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특별 기획 : 4차 산업혁명의 최전선, ‘스마트 시티’를 가다②]
-2013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추진, 이노베이트UK 통해 글래스고·브리스톨 지원
‘낡은 도시’를 똑똑하고 안전하게…영국의 스마트 시티 실험
(사진) 영국 스코틀랜드 지역에 위치한 글래스고. 영국의 첫 스마트시티다.


[영국 런던·글래스고=이정흔 기자] 전미소비자기술협회(CTA)는 2025년까지 지구상에 88개의 스마트 시티가 탄생하고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70%가 스마트 시티에 거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0년까지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기 위해 각국이 쏟아부을 투자액만 353억5000만 달러(약 37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 시티’ 붐이 일고 있다. 영국은 그중에서도 ‘스마트 시티’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2013년 영국 정부 차원에서 ‘미래 도시(future of cities) 프로젝트’를 론칭하는 등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 왔다. 올해로 5년 차를 맞은 영국의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영국의 대표적인 스마트 시티는 글래스고와 브리스톨을 다녀왔다.


영국이 ‘스마트 시티’에 일찌감치 눈뜨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영국의 수도인 런던은 유럽의 정치·문화·경제의 중심 도시 중 하나다. 약 2000년 전 로마인들이 론디니움이라는 요새를 지은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해 온 ‘도시화의 역사’가 매우 깊은 지역이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다 보니 현재 런던에 거주하는 인구가 900만 명에 달한다. 지금 같은 속도로 인구 증가가 지속된다면 2030년까지 런던에 거주하는 인구는 1000만 명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심각한 도시 노후화 문제 외에도 급격한 인구 증가로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교통 체증과 범죄율의 증가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런던시가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20억 파운드(약 3조원)에 달한다. 런던 시민들도 매년 평균 70시간의 교통 체증을 추가로 겪어야 한다.
‘낡은 도시’를 똑똑하고 안전하게…영국의 스마트 시티 실험
(사진) 영국 런던 근교에 위치한 브리스톨. 2017 스마트시티 지수 1위를 차지했다.


◆영국의 골칫거리 된 ‘도시문제’


스마트 시티는 런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영국 내에서도 런던과 다른 지역들과의 경제적·사회적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런던 외의 다른 도시들의 지역 발전을 꾀하는 데도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스마트 시티는 교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도로를 확장하는 방법이 아니라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방법을 택한다. 말하자면 도시 곳곳에 센서와 카메라를 설치한 뒤 실시간 도로 교통 정보를 수집해 이를 차량 운전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운전자들이 복잡한 도로를 피해 우회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공공 데이터를 활용하고 연결함으로써 나타나는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크지 않지만 그 효과는 만만치 않다. 영국은 실제로 이런 방식을 통해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의 교통 통행 소요 시간을 25% 감소시켰고 교통사고를 50% 줄이고 대기오염을 10% 줄였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영국 정부는 스마트 시티를 추진하는 데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시청 등 지방자치단체,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을 포함한 기업 그리고 대학 등 다양한 참여자들이 ‘협력해’ 스마트 시티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영국 정부 산하 기관인 이노베이트UK의 2013년 ‘퓨처 시티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에는 런던·브리스톨·글래스고를 비롯해 30여 개의 도시가 참여해 저마다 ‘스마트 시티’를 구현하기 위한 청사진을 선보였다. 이노베이트UK는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구현할 수 있도록 각각의 도시들에 5만 파운드(약 7000만원)의 자금을 지원했고 이 중 우승자로 선정된 글래스고에는 추가로 2400만 파운드(약 350억원)를, 또 런던·브리스톨·피터버러 등 세 도시에는 각각 300만 파운드(약 43억원)의 자금을 추가로 지원했다.
‘낡은 도시’를 똑똑하고 안전하게…영국의 스마트 시티 실험
(사진) 글래스고의 오퍼레이션센터는 도시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로부터 취합한 공공 정보를 통합 관리하고 분석하는 일을 맡고 있다. / 제공=글래스고시


◆영국 첫 스마트 시티 ‘글래스고’


2013년 이노베이트UK의 ‘퓨처 시티 프로젝트’ 우승자로 선정된 글래스고는 영국의 ‘첫째 스마트 시티’다. 그만큼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스마트 시티 중 하나로 손꼽힌다.


글래스고가 스마트 시티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 또한 이 도시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에든버러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도시로 꼽히는 글래스고는 20세기 초만 해도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로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던 대형 도시였다. 증기엔진을 개발한 제임스 와트, 파라핀을 제조한 제임스 영, 열역학을 발견한 로드 켈빈 등 수많은 기계공학자들이 글래스고대에서 수학하며 ‘2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곳이다.


하지만 번영하던 도시는 산업의 중심이 정보기술(IT)로 변화하며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도시가 낙후되며 런던 등 대도시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인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실제로 2013년 기준으로 글래스고의 실업률은 다른 도시들보다 50%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킬 돌파구가 다름 아닌 ‘스마트 시티’였다. 경제적으로 부흥했던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결부된 글래스고의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는 이 도시에서 개최하는 국제 행사들과 연관이 깊다.

글래스고는 2014년 영연방올림픽게임(커먼 웰스 게임)을 개최했다. 스마트 시티와 관련한 기반 시설 역시 이를 기점으로 완성됐다. 국제적인 행사를 치르기 위한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글래스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도시의 교통 시스템을 개편한 것이 첫 시작이었다. 글래스고 시 의회는 도시 곳곳에 500여 개의 카메라를 달았다. 빌딩과 가로등에는 교통량을 비롯한 공공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센서를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이노베이트UK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이 큰 뒷받침이 됐다. 글래스고는 이노베이트UK로부터 스마트 시티 시범 도시로 선정된 뒤 2014년 첫해에만 2400만 파운드를 지원 받고 그 후 3년간 각각 300만 파운드씩 총 3300만 파운드(약 482억원)를 영국 정부로부터 지원받았다.

이 밖에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진행되는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마트 시티 구축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현재 ‘미래 도시 글래스고’에 투입되는 자금 중 60%는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이고 40%는 EU 차원에서 진행되는 펀딩 프로젝트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글래스고는 2014년 기반 시설을 구축한 이후 현재까지 공공장소에 설치된 카메라 수 등에서는 큰 변화가 없다. 그렇다고 글래스고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가 정체된 것은 아니다. 공공시설물에 부착된 카메라와 센서 등을 통해 유효한 ‘공공 데이터’가 쌓이고 있는 덕분이다. 여기에 데이터 분석과 관련한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시민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데이터 지표’들의 활용도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그 중심 역할을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오퍼레이션센터’다. 도시 곳곳에서 취합된 공공 안전 정보, 교통 정보 등은 글래스고의 오퍼레이션센터에서 모두 통합된다. 수준 높은 기술을 갖춘 데이터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오퍼레이션센터는 바로 이런 데이터들을 활용해 의미 있는 정보를 분석하고 이를 시민들의 실제 삶에 연결할 수 있도록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도시 곳곳에 설치된 ‘인공지능(AI) 가로등’이다. 가로등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량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차가 많이 다니지 않을 때는 불빛을 줄이고 차가 지나다닐 때만 가로등을 켜는 방식으로 에너지 소비를 68% 정도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밖에 한밤중에 공원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는지 등의 행동 패턴을 파악해 범죄율을 낮추는 데도 큰 성과를 봤다.

특히 글래스고 시티는 이렇게 취합된 정보는 모든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누구든 이 정보를 자유롭게 활용해 보다 유용한 정보로 재생산 하는 것도 가능하다.

글래스고 도로를 운전하는 운전자들은 모바일 앱을 통해 비어 있는 주차장을 확인하고 찾아갈 수 있다. 주차장마다 마련된 가로등에 부착된 센서에 와이파이를 연결해 실시간으로 수집된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개인들의 필요에 맞춰 활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글래스고는 특히 스마트 시티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데도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 쇼핑센터 등 시민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와 함께 2013년 이후 해마다 꾸준히 ‘해커톤’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회 참가자들에게는 글래스고시가 선정한 도전 과제가 주어진다. ‘스마트 빌딩의 에너지 절감법’처럼 스마트 시티와 관련한 주제들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글래스고 오픈데이터센터를 통해 공개된 공공 정보를 활용해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참가자들에게 멘토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가장 우수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참가자에게 상금이 주어지는데 이게 끝이 아니다. 글래스고시 차원에서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구현해 시민들의 생활에 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시민들이 자신의 가정의 에너지 소비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크기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가정과 비교해 소비량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을 ‘모바일 앱’을 통해 누구나 쉽게 확인하도록 한 모바일 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낡은 도시’를 똑똑하고 안전하게…영국의 스마트 시티 실험
(사진) 브리스톨에서는 도시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과 도로 아래 열선을 통해 공공 정보를 수집한 뒤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2017 스마트지수 1위 ‘브리스톨’


글래스고가 영국 스마트 시티의 ‘정통 강자’라면 브리스톨은 최근 떠오르는 ‘신흥 강자’라고 할 수 있다. 브리스톨은 2017년 ‘영국 스마트시티지수(UK Smart cities Index)’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3월에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주최하는 ‘글로벌 모바일 어워드’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 미국 뉴욕,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 쟁쟁한 도시들을 물리치고 ‘스마트 시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브리스톨의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는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브리스톨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브로스톨 이즈 오픈(Bristol is open)’이라는 브리스톨시와 브리스톨대의 합작회사다. 시 정부와 대학이 합작회사를 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연구·개발(R&D) 단계에서 연구 중인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를 실제 비즈니스 모델로 구체화해 ‘상업화 단계’로 옮겨 가기 위한 것이다. 정부·대학·기업이 매우 밀착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브리스톨 이즈 오픈은 현재 브리스톨 도시 곳곳에서 수집한 공공 정보를 통합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이 도시의 정보를 수집하는 네트워크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도로 아래에 깔린 열선을 통해 도로 위 차량의 흐름과 교통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와 함께 ‘브루넬 마일’로 알려진 브리스톨에서 브리스톨 템플메이드역까지 연결된 자전거 길을 따라 설치된 무선 이종기지국(hetnet)을 통해 와이파이와 5G 등의 통신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도시에 설치된 2000개의 가로등 기둥을 통해서는 라디오 주파수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 정보들은 주차 센터, 날씨 등의 정보와 결합돼 시민들의 삶에 도움을 주게 된다. 브리스톨은 지난해인 2017년 10월 오퍼레이션센터를 오픈하고 이런 정보들을 통합 관리하는 데도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들을 통해 모인 정보는 브리스톨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실생활에서 실제로 활용해 테스트를 해볼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다.

vivajh@hankyung.com |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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