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제 1191호 (2018년 09월 19일)

“이 구두는 49년간 쌓아온 제 자존심입니다”

[스페셜리포트 Ⅰ ‘땀과 시간의 결정체’ 서울의 전통 장인들③]
-성수동 구두거리 터줏대감 전태수 대표의 ‘아직 못 이룬 꿈’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순수한 노동이 쌓이고 쌓여 ‘최고 경지’에 올랐다. 한 분야나 기술에 전념하며 그 일에 정통한 사람. 우리는 그를 장인(匠人)이라고 부른다. 하루아침에 장인이 되지는 못한다. 매일 갈고닦고 만들어 낸다.

오랜 세월 부단한 성실함으로 하루하루에 충실해 온 서울의 장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말했다. “먹고살려고 시작했지.”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배우 전지현 그리고 가수 싸이. 이들 사이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전태수(65) JS슈즈디자인연구소 대표가 만든 신발을 신었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성수동 터줏대감이다. 영등포를 시작으로 염천교 구두골목을 거쳐 명동에서 구두 패턴과 디자인을 배운 한국 구두 역사의 산증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구두 기술을 배웠어요. 아버지도 시골에서 뭐든지 다 만드는 대장장이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버지도 장인이었어요.”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공기도 안 통하는 지하실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다락방에서 먹고 자며 구두 기술을 배웠다.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아서인지 터득도 빨랐다. 이후 명동에서 구두 산업이 호황기를 맞았을 때 당시 고급 제화 기업이었던 ‘팬시부티끄’에 입사했다.

“그 당시 사원인데도 주인처럼 일했어요.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했죠. 아무나 장인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장인 정신으로 일할 수는 있잖아요. 그러다 회사 대표 눈에 들게 됐고 기술뿐만 아니라 패턴 디자인까지 전담하게 됐어요. 회사에서 나를 키워준 거죠.”

해외 출장 기회도 전 대표에게 돌아갔다. 일본·홍콩·이탈리아·프랑스 등 명품 선진국을 돌며 럭셔리 브랜드의 신발을 모두 뜯어보며 공부했다.

◆직장인도 장인이 될 수 있다



그가 성수동 수제화거리에 자리 잡은 것은 1980년이다. 11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에서 나와 수제화 공장을 차렸고 회사 규모는 점점 커졌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지만 1998년 외환위기가 전 대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수제화를 납품하던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전 대표도 10년간 쌓아 온 모든 것을 잃었다. 

“옥탑방 셋방살이를 하면서 칼을 갈았어요. 평생 구두를 해왔는데 이렇게 무너질 수 없다고 생각했죠. 구두로 돈 벌었다는 소리를 꼭 듣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어요. 대한민국에도 이탈리아 장인 못지않은 구두 장인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한번 크게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데는 그가 지닌 기술이 한몫했다. 그는 평생의 업으로 삼은 수제화 기술 덕분에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후에도 전 대표의 수제화 외길 인생은 계속됐다. 

성수동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서울시와 함께 후학을 양성하고 있던 ‘고수’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작년부터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 순방길에 나선 김정숙 여사가 전 대표가 만든 버선코 신발을 신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구두박물관 설립이 꿈



김 여사의 신발을 만들게 된 과정은 ‘은밀하게’ 진행됐다. 작년 5월 전 대표의 공방에 젊은 여성 2명이 찾아왔다. 이들은 “어머니께 꼭 선물하고 싶다”며 신발들을 신어보고 사진도 찍었다. 3일 뒤 청와대에서 나왔다고 밝힌 직원이 찾아왔다. 그는 김 여사의 구두 제작을 의뢰했다.

“발 사이즈를 재기 위해 청와대로 들어갔어요. 김 여사님이 발 굳은살을 보여주면서 선거 기간에 하도 돌아다녀 발이 이렇게 됐다며 편안한 신발을 부탁한다고 하셨죠. 석고를 뜨고 돌아오고 그 이후로도 몇 번 방문해 수선했어요. 제작 기간은 보름 정도 걸렸는데 납품까지 완료한 후에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죠(웃음).” 

김 여사는 완성된 신발을 찾으러 전 대표의 공방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해외 순방 후에도 구두 제작을 의뢰했다. 이번엔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에게 선물할 구두였다.
전 대표는 이번엔 빨간색 고급 비단으로 한국 전통 문양을 넣은 신발을 만들었다.
갑자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지만 전 대표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구두는 전 대표에게 삶의 이유다.

49년 동안 구두를 만졌지만 여전히 좌절하고 여전히 배운다. 그가 구두장이 인생을 시작한 이후 휴일은 하루도 없었다. 매일 15시간 근무하고 연구한다. 오랜 기간 구두에 몰두하면서 수많은 희로애락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데는 구두에 대한 그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두 기술자는 구두에 혼을 담아야 돼요. 구두가 곧 자존심이니까요. 어제 마음에 들던 신발이 오늘 다시 보니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아요. 내가 만족하고 구두를 신는 사람이 만족할 때까지 백번이라도 수선하고 연구해야죠.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근성과 오기를 가지고 인생을 걸 줄 아는 게 장인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수많은 후배들을 배출했지만 전 대표에게는 여전히 꿈이 있다. 구두박물관을 설립하는 일이다.

“박물관을 설립해 작품 같은 신발을 만들고 싶어요. 죽고 나서도 아 저 신발 전태수가 만들었구나. 오랫동안 구두로 기억되는 것, 그게 제 꿈입니다.”

[스페셜리포트 Ⅰ ‘땀과 시간의 결정체’ 서울의 전통 장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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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두는 49년간 쌓아온 제 자존심입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1호(2018.09.17 ~ 2018.09.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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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9-2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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