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젠트리피케이션 해법을 찾아서 - ②프랑스 파리
이시레몰리노, 땅값·임대료 올라도…정부 재정으로 가난한 예술가·저소득층 보호
프랑스 파리의 젠트리피케이션 해법… 자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공생'
(사진)=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서 본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모습이다. 파리의 중심지(1~3구)는 현대식 빌딩은 찾아볼 수 없고 중세시대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한경비즈니스 파리(프랑스)=김서윤 기자 I 후원 언론진흥재단] 파리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이자 박물관 같다. 공공기관·호텔·아파트 등 대부분의 건물은 중세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파리 중심가에서 현대적 빌딩은 찾아볼 수 없다.

휘황찬란한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낡은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놓아둔 채 내부만 부수고 공사하는 신기한 건축 기술을 목격했다. 낡아 못 쓸 정도가 돼도 전부를 헐어버리지 않고 부분 수리를 한다.

바닥엔 아주 오래전 공사해 놓은 것 같은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돌덩이들이 깊이 박혀 있다.

지하철은 공사한 지 수십 년은 족히 돼 보인다. 돌계단은 뭉툭하게 닳았고 전철은 덜컹덜컹 어느 순간 고장 나 서버릴 것만 같다. 파리 중심지에 에펠탑이 자리한 비르하켐역이나 시골마을의 베르사유역이나 마찬가지다.

지하철 역사에 들어서면 지린내가 진동한다. 애견을 분신처럼 데리고 다니는 일이 예사인 곳이기에 그들의 배변 냄새일 것이다.

그래도 싫지 않은 것은 그곳에서 하루 종일 예술가들의 라이브 연주가 울려 퍼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하철 출입구나 환승 통로는 그들의 공연 무대다. 파리 시내 곳곳에는 화가와 음악가, 행위 예술가 등 자유로운 영혼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예술에 심취해 있다.
프랑스 파리의 젠트리피케이션 해법… 자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공생'
(사진)= 파리 남부 외곽의 15구 이시레몰리노는 가장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예술가의 혼이 살아 꿈틀대는 이곳, 전통적 건축 양식으로 지은 화려하고 웅장한 옛날식 건물들…. 모든 것이 작위적이지 않고 거침없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것이 오래돼 낡았고 냄새 나지만 결코 초라하거나 궁상스럽지 않다.

대한민국의 시간이 10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면 파리는 1이다. 파리지엥에게는 빠르고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엿보이지 않는다.

욕망을 쌓아올리듯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빌딩을 짓지 않아도, 뭐든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아도 도시의 위엄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들의 여유로움은 강한 프라이드와 자부심에서 우러난 것이리라.

파리는 진정 예술을 사랑하는 도시이자 예술가들의 천국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어났다.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자신들이 가진 전통과 문화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은 도시가 발전하며 홍역처럼 붉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7월 말 파리 현지를 찾아 도시 개발 및 문화 담당 공무원과 예술가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프랑스 파리의 젠트리피케이션 해법… 자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공생'
◆ 공적 규제·재정 지원으로 예술가 보호

파리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45년 발생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면서다.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은 우리보다 먼저 산업화를 겪으며 이미 젠트리피케이션 몸살을 앓았다. 이들이 찾은 해결책은 노블레스 오즐리주를 바탕으로 한 공생이었다.

예술가들이 주축이 돼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섰고 그들을 보호한 것은 정부였다. 공적 규제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피해를 줄인 사례다.

파리는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도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전쟁으로 허물어진 거리 곳곳에 대규모 자본이 침투해 대형 상권을 이뤘고 소상공인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여지없이 쫓겨났다.

파리시는 이러한 현상을 막고 골몰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2006년 파리도시계획을 발표했다. 파리 전체 도로 길이의 16%를 ‘보호상업가’로 지정했다. 총 259km에 이르는 도로에 입점한 3만여 개의 상점이 보호 대상이었다.

보호상업가로 지정된 도로의 건물 1층에 입점한 소매 점포와 수공예 매장은 다른 용도로 전환할 수 없게 했다. 비어 있는 점포들도 모두 소매점과 수공예 매장으로 채워야 한다고 제도적으로 규정했다. 더 이상 거대 프랜차이즈가 진입할 수 없었다.

2004년 시작된 비탈 카르티에(Vital Quartier : 생기 있는 거리) 사업도 그 일환이다.

시로부터 도시 정비 사업을 위임받은 세마에스트(파리동부도시계획합동경제협회)는 총 11곳의 보호상업가의 비어 있는 건물 1층 매장과 토지를 사들여 가난한 소상공인에게 저렴한 비용에 임대했다. 당시 파리시의 지원금은 8700만 유로(1218억원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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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파리 남부 외곽 15구 이시레몰리노는 최근 신식 빌딩을 지어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파리의 남부 지역에서는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이 또다시 생겨나고 있다.

파리의 동서로 흐르는 센강을 따라 남서쪽으로 한참 걷다 보면 어느새 전통적인 파리의 웅장한 건축물들과 느낌이 확연히 다른 현대식 빌딩들이 높이 솟아 있는 게 보인다. 파리 15구에 자리한 이시레몰리노(Issy-les-Moulineaux)다.

이곳은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다. 거리 외관만 보면 서울과 가장 닮은 지역이기도 하다. 루브르박물관·오르세미술관·노트르담성당을 지나 저 멀리 고층 빌딩들이 들어선 이시레몰리노를 바라보고 있으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로 넘어가는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기분이 든다.

최근 도시 개발에 가속도가 붙은 이 지역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떻게 발생하고 있고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을까.

파리의 서쪽에 자리한 에펠탑과 가까운 캄브론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20분쯤 지나 이시레몰리노에 도착했다. 지하철로는 12호선의 종점역이다.

파리는 구를 나눌 때 가장 중심지를 1구로 두고 시계 방향으로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말아가며 점점 외곽으로 갈수록 큰 숫자가 붙도록 이름 지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이시레몰리노는 파리의 남부 외곽이다.

이시레몰리노는 예로부터 공업단지였다. 서울로 치면 구로구와 흡사하다. 과거 공장지대였던 구로공단에 신축 빌딩이 들어서고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옮겨가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한 과정도 비슷하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용 무기 제조 공장, 섬유 방직공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섰다가 1996년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파리시가 추진한 ‘그랑 파리(Grand Paris)’의 일환으로 지역의 황폐한 공장 부지의 잔해를 없애고 새롭게 탈바꿈시키면서다.

최근에는 신개념 지하철이 들어서는 등 쾌적한 공간으로 변화하며 땅값과 임대료가 당시에 비해 2~3배 정도 올랐다. 현재 파리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중심 지구(1~3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109㎡(33평) 아파트 한 채의 매매가는 7억~8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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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시레몰리노의 도시 개발 및 문화 담당 공무원 신시아 베필스 씨.

◆ 너무나 당연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갑작스러운 도시 개발로 치솟은 땅값과 임대료를 일반 서민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견뎌냈을까. 그렇다. 이곳 거주민들은 정부의 보호로 쫓겨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버려져 있던 공장을 무단으로 점거해 예술 활동을 해오던 작가들은 공장지대를 밀어내고 빌딩을 지어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타 지역으로 쫓겨나지 않았다.

그리고 땅값과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예술가 보호 정책 덕분이다.

이시레몰리노는 버려진 기찻길 교각 사이사이에 27개의 아틀리에(예술가들의 작업실)를 지어 그들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 제공했다.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아틀리에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3분의 1 수준이다. 계약 기간은 자동 연장돼 무기한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서는 다문화 도시가 돼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융합이 적합하다고 봤던 것이다. 작가들이 자리 잡은 이곳은 영화·음악·미술·만화 등 문화의 거리로 조성되며 타 지역민들에게까지 유명세를 탔다.

파리 15구 이시레몰리노에서 도시 개발과 문화를 담당하는 공무원 신시아 베필스(38) 씨는 “여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품는 도시”라고 소개했다.
전쟁통에 폐허가 됐던 도시에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지역이 발전했고 지금은 파리 중심가만큼 땅값과 임대료가 올랐지만 거주하던 예술가들이 타 지역으로 쫓겨나지 않도록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는 철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서 비롯됐다.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이곳 시민들은 모두 다 같이 자발적으로 행한다.

귀족처럼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귀족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이들은 저소득층을 보호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의무이고 명예로운 일이라고 여기며 산다. 베필스 씨에 따르면 이는 프랑스 혁명의 기본 정신인 자유·평등·박애정신에 기반 한다.

베필스 씨는 “파리 시민들은 도시가 발전해도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잘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하고 쫓겨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위한 아틀리에뿐만 아니라 지역의 소외 계층을 위한 임대 아파트를 지어 제공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젠트리피케이션 해법… 자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공생'
(사진)= 파리 15구 이시레몰리노는 지역의 예술가를 보호하기 위해 기찻길 교각 사이에 아틀리에를 지어 제공했다.

이시레몰리노 지역은 정부 정책보다 더 많은 수의 임대 아파트를 제공한다. 이 지역 거주민은 6만여 명 정도인데 임대 아파트 보급 수는 7700가구다. 10%가 넘는다. 이시레몰리노는 2023년까지 임대 아파트 보급률을 25% 수준으로 올릴 계획이다.

이에 대해 지역민들은 반대나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베필스 씨는 “이곳 사람들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세금을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며 “설사 부유층 중 마음속으로 가난한 이민자들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지라도 절대로 겉으로 싫은 티를 내거나 싫다는 의견을 내지 않는다. 그것이 매너고 고위층일수록 매너를 지키지 않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부유층이 모여 사는 강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면 반대 운동을 한다. 어떤 부모는 같은 아파트 내에서도 평형대를 따지며 자녀 친구들을 편 가르기 한다.

파리가 내놓은 젠트리피케이션 해법을 과연 한국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가 우선하는 한국에서 과연 가진 자들이 없이 사는 서민을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열까. 아마도 의식 수준의 한계와 현실적 벽에 부닥칠 것이라고 예상된다.

베필스 씨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는 “도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거대 자본이 몰리며 상권이 발달하고 소상공인들이 밀려나는 시장 논리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며 “다만 그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 정부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다양한 계층 간 문화 교류가 일어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며 “이민자들과 중산층의 교류를 인위적으로 막아 중산층과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나눠 놓는다면 오히려 범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시레몰리노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임대료 상승을 저지하는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 지역에 좋은 회사가 몰리며 임대료가 상승하고 있지만 반면 그만큼 세금이 늘어 오히려 전체 지역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업가 기욤 드 스토흐데 씨는 “이 지역은 파리 중심지와 가까워 최근 여러 회사들이 몰려들고 있고 최고급 신식 빌딩을 많이 짓고 있다”며 “새로 들어서는 백화점과 쇼핑몰에 지역민이 입주하면 시 차원에서 다양한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의 젠트리피케이션 해법… 자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공생'
(사진)= 왼쪽부터 권순철·박인혁·장광범·정대수 작가. 이들은 프랑스 파리 이시레몰리노로부터 아뜰리에를 제공받아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 변기통 나뒹굴던 곳에서 예술 꽃피운 한국인들

프랑스 파리 남부 지역에 자리한 이시레몰리노는 예술가 보호 정책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한국인 화가들이 있었다. 이시레몰리노가 지역 예술가들을 위해 제공한 아틀리에 27곳 중 현재 11곳에 한국인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

프랑스 현지에서 만난 정식 명칭 ‘소나무회’의 1대 회장인 화가 권순철(74) 작가는 “1990년대부터 이시레몰리노 지역의 버려진 탱크 정비 공장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한국인들이 만들어 낸 역사”라며 당시 상황을 들려줬다.

현재 아틀리에에 입주해 있는 한국인 화가 박인혁(40)·정대수(57)·장광범(55) 작가도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1991년 권순철·이영배·곽수영·정재규 씨 4인은 한국인 및 외국인 작가 13명을 모아 협회를 설립했다.

그들은 그해 12월 이시레몰리노 지역에 자리한 프랑스 국방부 소유의 옛 탱크 정비 공장을 인수받아 46개의 아틀리에로 꾸몄다. 그들은 공장부지 4959㎡(1500평) 중 661㎡(200평)에 전시관을 만들어 10년간 작품 활동을 했다.

권 작가는 “그곳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탱크 수리 공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다”며 “이후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특수 극장으로 운영되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버려진 곳이어서 더러운 변기통과 오물이 나뒹구는 등 황폐함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형식상 임대 계약서를 썼는데 임대료는 전기요금과 수도요금 등을 포함해 1년에 100만원이었다. 거저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은 2001년까지 12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소문이 프랑스 전체에 퍼지자 각국의 가난한 이민자 화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던 2001년 도시 개발 차원에서 공장들을 철거하며 작가들이 갈 곳을 잃게 생겼다. 새로운 빌딩이 들어서면서 다른 지역으로 쫓겨날 신세가 된 이들에게 이시레몰리노가 마련해 준 기찻길 굴다리 밑 아틀리에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이시레몰리노는 정부 철도청(SNCF) 소유의 기찻길을 개조해 아틀리에로 만들 수 있도록 허가 받아 지역 예술가들에게 내줬다. 99~132㎡(30~40평) 정도 되는 공간의 월 임대료(수도요금·전기요금·관리비 포함)는 10만원이었다.

지금은 당시보다 많이 오르긴 했지만 주변 시세의 3분의 1 수준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소나무회 소속 작가는 외국인을 포함해 100여 명이 넘는다.
프랑스 파리의 젠트리피케이션 해법… 자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공생'
(사진)= 이시레몰리노에서 화가들에게 마련해 준 아틀리에 내부 모습. 권순철 작가가 소개하고 있다.

박인혁 작가는 “파리 시내에서 이 정도 작업실을 구하려면 평균 1500유로(210만원)는 줘야 한다”며 “작가들에게 저렴한 비용에 작업실을 임대해 주는 것이 타 지역에까지 소문이 나면서 이곳에 입주하려는 작가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주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작가들이 나가야 빈 작업실을 다른 이에게 임대하는데 계약 기한이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용을 많이 준다고 해도 작가가 제 발로 걸어 나가지 않는 이상 함부로 다른 이에게 줄 수 없다는 원칙이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에 따르는 시민의식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해 한마디하겠다는 정대수 작가는 “프랑스인들의 높은 시민의식을 본받아야 한다”며 “파리의 최고 부유층이 살고 있는 지역의 동네 공원에 국제 난민 수용소를 지었는데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것이 파리 부르주아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정책을 한국에 적용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를 것”이라며 “프랑스는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인권 보호를 최우선에 두는 프랑스에서는 순서를 기다리면 언젠가는 차례가 온다는 믿음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장광범 작가는 “파리는 신축 아파트를 지을 때 100가구 중 2가구는 작가를 위해 제공하고 임대료도 소득수준에 따라 다르다”며 “가난한 작가를 대상으로 임대 아파트를 제공하다가 작가가 성공해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더 이상 아파트를 사용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놓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파리에는 권리금이란 것도 없고 건물주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임대료를 급격히 올리지 못한다”며 “법적으로 1년에 3% 이상 올리지 못하고 임대 계약 기간도 최소 10년 이상”이라고 파리 현지 상황을 전했다.

s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