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Ⅱ: 여성 고객이 70%…성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도 가능해]
“화장품 가게요? 성인용품점입니다”…핵심 상권까지 진출한 성인용품점의 진화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이 제품은 음성인식 기술이 반영돼서 사람의 목소리에 따라 진동 세기가 달라지고요, 이 제품은 블루투스 리모콘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장거리 커플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들을 수 있는 설명이 아니다. 성인용품점에서 친절한 20대 직원에게 들을 수 있는 설명이다.


최근 성인용품점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다. 뒷골목에 숨어 있던 빨간 조명의 성인용품점과는 차원이 다르다. 홍대·이태원·가로수길 등 젊은이들이 몰리는 핵심 상권에 떳떳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인테리어도 감각적이다. 언뜻 보면 화장품 브랜드나 패션 브랜드 매장으로 착각할 정도다. 진열대를 자세히 살펴봐도 노골적인 모양의 제품보다는 립스틱 모양, 아이스크림 모양, 텀블러 모양 등 인테리어 소품처럼 아기자기한 제품이 더 많다.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제품의 명칭과 사용법을 설명해 준다. 고객들도 낯뜨거워하기보다는 마치 장난감을 보듯 신기해하고 재밌어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뛰어든 성인용품


이처럼 성인용품점의 편견을 깬 성인용품점이 번화가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홍대 상권에만 해도 눈에 띄는 성인용품점이 10개 내외다. 이미 프랜차이즈화 된 성인용품점도 있다.

작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1호점을 낸 ‘레드컨테이너’는 어느덧 15개 매장을 갖춘 대형 브랜드로 확장했다. 강남이나 종로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는 성인용품 매장과 카페를 함께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성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다.


소비자 반응에 민감한 대기업도 성인용품 산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6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야심 차게 내놓은 이마트 ‘삐에로쑈핑’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곳도 ‘성인용품 코너’였다.

삐에로쑈핑이 추구하는 ‘만물잡화점’ 콘셉트답게 코스프레용 란제리부터 콘돔·바이브레이터·딜도 등 여타 성인용품점에서 취급하는 웬만한 물건은 다 있다. 거기에 ‘난 혼자 싼다’, ‘1초 만에 내 손으로 홍콩’ 등 삐에로쑈핑이 추구하는 B급 감성과 어울리는 멘트가 웃음을 유발해 낯선 환경에 긴장한 소비자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 준다.


성인용품이 스타트업 창업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사업적으로 충분히 성공 잠재력이 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화장품 가게요? 성인용품점입니다”…핵심 상권까지 진출한 성인용품점의 진화
여성 전용 성인용품 전문점 플레져랩은 2015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처음 문을 열어 현재 연매출 20억원을 바라보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곽유라 플레져랩 대표가 문을 열 당시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깔끔하고 감각적인 성인용품점이 국내에 전무했다.

응급실 간호사 출신인 곽 대표는 국내에 안전하고 건강한 성인 산업 시장이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성인용품 산업에 뛰어들었다.

곽 대표는 해외 박람회에 다니며 안전성이 검증된 제품만을 수입했다. 매장 인테리어 역시 고급 부티크처럼 만들어 여성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없앴다. 남성 중심의 유흥 문화가 아닌, 여성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한 전략이 먹힌 것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의 100억원 투자 결정을 받아 주목을 받은 미디어 스타트업 '블랭크코퍼레이션’은 작년 신사동 가로수길에 성인용품점 ‘N.19’를 열었다. N.19는 1층부터 5층까지 건물을 통째로 임대해 층마다 다른 콘셉트의 성인용품을 전시하고 있다.


홍대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성인용품점 러브허니의 이익주 대표도 ‘미개척 시장’이라는 매력 때문에 성인용품 산업에 뛰어들었다.

국회의원 보좌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라는 전 이력에 비해 독특한 창업 아이템이었지만 꼼꼼한 시장조사를 통해 선택한 결정이었다. 문을 연 지 한 달밖에 안 됐지만 주말에는 하루 평균 800팀 정도가 방문할 정도다.


이 대표는 특히 ‘1인 가구’의 성장 트렌드에 주목했다. 그는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이고 당연한 욕구이기 때문에 1인 가구가 성장하면서 혼자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성인용품 시장이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30대 커플이 가장 많이 오지만, 배우자와 사별한 중년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성생활을 할 수 없는 성직자도 찾아오는 걸 보면서 사회가 해결해 줄 수 없는 욕구를 안전하고 즐겁게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름의 철학과 전략으로 무장


이처럼 최근 생겨나고 있는 성인용품점들은 나름의 철학과 산업적으로 성공할 만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성인용품점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이 주력 고객이라는 점이다. 남녀 성인용품을 같이 파는 매장에서도 여성용 성인용품 비율이 압도적이다. 남성용은 의외로 매장 구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는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다. 지난 8월 일본에서는 오사카 다이마루 백화점에 여성용 성인용품 ‘이로하’의 팝업스토어가 열려 화제를 모았다. 백화점에 성인용품 팝업스토어가 열린 것은 일본 내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직까지도 남성보다는 여성의 성적 욕구 표출이 쉬운 사회적 환경은 아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여성용 성인용품 시장의 잠재력이 훨씬 높다고 입을 모았다.

이익주 대표는 “여성용 성인용품의 경우 여성 혼자 사용할 수도 있고 성관계 시 함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도가 더 높다”며 “안정성이나 기능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들끼리 방문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은 여성 소비자들의 성인용품 구매가 더 높은 이유에 대해 여성의 성 해방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남성들은 성을 보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루트를 더 많이 가지고 있었거나 이미 그런 용품을 구비할 수 있는 지하경제가 활성화돼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한 “성적인 쾌락과 관련해 많은 연구 결과에서 성관계 시 여성의 성적 만족도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성관계 시 능동·수동의 관계가 성립돼 오다가 이런 시장이 오픈되면서 주체적인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여성의 성 해방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쾌락 넘어 성 기능 치료까지
“화장품 가게요? 성인용품점입니다”…핵심 상권까지 진출한 성인용품점의 진화
성인용품에 디자인과 기술성이 결합되면서 안정성이 검증되고 하나의 아이디어 상품처럼 여겨지게 된 것 또한 소비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블루투스가 연동돼 미국과 서울에서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는 연인이 함께 성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구나 음성인식을 통해 목소리 크기에 따라 진동 세기가 달라지는 기구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히 성기를 대상화하거나 극단적인 쾌락을 추구하기보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성생활을 위한 제품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글로벌 섹슈얼 브랜드 ‘텐가(TENGA)’다.


텐가는 2005년 일본에서 설립된 이래 자위기구 글로벌 누적 판매 수 7000만 개의 기록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텐가는 ‘성기를 대상화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반영해 누가 봐도 거부감 없는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텐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텀블러나 인테리어 소품쯤으로 생각할 만큼 세련됐다. 안전과 위생도 놓치지 않았다. 텐가 내부의 모든 실리콘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제품들이다.

에그·포켓·컵 등 일회용 제품 이외에 재사용 가능 제품들은 좀 더 손쉽게 내부를 씻고 말릴 수 있는 방법도 과학적으로 연구 중이다. 그 결과 세계 최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6번이나 수상하며 디자인 혁신성과 기능성을 인정받았다.

자위기구가 세계 최대 디자인 어워드에서 인정받을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성인용품 시장이 양성화 된 것이다.


텐가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 계기도 독특하다. 마츠모토 고이치 텐가 대표는 한국 소비자들이 병행수입자들을 통해 1만원이 안 되는 텐가 제품을 3만~4만원에 사고, 그로 인해 일회용 제품을 재사용하는 등 비위생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 진출을 결심했다.


텐가는 단순한 성인용품 시장에서 더 나아가 ‘섹슈얼 헬스케어(성 건강)’라는 새로운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6년 성을 기반으로 하는 헬스케어 전문 기업 ‘텐가 헬스케어’를 설립하고 각종 학회와 의료기관과 협력해 남성의 성 기능 치료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까지 개발된 제품으로는 임신에 어려움을 겪는 남성들을 위한 ‘트레이닝 키트’, 스마트폰에 렌즈를 부착해 정자를 관찰할 수 있는 ‘멘즈 루페’ 등이 있다.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성관계가 어려운 신체 장애인들의 성생활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텐가뿐만 아니라 영국의 명품 성인용품 ‘제쥬’, 프랑스의 성인용품 ‘잘로’ 등 많은 글로벌 성인용품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해 있다. 국내 대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뛰어들 만큼 양성화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 성인용품 산업 규모는 제대로 추산되지 않는다.


◆성장은 있지만 규제는 제자리
“화장품 가게요? 성인용품점입니다”…핵심 상권까지 진출한 성인용품점의 진화


성인용품 소비자가 급속도로 늘면서 산업 규모는 커졌지만 아직까지도 경제적 가치로 추산이 안 되는 이유는 규제와 안전 관리 체계가 제자리걸음 중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성인용품 관련 주무부처가 없고 아직까지는 각종 규제가 애매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선 해외에서 들여오는 성인용품은 심의위원회를 거쳐 통관이 허용돼야 수입할 수 있다. 하지만 관세사별로 미풍양속을 해치는 물품이라 판단하면 통관이 보류될 수 있다.

물론 온라인 광고 루트도 없다. 포털에서 자위기구가 등록된 쇼핑몰의 광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에는 남성용 자위기구를 진열했다는 이유로 성인용품점 운영자가 기소되기도 했다. 남성용 자위기구 판매가 대법원에서 합법으로 판결된 게 불과 4년 전인 2014년부터이기 때문이다.


성인용품 산업을 관리하는 주무부처가 없다는 점도 큰 문제다. 관리·감독 기관이 없다 보니 안전 기준도 없다.


지난 2014년 소비자원이 보건복지부에 성인용품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마련해 달라 건의했지만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없다”는 답만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부정적인 사회 인식 때문에 정부 기관이나 특정 국회의원 중 누구 한 명이 나서서 성인용품에 대한 입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성인용품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글로벌 통계 정보 사이트 스태티스틱 브레인은 2016년 전 세계 섹스토이 산업 규모를 연간 152억5000만 달러(약 17조418억원)로 집계했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워치는 세계 섹스토이 시장 규모가 2020년까지 520억 달러(약 58조원)로 불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독일에서는 매년 세계 최대 성인용품 박람회인 ‘에로페임’이 열리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에 스타벅스 체인점보다 성인용품 판매 상점이 훨씬 많다고 보도할 정도로 검증된 시장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성인용품이 양지로 나올수록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양성화 되면서 적절한 규제가 수반될 때 더 안전하고 건전한 성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김종갑 소장은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는 포르노에 대한 강좌가 있고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는 성교육에 자위에 대한 교육도 포함된다”며 “성문화가 음성화 될수록 성에 대한 은밀한 인식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성인용품이 공적으로 판매될수록 위생이나 안전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고 성이 자녀나 부부끼리도 자연스럽게 논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대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