사태가 발생하자 정부의 무능과 컨트롤 타워 부재를 비난하고 나섰다.

부실 가능성과 구조조정 가능성을 공개된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정책 조율과 협의를 공청회에 세운다는데 구조조정의 총대를 메는 소신 있는 정부 관리가 있을 리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과거의 구조조정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고 경제 운영의 아노미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한진해운 사태가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한진그룹과 조양호 회장에게 법정 관리에 들어간 부실기업을 지원하라는 압력을 행사한 대통령과 정치권 또한 경영진에게 배임을 강권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