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 상실…21세기적 복음 해석과 실천 필요
프란치스코 교황, ‘시대정신’의 부름에 답하다
[한경비즈니스=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프란치스코 신드롬에 빠졌다. 비단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해당된 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그에게 열광한 것은 단순히 그가 세계적 종교 지도자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보여준 겸손과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불의에 대한 엄중한 질타가 사람들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족들을 언급하면서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며 사람들 심장의 무딘 살에 예리하되 차갑지 않은 메스를 가할 때 사람들은 과연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태도를 지키고 있는지 돌아봤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외치며 사회정의를 강조하자 그에 불편한 세력은 그가 공산주의적이라고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복음 안에 있고 교회 전통 안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공산주의의 발명품이 아니고 어떤 이데올로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그러면서 탐욕적 부를 질타한다. “복음은 부 자체가 아니라 부에 대한 숭배를 비난하는 것이다. 부에 대한 숭배는 사람들이 가난한 이들의 외침에 무관심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교황은 사회정의의 추구가 공산주의 같은 특정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교회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그래도 여전히 그가 불편하다. 교황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대놓고 교황을 비난했다. 공화당의 한 하원의원은 교황이 좌파 정치인처럼 행동한다며 교황의 의회 연설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고 극우 방송은 아예 교황을 ‘순수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비판이었다. 교황의 강론을 ‘마르크스 복음’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그는 “만약 2~3세기 성직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야기한 설교 구절들을 내가 반복한다면 누군가는 내가 마르크스의 설교를 전달한다고 비난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내가 굶주렸을 때 너희는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찾아주었다”는 마태복음의 구절을 인용했다.


◆가치 퇴행의 사회…침묵하는 종교


오늘날 어느 종교·종파·종단을 막론하고 한국의 종교가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기는커녕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종교는 자신의 허물을 인식하지 못한다. 불의를 꾸짖고 탐욕의 구조적 착취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이익과 교세의 확장에만 힘쓴다.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정의, 인격의 존엄성 등 가장 기본적인 가치조차 퇴행하고 억압되는 현실에 맞서 싸우지 않는 종교는 이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예수와 부처의 언행은 당시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담한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시대정신이고 인간 해방을 위한 영원한 미래의 의제 자체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복음과 불법의 실체다. 약자와 빈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 불의에 대한 비판과 허위에 대한 질타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종교가 사랑과 자비를 내세우며 사회적 선교로 운영하는 학교나 병원 등에도 비정규직이 만연하고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외면할 게 아니라 종교라서 할 수 있다고, 불요불급한 예산 줄이는 실천적 경영 합리화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사회에 모범을 보일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고 복음의 실천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한국 종교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는 우연적이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미래 의제에 대한 21세기적 복음의 해석과 실천이라는 점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그가 젊었을 때부터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수많은 목숨을 구한 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엄숙한 의제다.


그가 겪었던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 그리고 자본의 탐욕에 아부하는 자들은 또한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박해받던 많은 사람을 자기 목숨을 걸고 망명시켰던 교황은 지금 우리에게 박해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공감부터 회복하라고 깨우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우리 종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엄중히 물어야 할 때다.


“진실과 정의를 위한 노력, 독재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단호한 대답은 지금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말이다. 그게 어찌 한 종교나 종파의 문제이겠는가. 거짓 종교를 몰아내고 참된 자유와 인간 회복의 참 종교를 되찾아야 할 때다.

(일러스트 = 김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