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앞서가는 중국과 일본… ‘캐나다 모델’로 실속 중심 접근해야
자원 개발, ‘전면전’보다 게릴라전’이 답이다
[한경비즈니스= 강천구 영앤진회계법인 고문,·한국광물자원공사 전 본부장]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국의 연간 수출액은 5738억65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5.8% 늘었다. 1956년 무역통계 작성 이후 61년 만의 사상 최고 실적이다. 10만 개 기업이 반도체와 일반 기계 등 9100가지가 넘는 품목을 팔아 번 돈이다.

이 품목들은 이른바 ‘원자재’로 만든다. 하지만 한국은 원자재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거꾸로 가는 중남미 자원 정책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원의 안정적 확보 문제는 최상위 어젠다다. 자원은 이제 국가 간 이해관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전문가들은 20세기 냉전의 원인을 이념의 갈등에서 찾았다면 21세기의 냉전은 원유와 가스 그리고 광물 같은 자원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본다. 특히 미개발 지역이 많은 아프리카·남미·동남아 지역은 그야말로 ‘자원의 전쟁터’다.

아프리카는 과거 미국과 유럽이 독차지하는 자원의 보고(寶庫)였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중국이 막대한 규모의 저금리 차관과 인프라를 앞세워 자원을 선점하고 있다. 일본과 인도 등도 이에 가세한 지 오래됐다. 남미 지역도 철광석·구리·리튬 등을 확보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원은 이해관계인들이 공급과 가격을 의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이른바 전략적 상품이 됐다. 최근에는 희소성과 편재성을 이용해 자원을 무기화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을까.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한국광물자원공사 페루 지사’ 사례다.

한국광물자원공사 페루 지사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1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인 2015년 3월 상주 직원을 철수시켰다. 지금은 현지에서 고용한 직원만 남아 마무리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소위 자원의 보고라는 페루·칠레·볼리비아 등에서 한국·중국·일본의 움직임이 엇갈리고 있다. 이들 중남미 지역에는 세계 광물 중 리튬 68.2%, 구리 46.8%, 니켈 18.3%, 철광석 13.5%가 묻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매장량의 4분의 1 정도인 원유(23.1%)도 있다.

중국은 몇 년 전부터 계속 구리·니켈 등에 이어 리튬마저 선점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기자동차 업체 비야디(BYD)가 칠레의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현지 기업 사냥에 나섰다. 볼리비아에서는 한국이 2013년 7월 철수한 리튬 사업권을 중국 기업이 따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4년 7월 칠레를 방문해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자원 개발 분야에서의 연대 강화에 합의했다. 일본이 수입하는 구리의 48%는 칠레산이다. 아베 총리는 칠레와의 관계 강화로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보장 받았다.

최근 들어 국제 원자재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며 다시 해외 자원 개발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지만 한국은 역주행하고 있다. 한국은 공기업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도 기존의 해외 지사 상주 인력을 철수하고 보유 지분마저 매각하고 있다.

삼성SDI는 지난해 칠레 정부가 실시한 리튬 가공 사업 입찰에 참가해 1차 심사를 통과하고 중국 등 6개 업체와 최종 경쟁하고 있다. 칠레 리튬 개발 사업은 2009년 7월 광물자원공사가 삼성물산과 공동으로 진출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2013년 10월 사업이 진척을 보이지 않더니 결국 칠레 정부로부터 사업 보류 결정을 통보 받고 현재는 투자금 모두를 찾아 왔다.

한국의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은 부침이 너무 심하다는 게 외국 투자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6년도 해외 자원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정부의 신규 자원 개발 사업은 한 건도 없다. 그나마 10건의 신규 사업은 전부 민간 기업이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산업에 필요한 자원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생색내기로 자원을 개발한다는 소리도 있다. 자원 정책은 단기 시세나 정치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장기적 가치를 보고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투자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 따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자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해외 자원 개발에 뛰어들었다. 중국의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해외 자원 개발 정책은 세계의 자원 시장 질서를 단시간에 변화시켰고 앞으로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일본의 자원 확보전

중국 정부는 자원 확보를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해 리커창 국무원 총리 등 중국 정부 주요 인사들은 이미 수차례 아프리카를 순방했다. 또 상하이협력기구, 중국·아프리카협력포럼 등 다자간 협력 채널을 통해 아프리카 자원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 가고 있다.

1월 18일자 중국투자자문망에 따르면 중국의 다우기술이 1월 4일 자회사를 설립해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의 코발트 사업에 나섰다. 다우기술은 자회사 설립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우기술은 기존 자회사인 홍콩가나를 통해 3억5000만 위안(588억원)을 투자해 콩고 MJM의 지분 100%를 매입했다. MJM은 DR콩고에서 코발트와 구리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DR콩고는 전 세계 코발트 매장량의 47.2%(340만 톤)를 갖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500대 기업에 포함된 4개의 국영기업을 통해 적극적인 자원 개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중국 국영석유기업(NOC)은 글로벌 경제 위기로 가격이 저렴해진 해외 광구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 석유 및 가스광구 지분 매입에 약776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 분야에서도 2002년부터 2015년 말까지 전 세계 43개 기업의 지분을 매입했다.

한국과 비슷한 자원 빈국인 일본은 어떨까. 일본 정부는 자원 개발 전문 기업과 함께 해외 자원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국내외에서 직접 개발, 확보한 석유·가스 생산량을 국내 소비량으로 나눈 비율)은 2004년 이후 22% 수준에서 정체됐다가 2010년 에너지 기본 계획을 개정해 2030년 목표를 40% 이상으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자원 확보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2015년 기준으로 53%까지 끌어올렸다. 일본은 특히 공기업과 민간 기업 합병으로 탄생한 일본국제석유개발(Inpex)을 하루 생산 규모 70만 배럴의 지역 메이저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집중 지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석탄·구리·아연 및 희유금속(희소금속;산출량이 매우 적은 금속) 등 광물 자원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석탄 자주개발률을 40%에서 2015년 48%, 2030년 60%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구리·아연의 자주개발률은 80%, 희유금속의 자주개발률은 50%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일본 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원 외교를 강화하고 대외 원조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또한 민간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비율을 투자금의 50%에서 75%로 상향 조정하고 자원 에너지 종합보험을 통해 리스크를 보전하는 등 민간투자를 촉진하고 있다.

◆韓, 대규모 개발보다 작은 광구부터

한국의 해외 자원 개발 역사는 40년 남짓하다. 기술·경험·인력 등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글로벌 메이저 기업, 거대 국영기업과의 경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자원 외교를 통한 자원 확보로 대응하고 있다.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우선 정상급 자원 외교로 큰 물꼬를 트고 장관급 협의, 각종 자원협력위원회, 해외 공관 등을 활용해 전략적 파트너로 신뢰를 쌓는 것이 관건이다. 자원 외교는 한국 기업들이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국은 국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96%, 광물 자원의 90% 이상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세계 4위의 에너지 및 광물 수입국이다. 한국은 해외 의존형 자원 수급 구조에 따라 에너지와 광물 자원이 정세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자원이 국민경제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 한국 산업 내 고부가가치 첨단 제품 생산 비율이 높아지면서 핵심 자원으로 떠오른 희유금속을 들 수 있다. 다만 자원 확보를 위한 자원 개발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단순하다.

자원 개발은 탐사·개발·생산까지 각 단계마다 수년 이상이 걸린다. 그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높은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는 고위험 사업이다. 세계적 거대 자원 기업인 BHP빌리턴(호주의 글로벌 광산 기업)이나 리오틴토(다국적 광산·자원 기업) 등의 탐사 성공률은 20~30% 수준이다.

하지만 성공 시에는 고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이들 메이저 기업들은 자원 가격의 변동성과 관계없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매년 적게는 1억 달러에서 많게는 5억 달러를 투자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탐사하고 있다. BHP빌리턴은 지난해 광물 탐사에 6000만 달러(약 642억원)를 지출했다.

한국은 이제 자원 개발 투자 방식을 바꿔야 할 때다. 기존 방식과 달리 작은 규모의 광구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자원 개발 투자는 큰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자원 선진국인 캐나다처럼 작은 규모의 광구 개발권을 여러 개 확보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캐나다는 그렇게 확보한 개발권을 다른 기업에 차익을 남기고 매각하는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수십억 달러 내지 수백억 달러 규모로 투자하며 자원 개발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중국과 맞서 경쟁을 벌이기보다 작고 실속 있는 광구를 찾아야 한다.

현재 광물 가격이 어느 정도 올라 최적의 확보 타이밍은 놓쳤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정부와 기업이 전략을 잘 수립해 진출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원 개발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선택이 아닌 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