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100년 기업 지향하며 고객 맞춤형 서비스 확대
올해 1월 ‘비전 2020’ 선포

[대한민국 신인맥(15) 교보생명] 의사 출신 'CEO 담당님' 신창재 회장의 '퀄리티 경영'
‘생명을 다루는 일은 의사나 보험업이나 마찬가지다.’

신창재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를 지내다 경영가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96년 부친인 신용호 창업자의 건강 악화로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그가 경영자로 변신한 지 20년째다.

그는 회사가 생존을 위협받던 시기에 경영을 물려 받았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였던 그는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퀄리티 경영’으로 교보생명의 성장을 이끌었다. 대형 생보업계 유일한 오너 경영인으로서 ‘100년 장수 기업’의 토대를 탄탄히 다져가고 있다.

2000년 4월 천안 교보생명 계성원(연수원) 강당. 이곳에 모인 간부 사원 500여 명은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정적에 휩싸였다.

“금융감독원은 경영 부실로 경영난이 심화된 교보생명에 대해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퇴출을 결정했습니다.”

이 뉴스가 실제가 아닌 ‘가짜’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직원들 그 누구도 이 뉴스를 웃으며 넘길 수 없었다. 당시 교보생명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인해 생존조차 위협받고 있었다.

취임 직후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직접 기획한 가상 뉴스 사건이다. 뿌리부터 ‘위기와 혁신’을 강조하는 신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의사에서 경영자로 ‘변신 20주년’

신 회장은 1953년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의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를 졸업한 그는 68회 동창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1993년부터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은 경력으로 소설가 황석영, 박범신 등 문화계 인사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 출신 최고경영자(CEO).’ 신 회장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수식어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잘나가는 산부인과 의사였다. 서울대 의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하고 의과대 교수로 재직했다. 성격이 워낙 내성적이고 꼼꼼해 의사가 천직이라고 여겼다.

그런 그가 교보생명 경영자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부친인 신용호 창업자의 부름 때문이었다. 1996년 부친의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며 장남인 그가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합류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마흔셋이었다. 이후 2000년 회장에 취임해 오너 경영인으로 교보생명그룹 전반을 책임지며 이끌어 오고 있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 안정적으로 교보생명의 내실 경영을 주도해 왔다. 2010년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신 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한 번도 경영인을 꿈꾸지 않았던 의사 출신이지만 교보생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오너 경영인으로서 신 회장의 강점은 무엇보다 ‘장기적인 전략’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중 신 회장이 가장 강조한 것은 ‘고객 중심의 퀄리티 경영’이다. 외형적 성장보다 내실을 키우는 게 기업의 지속적인 이익 창출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신 회장 취임 당시 교보생명은 IMF 외환 위기로 큰 시련에 직면해 있었다. 거래하던 대기업이 연쇄 도산하면서 2조4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봤다. 그 여파로 2000년에만 무려 2540억원의 적자를 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업계의 오랜 관행인 ‘외형 경쟁’의 후유증으로 회사는 안으로 곪아 있었다. 당시 교보생명 보험 계약서의 30%가 가짜였다. 이런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엄격한 규율과 징벌을 택할 수도 있었지만 신 회장은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택했다.

의사로 일했던 그가 경영자로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내린 처방 역시 ‘사람’이었다. 보험업의 핵심 키워드를 ‘측은지심’과 ‘인본주의’로 본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잘못된 영업 관행을 뜯어고치고 영업 조직을 정예화했다.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토론함으로써 생명보험은 ‘사람을 살리는 업’이라는 가치관을 심어줬다.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를 ‘보험 상품 판매 실적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된 영업 사원’에서 ‘사람들이 미래의 역경에 좌절하지 않게 도와주는 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경영자로서 그는 단기적인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고객 중심, 이익 중심의 ‘멀리 보는 경영’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2년 9월 즉시연금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당시 비과세 혜택 폐지를 앞두고 고객이 몰리는 상황에서 다른 생보사들은 즉시연금 판매에 열중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장기적 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며 즉시연금 은행 창구 판매를 중단시켰다. 심각한 저금리 기조에서 장기적으로 경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장기적인 전략을 바탕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한 결과 교보생명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교보생명은 2000억원도 넘는 적자를 기록하던 회사에서 해마다 5000억~6000억원대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하는 회사로 탈바꿈했다.

2009년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선제적 리스크 관리로 생보업계 전체 순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업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은 2016년 6월 기준 266.5%로 글로벌 기준을 웃돌고 있다. 자기자본이익률(ROE)도 2004년 이후 국내 대형 생보사 중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시 낭송하고 기타 치는 CEO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모습의 CEO로 유명한 그는 평소 직원들 앞에서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3년 여직원들이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마련한 1일 호프 행사에서 그는 기타를 잡고 ‘광화문 연가’와 ‘이름 모를 소녀’를 불러 큰 환호를 받았다. 2009년 사내 행사에서는 직원들과 후드티를 맞춰 입고 ‘찌르기 댄스’를 선보였다.

2012년 사내 우수 재무설계사 시상식에선 흰색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개그맨 박성광 등과 함께 개그콘서트 인기 프로그램인 ‘감사합니다’ 패러디를 선보였다. 2015년 고객 보장 대상 시상식에서는 재무설계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해인 수녀의 시 ‘친구야 너는 아니?’를 직접 낭송했다.
[대한민국 신인맥(15) 교보생명] 의사 출신 'CEO 담당님' 신창재 회장의 '퀄리티 경영'
이 밖에 그는 회의실에 ‘우리는 투덜이 스머프를 응원합니다’라는 포스터를 붙이고 모든 직원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할 만큼 직원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윗사람 아랫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다하는’ 기업 문화를 위해 신 회장의 주도 아래 2011년부터 임원들의 직책 호칭을 전면 폐지했다. 직책 대신 담당 직무에 ‘님’자를 붙여 호칭한다.

이에 따라 마케팅담당 부사장은 ‘마담(마케팅담당)님’, 신창재 회장은 ‘CEO 담당님’으로 부르고 있다. 고객들과의 소통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고객 행사에 셰프복을 입고 나타나 직접 구운 빵을 대접하며 고객의 목소리를 듣는가 하면 때로는 실내악 콘서트에서 지휘봉을 잡고 무대에 서기도 한다.

신 회장은 이와 같은 다양한 노력을 통해 보험 산업의 문화를 바꿔 나가고 있다. 보험 산업에 대한 무너진 신뢰를 다시 찾기 위해 생명보험의 근원이랄 수 있는 ‘상부상조의 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관이나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가 끊임없는 소통이다. 신 회장이 유독 직원들이나 고객들과 스킨십을 강조하는 이유다.

‘존경받는 100년 기업’을 꿈꾸고 있는 신 회장은 올해 1월 ‘비전 2020’을 선포했다. 1958년 설립된 교보생명은 ‘100년 기업’에 도달하기까지 42년을 남겨두고 있다. ‘비전 2020’의 핵심 역시 혁신과 고객 중심에 맞춰져 있다. 상품·채널 혁신 넘버원 생보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저금리·저성장·고령화의 ‘삼중고’를 넘기 위한 전략은 오직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길밖에 없다는 확신이 묻어난다. 여기에 더해 상품 규제 완화, 보험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시행 등 보험 산업의 환경이 급변하는 시점에서 나온 새로운 미래 성장 전략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동안 보장에 소외돼 있던 고령자·유병자 등 새로운 고객층을 겨냥한 특화 상품을 선보이고 고객 보장 컨설팅 역량을 높이는 등 퀄리티 경영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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