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승마와 경영
“혼자 달리는 말은 기수와 함께하는 말을 이길 수 없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최현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수십년간 민간 싱크탱크 등에서 경영학 관련 연구와 컨설팅 활동을 하다 대학 강단에서 인생 2막을 열고 있다.

그는 41세 때 취미로 승마를 시작한 이후 그 매력에 빠져 5600만원짜리 경주마의 주인이 됐다. 마주로서 2012년부터 4년간 서울마주협회 감사를 맡았다. 최근엔 승마를 통해 배우게 된 경영학적 교훈을 담아 ‘승마와 경영’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최 교수는 “말은 기수의 적절한 채찍질을 통해 가진 능력의 120%를 발휘하는 법”이라며 “우수한 기수는 말과 협력하는 반면 열등한 기수는 말을 복종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승마와 경영은 감독이 선수와 혼연일체가 돼 목표를 이루는 공통점을 지녔다”며 “승마를 알면 기업 경영의 해법이 보인다”고 말했다.
최현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승마를 모르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다”
(약력) 1960년생. 1983년 울산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카이스트 경영과학과(조직론) 공학석사. 1999년 카이스트 경영공학과(금융공학) 공학박사. 1985년 에너지경제연구원. 1988년 데이콤. 1999년 포스코경영연구소 정책연구센터장. 2017년 포스코경영연구원 상무. 2017년 11월 고려대 경영대 산학협력중점교수(현). /사진=서범세 기자

▶경영의 어원이 승마술에 있다고요.

“경영이 영어로 매니지먼트잖아요. 매니지먼트는 라틴어 마누스(manus : 손)와 이탈리아어의 마네지아르(maneggiare : 다루다)에서 유래됐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기업을 운영하던 사람들은 자신의 경영활동을 마누스 또는 마네지아르로 불렀어요. 이는 말을 몰아 목표점에 도달하는 기술, 즉 승마술을 뜻하기도 합니다.

현대의 승마 경기와 경마가 17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생기면서 당시 이탈리아인들은 마차 경주의 승마술을 경영과 동일시하게 됐습니다. 네 마리나 되는 말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어 목표를 향해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경영의 일종으로 본 거죠.”

▶10년 이상 승마를 즐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흔히 중독성 강한 스포츠로 골프를 꼽는데요, 사실은 테니스·낚시·승마를 ‘3대 중독성 스포츠’로 칭합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팔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끊기 힘든 게 테니스라고 하더라고요. 낚시하는 사람들은 낚시터에 못 가면 집 안 욕조에 낚싯대를 드리울 정도고요.

그에 못지않게 중독성 강한 스포츠가 승마인데요, 승마인들은 말에서 떨어져 갈비뼈나 견갑골이 부러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승마인들은 다치더라도 치료에 대한 걱정보다 말을 타지 못하게 되는 걸 더 걱정해요. 그 정도로 중독성이 강해요. 한국 승마인 4만 명 대부분이 저와 같은 생각일 겁니다.”

▶승마의 매력은 뭔가요.

“제가 승마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말 타는 사람이 부럽고 멋있어 보여 시작했어요. 말의 아름다움에 반하기도 했고요. 굳이 그럴싸한 설명을 붙이자면 승마는 인간이 동물과 교감하는 유일한 스포츠란 점이에요.

말은 제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승마를 할 때면 말이 내 기분이나 의도를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아요. 말을 타다 보면 천천히 페이스를 조절하며 가다가 특정 지점부터 속보로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죠.

말과 교감이 이뤄지면 해당 지점에서 굳이 지시하지 않아도 말이 알아서 행동합니다.

승마는 운동 효과도 굉장히 좋습니다. 골프나 테니스는 허리에 무리를 주는 반면 승마는 허리 통증을 줄이고 허리 근육과 골반을 강화해 줘요. 미국 정형외과 의사들은 디스크 환자의 재활 치료로 승마를 권할 정도예요. 자세 교정 효과도 있고요. 불면증에도 특효예요.

아내와 매주 승마를 즐기는데요, 아내는 커피 두 잔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체질인데 승마를 한 날에는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잠을 이기지 못할 정도예요.”
최현우 고려대 경영대 교수 “승마를 모르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다”
(사진) 최현우 교수 제공

▶승마는 귀족 스포츠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편견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만 보더라도 그래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딸 조지나 블룸버그와 고(故)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의 손녀인 샬럿 카시라기, 그리스의 선박왕이던 고(故)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의 손녀인 아시나 오나시스 루셀 등이 출전했어요.

옛날엔 더했어요. 중세 시대에 승마를 위해 말 두 마리를 키우려면 연간 10에이커(4만469㎡=1만2242평)에서 나는 곡식을 몽땅 먹여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대중화했죠. 경마장에는 매년 1300필 이상의 경주마가 들어가요. 최소 2000만원에서 3억원까지 가는 말들이죠. 이 말들은 몇 년간 경주마로 활용되고 나면 가치가 100만원대로 확 떨어져요.

승마장에서는 이 말들을 길들여 승용마로 씁니다. 경마장과 퇴역 경주마가 생기면서 승마를 보다 쉽게 즐길 수 있게 됐죠.

말 먹이로 수입하는 곡물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해졌어요. 인건비를 빼고 월 70만원 정도면 승용마를 소유할 수 있어요. 승마장에서 승용마를 빌려 타는 비용은 골프보다 저렴해요. 회당 5만원 정도면 승마를 즐길 수 있습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뭔가요.

“말에 대해 눈뜨면서 승마 이야기가 경영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어느 순간 승마를 통해 배우게 된 경영 관련 시사점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주변 사람들에게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경영학적 관점을 곁들여 설명했더니 다들 흥미를 보이더군요.

그 덕분에 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기회가 많았어요. 강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하면 더욱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어서 책을 펴내게 된 겁니다.”

▶승마와 현대 기업 경영의 연관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모든 스포츠 경기의 결과는 감독이 아닌 선수의 성과로 최종 결정됩니다. 승마도 마찬가지예요. 경마에서는 말의 코가 결승선에 먼저 닿아야 하고 장애물 경기에서는 말이 장애물을 거르지 않고 얼마나 빨리 넘었는지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승마가 다른 스포츠 종목과 다른 결정적 부분이 있어요. 승마 이외의 스포츠는 감독이 출전 선수를 뽑고 훈련하고 전술을 짜지만 경기에 직접 출전할 수는 없어요.

반면 승마는 감독이 경기에 직접 출전하는 스포츠입니다. 기수가 말과 직접 소통하고 리드해야 해요. 말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목표를 향해 가는 경기가 승마입니다.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독인 경영자와 선수인 임직원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과를 내야 합니다.”

▶기업 경영의 성패, 결국 소통과 협력 여부에 달려 있겠군요.

“맞습니다. 우수한 기수는 말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반면 열등한 기수는 말을 무작정 복종시키려고만 해요.

성장하는 기업과 쇠퇴하는 기업도 비슷한 측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성장 동력을 잃은 기업의 공통점은 고객과 직원의 협력을 얻기보다 그들을 설득하고 복종시키려고 합니다.

세계적 승마 선수가 말과 뒹굴며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기업 경영자도 고객 및 임직원과 소통해야 해요.”

▶책을 통해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말은 선천적으로 약한 도주 동물이에요. 포식동물이 가장 우선적으로 공격하는 부분이 목덜미나 엉덩이라는 것을 선천적으로 알고 있어요. 말은 이 부위에 따가운 느낌이 오면 본능적으로 뛰어요. 기수가 말의 엉덩이나 목을 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그런데 채찍을 사용할 때에도 룰이 있어요. 채찍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인데요, 채찍을 때리기 전 말이 인지할 수 있도록 눈 옆에서 채찍을 세 번 흔들어 줘야 합니다. 지금 빨리 뛰지 않으면 채찍을 때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야만 말이 반감을 갖지 않고 속도를 제대로 올릴 수 있어요.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근과 채찍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고요. 채찍보다 사전 경고가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예요.

서양의 우량 기업 오너들은 자녀에게 반드시 승마를 가르쳐요. 리더십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승마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죠.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대 재학 중 아시아승마선수권대회 마장마술 단체전에 참가해 은메달을 딸 정도로 훙륭한 선수였어요.

말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어요. 리더십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경영자나 관리자만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리자나 경영자를 이해하고 자신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일반인이 마장마술 종목을 처음 접하게 된다면 기수가 말 위에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유유자적해 보이죠.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말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겁니다. 기수가 말이 알아서 움직이도록 만들기 때문이에요.

승마인들이 마장마술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기가 막혀요. 그 움직임을 일반인은 볼 수 없죠.

직장인들은 흔히 CEO가 그저 자리에 앉아서 서류에 사인이나 하고 지시나 하면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CEO는 마장마술 선수와 같습니다. CEO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사람들은 알 거예요. 경영자 자리가 얼마나 바쁘고 고독한 자리인지 잘 알 것이란 얘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예를 들죠. 만약 53kg 몸무게의 기수를 태운 말과 혼자 달리는 말이 경주를 하면 어떤 말이 이길까요. 기수가 탄 말이 훨씬 빠릅니다. 왜 그럴까요. 적절한 시점에서의 채찍질 때문입니다.

말은 기수의 채찍을 통해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고유 능력의 120%를 발휘하게 되는 겁니다. 자연 상태의 말은 올림픽 장애물 종목의 높이를 뛰어넘지 못해요. 기수가 넘을 수 있도록 만든 겁니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납니다. 기업의 연구원들을 예로 들죠. 이들은 특정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나면 거의 탈진하다시피 합니다. 일하다가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도 수두룩해요.

만약 연구 조직의 관리자 없이 각자가 알아서 일한다면 어떨까요. 해당 기업의 연구센터는 없애는 편이 나을 겁니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