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바꿀 일자리
일자리 57%가 ‘고위험군’…‘직업의 사회적 의미’ 고민할 때

4차 산업혁명 시대 '뜰 직업' vs '질 직업'
'로봇 한 대당 평균 실직자 6명.’ 지난 3월 미국 국가경제분석국(NBER)에서 펴낸 ‘로봇과 일자리’에 대한 보고서의 내용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7년까지 18년 동안 미국 시장에서 로봇으로 인해 없어진 일자리는 총 6만7000여 개에 달한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자동화가 지속된다면 2025년까지 미국에서 사라지는 일자리 수만 330만 개에서 610만 개로 추산된다. 로봇에 의해 실직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더 이상 ‘예측’이 아닌 ‘현실’이다. 청년과 중·장년 세대의 일자리 경쟁이 치열한 이 시점에 ‘로봇’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다. 미래의 일자리,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로봇과 일자리 경쟁, 공포가 과장돼 있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의 칼 베네딕트 프레이, 마이클 오스본 교수는 700여 개의 직업을 분석해 ‘고용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전체 직업의 47%가 산업 자동화로 사라질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은 35%, 중국은 무려 77%가 고위험군에 속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 이 보고서와 같은 방식을 국내에 적용하면 대략 57% 정도가 고위험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1월 한국고용정보원은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2025년까지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발달로 일자리를 위협받을 사람이 18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전체 일자리의 70%다. 여기까지만 보면 ‘로봇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갈 수 있다’는 공포감을 부추기기에 충분한 수치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이 같은 결과는 어디까지나 ‘기술적으로’ 대체 가능한 일자리의 숫자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공포는 과장돼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변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부분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자리를 대체하고자 하는 시장의 수요가 뒷받침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도 만들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모든 요소를 고려한다면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데는 지금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로봇에 대체될 고위험군 직업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운송업이다. 그중에서도 ‘트럭 운전사’는 위험 순위 1위로 꼽힌다. 트럭 운전사를 위협하는 것은 자율주행차다. 사람이 필요 없는 자동차가 대중화된다면 운전사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트럭 운전사들은 ‘트럭 운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운송해야 할 물건을 트럭에 싣는 일에서부터 물건이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하는 일까지 종합적인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의 교통 상황은 무인 자동차가 대체하기에 쉬운 환경도 아니다. 운전이라는 단순 행위는 로봇이 대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트럭 운전사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직업이 복합적인 판단과 사고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로봇 수술 시대, 의사는 어떤 일 할까

증권 애플리케이션인 ‘카카오증권’을 운영하는 두나무는 지난 3월부터 자체 개발한 로봇 기자인 ‘뉴스봇’을 도입했다. 실시간으로 증권 데이터를 분석해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 투자 자문 업무도 로보어드바이저에 의해 빠른 속도로 대체될 전망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초 전체 직원의 6%에 해당하는 2000명을 해고했다. 지난해 3월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인수를 결정한 이후의 일이다.

의사도 ‘로봇’이 대신한다. 로봇이 환자를 처방하고 수술을 진행하는 것은 기본이다. 물론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이미지로 된 임상 데이터를 분석하고 질병을 진단하는 데는 그야말로 ‘인간 의사’보다 탁월한 능력을 자랑한다.

‘의사’나 ‘기자’들은 미래 로봇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박 연구위원은 “직업의 의미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금 이 시대에 ‘의사’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대부분은 환자를 진료하거나 수술을 하는 장면을 생각한다. 로봇 의사들이 대체 가능한 ‘행위’들이다.

하지만 로봇 의사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여전히 존재한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미래에는 의학 데이터 정보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하게 축적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환자들이 ‘아프고 난 뒤’ 병원을 찾고 의사들을 만나지만 미래에는 의학 데이터를 통해 미리 질병을 관리하기 때문에 아파진 뒤 병원을 찾을 일이 현저히 줄어들지도 모른다.

환자가 병에 걸린 이후의 치료는 로봇 의사가 책임질 수 있을지 몰라도 병에 걸리기 이전 건강을 관리하는 영역은 로봇이 아닌 사람 의사에게 더 적합한 업무 능력이다. 의사라는 직업의 역할이 ‘병을 진료’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을 관리’하는 범위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그는 “로봇의 기술이 발달할수록 직업을 단순히 생계 수단으로만 보는 시선이 바뀌게 될 것”이라며 “직업이 갖는 ‘사회적인 의미’에 보다 집중할 때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돋보기 - 미래 유망 직업 1위는 ‘데이터 사이언스’

데이터 과학자, 데이터베이스 개발자, 빅데이터 엔지니어.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2015년 ‘미래 유망 직종’ 1순위로 데이터와 관련한 전문직을 꼽았다.

데이터 과학자는 데이터 수집·가공·분석을 통해 인사이트를 추출해 더 나은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전문가를 뜻한다.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데이터들이 축적될수록 이들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무엇보다 그 많은 데이터 중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추출해 내는 능력이 각광받으며 데이터 과학자들의 몸값 역시 높아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초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돌봄 서비스’가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지불 여력이 있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인공장기나 조직 등을 판매하고 관리하는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초저출산 사회에 접어드는 만큼 아이들이 더욱 귀해질 것이다. 지금도 키즈 시장은 유망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유망해질 것이란 얘기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난감을 비롯해 전문화된 교육 서비스 등 점점 더 ‘고급화된 시장’이 발달할 것이란 관측이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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