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로 옮겨가는 미술시장…정부도 미술 시장 키우기 나서

K아트의 힘이 커지고 있다. 올해 한국 경매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이 등장했고 국내에서 개최하는 아트 페어에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참석했다. 한국 작가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고 글로벌 갤러리와 경매시장도 한국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글로벌 갤러리 속속 진출...성장하는 K아트의 힘
85억원. 한국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김환기(1913~1974년) 작가의 작품이 기록한 역대 최고가다.

미술품 경매회사 서울 옥션이 지난 5월 홍콩에서 개최한 경매에서 고 김환기 작가의 1972년 작품 붉은색 전면 점화 ‘3-Ⅱ-72 #220’이 한국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인 85억원에 팔렸다. 수수료 18%를 포함한 가격은 100억원을 웃돈다.

지난해 김 작가가 청색 점화로 세운 65억5000만원의 기록을 훌쩍 넘어서면서 본인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디어가 김 작가의 기록 경신을 주목하면서 미술품 가격과 미술 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실적 상승 이어지는 서울옥션·K옥션
글로벌 갤러리 속속 진출...성장하는 K아트의 힘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미술 시장이 점점 더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통계와 수치로 나타난다.

천경자 작가의 ‘초원Ⅱ’는 K옥션의 2009년 경매 당시 12억원에 낙찰된 작품으로, 10년 만에 그림 값이 8억원 뛰었다.

미술품 경매시장은 3년 연속 호조세를 이어 가고 있다. 2017년 한국 미술품 경매시장의 낙찰 총액은 1874억7514만 원으로 2016년보다 6.5% 증가했다.

국내 양대 경매 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의 2017년 낙찰 총액은 전년 대비 3% 증가했다. 양대 회사 모두 매출액이 불어났다. 특히 홍콩에 진출한 서울옥션 매출 실적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상반기 매출 357억원, 영업이익 6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 226억원, 영업이익 24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K옥션도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출이 모두 늘었다.

미술품 경매시장뿐만 아니라 화랑과 아트 페어 등 다양한 미술 유통 생태계가 활기를 더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7년 미술 시장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미술품 시장 규모는 3965억원이다.

거래 작품 수는 3만3348점으로 2013년부터 3년 연속 증가했다. 특히 거래 작품 수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전반적으로 미술품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7일 막을 내린 국내 최대 규모 미술 거래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KIAF)’도 북적였다. 올해 키아프에는 관람객 6만3000여 명이 다녀갔다. 이번 키아프는 세계 유명 화랑들의 참여로 작품의 퀄리티와 쾌적한 전시 부스 연출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판매액 역시 지난해보다 10억원 늘어난 280억원을 기록했다.

그동안 ‘단색화’, ‘민중미술’에 집중한 부스가 많았다면 올해는 추상미술·팝아트·일러스트 등 다양한 작품군을 선보였다.

올해 키아프의 조직위원으로 새로 합류한 실바인 레비 DSL 컬렉션 설립자는 “키아프가 자국의 컨템퍼러리 아트와 해외 컨템퍼러리 아트의 균형 있는 조합을 보여주는 한국의 유일무이한 아트 페어로 이미 자리매김했다”면서 “향후 한국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로 거듭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양분하는 미술 시장
글로벌 갤러리 속속 진출...성장하는 K아트의 힘
한국의 미술 시장이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먼저 글로벌 미술 시장이 확실한 회복세를 보이는 것에서 첫째 원인을 찾는다.

특히 미국과 유럽이 주도해 오던 미술 시장의 무대가 아시아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미국 소비자들이 예술품 구매를 전년보다 22% 늘린 반면 예술품을 구매한 아시아 소비자는 39%나 증가했다.

특히 중국은 미술 시장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스위스 금융기업 UBS에 따르면 중국 경매 미술 시장은 2017년 전체 미술품 거래 중 70%를 차지했다.

중국·홍콩·일본 등 아시아 미술 시장이 주목받으면서 이제는 세계 유명 갤러리들이 한국 시장까지 손을 뻗었다.

2016년 4월 서울에 프랑스의 유명 갤러리인 페로탕 갤러리가 문을 열었고 이어 10월에는 150년의 전통과 런던·아부다비 등에 전시장을 가진 바라캇이 서울에 들어섰다.

2017년 3월에는 미국 뉴욕과 중국 베이징·홍콩 등에 거점을 확보한 페이스 갤러리가 용산구 이태원동에 서울 전시장을 개관했고 이어 2017년 말 미국의 최정상 갤러리 리만머핀이 서울 소격동에 홍콩에 이어 둘째로 아시아 지점을 열었다.

화랑뿐만 아니라 경매 회사도 서울에 거점을 잡았다. ‘세계 3대 옥션’으로도 불리는 경매 회사 필립스는 올해 한남동에 정식 사무소를 개관했다.

이들 정상급 외국 화랑들의 한국 진입을 두고 아시아 미술 시장의 주요 거점으로서 한국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세계적 미술 전문 매체인 ‘아트넷’은 작년 ‘아트 마켓이 동쪽으로 옮겨 간다’는 기획 기사를 통해 유수의 갤러리가 서울과 홍콩·상하이 등 아시아에 분점을 연 것에 주목했다. 아트넷은 글로벌 갤러리가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한 아시아 아트 마켓의 성장을 내다보고 선점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글로벌 미술 시장과 비교할 때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세계 미술 시장은 637억 달러(약 69조원)로 전년보다 12% 성장했다.

미국이 28조원으로 1위를 차지했고 뒤이어 중국이 14조원, 영국이 13조원이었다. 국내 총 미술 거래액(약 4000억원)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한 점보다 적은 실정이다.

이를 두고 정부가 미술 시장 키우기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추진할 ‘미술 진흥 중·장기 계획’을 지난 4월 발표했다.

문체부는 미술 관련 직업을 세분화하고 2022년까지 1000개 이상의 새로운 미술 관련 일자리를 창출하기로 했다. 또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연매출 100억원 미만의 중소 화랑에 신진 작가(만 34세 미만)를 연결해 주는 전속 작가 제도도 지원한다.

전속 기간에 작가에게 매달 월 100만원의 창작 지원금을 정부가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또 미술품 판매가의 일정 부분을 작가에게 지급해야 하는 ‘추급권’을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이미 미술품 재판매권과 관련해 3000유로(약 390만원) 이상 미술품 판매가의 0.25~4%를 작가에게 지급하도록 돼 있다.

소비 측면에서는 4000억원 규모에서 맴돌고 있는 국내 미술 시장을 5년 후 6000억원으로 키운다는 목표다. 또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물납해 설립한 프랑스의 피카소 미술관처럼 상속세를 낼 현금성 자산이 부족하면 자가 미술품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방안도 기획재정부와 논의할 계획이다.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