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환관이 정보 정치를 강화하고 황제와 내각까지 장악…악의 뿌리는 발본색원해야
‘8인의 환관’이 발호했던 명나라
(사진)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한 가운데 12월 4일 서울 광화문 거리에 켜진 빨간 신호등 뒤로 연무 속 청와대가 희미하게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분노한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라고 외친다. 아무리 무능하고 무지하다고 해도 어찌 이 지경까지 망가질 수 있으며 아무리 썩었다고 해도 고작 몇 사람이 이렇게 국가의 운영을 농단할 수 있을까.

이러고도 나라가 굴러갔던 게 신기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아예 정부가 없어도 사회가 스스로 굴러갈 수 있을 만큼 견고해졌으니 모든 간섭과 통제를 제거하자고 한다. 무책임하고 뻔뻔한 말이다. 그런 말의 의도와 목적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모든 책임의 종결은 대통령과 최고경영자들에게 있다. 아무리 아래에서 잇속과 권탐(權貪)에 놀아나도 그들이 냉철하고 사리분별만 제대로 갖춰도 그런 농단은 금세 드러난다.

하지만 그가 그런 상황을 외면하고 직언을 기피하면 농단은 화농으로 커진다. 하물며 그가 그 농단에 가담하면 말할 것도 없다. 작금의 상황은 바로 후자에 속하니 더더욱 기가 막힐 뿐이다.

◆환관의 발호는 군주의 책임

2014년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한 사건이 둘 있었다. 하나는 세월호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십상시 파동’이다. 둘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영제 때 권력을 잡고 조정을 휘두른 환관들을 일컫는 말로, 황제를 나랏일에서 떼어내고 자신들의 마음대로 권력을 농단해 제국을 쇠퇴하게 해 결국 망하게 만든 자들이다. 우리의 십상시는 이른바 ‘정윤회 사건’에서 드러났다.

그것은 엉뚱하게 권력 내부자들끼리의 암투에서 비롯됐다. 공적 지위가 없는 민간인이 자신이 심어 놓은(그러나 최근 사태에서 드러난 것에 따르면 그가 심어 놓은 게 아니라 최순실이 심어 놓았던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청와대 관계자 7명의 비서관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권력을 좌지우지하다가 터진 사건이었다.

그런데 진실을 덮고 지라시에 휘둘리면 국가가 위태롭다며 엉뚱한 속죄양만 희생물로 삼아 뭉갰다. 그때 해결했어도 지금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만시지탄이 나오는 점에서 그건 권력 타락의 뇌관이었다.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하는 자들의 발호는 대통령의 비호에서 혹은 적극적인 지시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은 그들 십상시의 손안에서 놀아난 셈이기도 했다.

명나라는 환관의 발호가 극심한 왕조였다. 영종(선덕제) 때부터 발호하던 환관들의 위세는 헌종(성화제)에 이르러 극심해졌다. 효종(홍치제)이 환관의 정치 간섭을 배제하고 정치를 쇄신해 홍치중흥(洪致中興)을 이뤘을 때 잠시 멈칫했지만 무종(정덕제) 때 다시 고개를 들었다.

황태자 시절의 근시환관인 유근과 마영성을 비롯한 ‘8인의 환관(八狐)’이 전권을 휘둘렀다. 언관들의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환관의 힘은 끄떡없었다. 유근은 정보 정치를 강화하고 자신의 사가에서 황제의 조칙을 마음대로 행했다. 내각과 6부가 모두 환관에 장악됐던 것이다.

◆문고리 3인방과 시민들의 분노

한 나라의 장관이 대통령과 대면보고 한 번 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정권이 어찌 정상일 수 있는가. 장관보다 일개 비서관의 힘이 더 세니 모두 눈치만 봤을 뿐이다. 심지어 각 부서의 인사조차 그 비서관들이 좌우했다.

장관은 허수아비일 뿐 정책의 올바른 수립과 수행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오죽하면 막강 실세였던 전임 비서실장조차 ‘문고리 3인방’에게는 속수무책이었다는 말이 나올까.

그쯤이면 모두가 그 비서관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명나라의 무종 때 떠돌던 말이다. “영락시대에는 환관이 관청에 들어오면 그 공손함이 이를 데 없는데 지금은 환관을 옹부(翁父 : 어버이)라고 존칭하고 환관들이 관리를 호출함이 사노를 부르듯 하고 고관들도 환관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는 상태가 되었다.”

과연 이 나라 고관들은 달랐던가.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에 줄이나 대느라 혈안인 자들이 득세했고 그들의 눈 밖에 나면 한직에 밀리거나 심지어 기어이 옷을 벗어야 했다. 이런 청와대와 정부에서 고위 관리를 지냈다는 것은 명예가 아니라 수치에 가깝다. 늦게나마 그 실태가 드러났고 시민들은 분노했다.

최고 권력자의 타락과 환관들의 악행, 능력과 자질도 없고 도덕성조차 없는 장관들의 무능이 고스란히 드러난 지금이 이 악의 뿌리를 발본색원하는 절호의 기회다. 다시는 그런 자들이 권력을 탐하고 망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부끄러운 현재를 미래의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서야 되겠는가. 정부도 기업도 과정과 체제가 투명해야 한다. 대통령과 최고경영자들부터 스스로 투명해야 한다. 그게 지금 우리에게 던져진 시대의 사명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법이다.

지금 아랫물이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맑아지려고 하면서 윗물에게 맑아지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