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셜 리포트Ⅰ = 초대형 IB 탄생 ]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국내 1호 초대형 IB’ 키워낸 오너 금융맨
한국투자증권 “11월 말 대출업무 개시”
(사진)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 사진=한국경제DB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배가 파도를 도망가려고 하면 뒤집힌다. 그 파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정면 돌파하고 넘는 것밖에 없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는 신념이다. 한국투자증권이 ‘국내 1호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낙점됐다. 증권사들 간 치열한 IB 대전에서 승기를 잡은 셈이다. 공격적으로 자기자본 규모를 늘리는 증권사들의 덩치 싸움 틈바구니에서도 오랜 시간 차근차근 관련 사업의 전문성을 높이며 준비해 온 결과다.

◆ 발 빠른 행보, 올해 1조원 자금 조달

국내 증권업계에서 처음으로 단기금융업(발행어음)을 인가받은 한국투자증권은 11월 13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국내 1호 초대형 IB’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먼저 밝혔다. 하지만 한 발 앞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 된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의욕에 넘치는 모습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4조3450억원)의 2배인 약 8조7000억원까지 어음 발행이 가능하다. 우선 올해 어음 발행을 통해 1조원 정도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올해를 한 달여 정도 남겨둔 상황에서 매우 공격적인 행보다. 시장 선점의 기회를 잡은 만큼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2018년에 4조원, 2019년에 6조원, 2020년에 8조원으로 발행어음 규모를 순차적으로 늘려 갈 계획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으로 조달된 자금을 ‘기업금융’에 우선적으로 투자할 방침이다.‘국내 1호 초대형 IB’의 타이틀을 거머쥔 만큼 정책의 취지에 맞춰 모범 사례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1년 6개월 내 50% 이상을 기업금융 자산에 투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운용 초기 혁신·중소기업에 대한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 은행권에서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않은 저신용 등급 기업이나 회생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 등 모험자본 공급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투자처 발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발행어음뿐만 아니라 ‘좋은 투자 대상’을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선점 효과를 크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국금융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한국투자파트너스와 이큐파트너스 등이 비상장 네트워크와 투자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업금융을 확대하는 데 계열사 간 시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초기 단계에서 무리하게 몸집을 불려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치밀하게 사업을 구상하고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는 전략이다.

오랫동안 전담팀을 꾸려 준비해 온 만큼 자신감이 넘친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발행어음 업무 허용이 입법 예고된 이후 올해 2월 사내 전문 인력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F)팀을 발족하고 사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올해 6월 경영기획총괄 산하에 종합금융투자실을 신설해 본격적으로 관련 업무를 준비해 왔다. 현재 12명인 인력 조직을 향후 20명까지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덕분인지 한국투자증권은 이미 첫 발행어음 상품의 윤곽이 나올 정도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르면 11월 말 발행어음과 발행어음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판매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미 11월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발행어음 약관’과 ‘발행어음형 CMA 약관’ 심사를 신청했다. 통상 약관 심사 기일이 10영업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르면 11월 27일부터 발행어음 업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등의 이슈가 있어 출시 일이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 두 번의 패배 설욕, ‘초대형 IB 대전’ 완승

김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동원증권 명동지점 대리로 입사한 뒤 오랜 기간 증권업과 자산운용업에 몸담았다. 그만큼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오너 금융맨이다.

1982년 동원증권의 전신인 한신증권을 인수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2003년 동원증권을 그룹에서 분리해 한국투자금융지주로 탈바꿈시켰다. 김 회장은 한신증권을 김 부회장에게 넘겼고 김 부회장은 한국투자증권 등 굵직굵직한 인수에 성공하며 성장을 이끌어 왔다.

증권업계가 한창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2011~2013년 한국투자증권이 국내 증권사 순이익 1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카카오와 손잡고 인터넷 전문은행 진출에 성공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10년간 한국투자증권은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는 데 성공하고 한국투자증권을 IB 강자로 키워낼 수 있었다.

김 부회장은 2020년 한국투자증권을 아시아 최고 수준의 투자 금융회사로 만드는 중·장기 목표를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기업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주간 등 자기자본을 투자하는 투자금융 업무에 특히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초대형 IB를 추진하는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최근까지 증권사 인수전에 번번이 실패하며 쓴맛을 봤다. 2015년 KDB대우증권은 2조4000억원을 제시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가져갔고 이듬해 현대증권 인수는 1조2500억원을 베팅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에게 밀렸다.

이번 ‘발행어음 업무 인가’는 그런 점에서 김 부회장에게도 의미가 남다르다. 그간 IB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내실을 다져온 한국투자증권이 아시아 최고 수준의 IB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초대형 IB 설립 취지에 맞는 사업 모델을 찾아 한투증권만의 수익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모험자본의 투자 발판을 마련하고 스타트업의 자금 선순환을 주도해 가며 수익성 역시 포기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1963년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게이오기주쿠대 대학원 경영관리 석사. 2004년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 2005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2005년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 2011년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