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윤철 제이슨함 관장 “좋은 작품 고르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뉴 앤드 굿(New&Good)’”
“부가세 없는 한국 미술 시장, 전 세계 컬렉터에게 매력적”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미술 시장 생태계는 단순하지 않다. 작품을 사고파는 과정에 비평가·컬렉터·갤러리·아트딜러·경매회사 등이 촘촘하게 얽혀 있다.

그중에서도 갤러리는 미술 시장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유통 기관이다. 미술관·아트딜러·컬렉터 등 모든 소비 주체와 작가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이자 최근 미술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인식되는 아트 페어(예술 박람회)의 주축이기 때문이다.

국내 갤러리가 점차 활기를 띠고 있는 가운데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단아’가 등장했다. 함윤철(28) 제이슨함 관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며 학사와 석사를 졸업했다. 공대 출신 유학생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져온 안목과 미술 비즈니스에 대한 철학으로 올 초 갤러리를 개관하자마자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페이스(Faces)’전을 통해 천경자부터 앤디 워홀까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영향력을 인정받았다. 그를 만나 미술 시장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코넬대 공대 출신이 갤러리 비즈니스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머니가 오랫동안 컬렉팅을 하셔서 어려서부터 미술과 친숙한 환경이었어요. 가족과 나누는 대화의 큰 부분이 미술에 대한 내용이었죠. 저도 유학 시절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 시장인 미국에서 작품을 하나씩 구매하고 팔다 보니 고객이 생겼고 좀 더 능동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어요.

공학에는 아주 뛰어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갤러리 비즈니스를 원칙대로 운영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많은 컬렉터들의 신뢰를 얻는다면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갤러리는 예술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갤러리와 작가의 관계는 소속사와 가수의 관계로 이해하면 됩니다. 작가와 가까이 일하면서 작품 가격에 객관성과 타당성을 부여하죠. 출판물을 만들고 작가와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홍보하면서 작품을 파는 역할을 합니다.

미술관이나 경매회사와의 관계에서도 갤러리의 홍보력이나 영업력이 중요합니다. 반면 아트딜러는 갤러리스트(갤러리 운영자)와 조금 차이가 있어요. 아트딜러는 부동산 중개업자 같은 역할로 이해하면 됩니다. 아트딜러는 작품을 A에서 B로 옮기면서 차익을 실현하죠. 갤러리보다 훨씬 간단하지만 위탁자와 고객의 신뢰를 얻는데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술 작품으로 재테크를 해 본 적이 있나요.

“단순 투자 목적으로 작품을 구입해 본 적도 있고 단기간에(3개월 이내) 10~20%의 수익을 얻은 적도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갖고 있는 게 더 좋은 투자라는 것도 이런 과정에서 알게 됐습니다. 미술사에 남을 좋은 작품을 적당한 가격에 구매한다면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게 미술 시장의 보편화된 의견입니다.”

▶미술 작품을 고르는 팁이 있나요.

“‘뉴&굿(New&Good)’ 을 기억하세요. 작품은 늘 새로워야 해요. 한 작품을 보고 다른 작가가 떠오르면 그것은 좋은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또 좋은 작품은 명확한 감성을 불러일으키죠. ‘지극히 심플하다, 너무 예쁘다, 무섭다, 징그럽다’ 등 뭐가 됐든 하나의 강한 감성을 일으키는 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미술 시장인 미국과 국내 미술 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미술 시장이 큰 나라는 미술관·갤러리·컬렉터가 훨씬 더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시장 구조입니다. 미국은 미술관에 기부하는 사람이 받는 사회적 명예나 세금 혜택이 이런 시장구조에 크게 기여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한국의 미술관은 상당히 제한된 예산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제한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개인 컬렉터나 사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게 되고 따라서 예술적 가치보다 투자가치와 미래 가치를 따지는 구매 수요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작품의 예술적 가치보다 상업적 가치를 더 중시한다는 말씀이신데요. 그게 왜 문제가 되나요.

“이런 구매 패턴은 한 작가나 한 작품군에 자본이 쏠리는 현상을 야기하고 결과적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지속 가능하기 힘든 시장을 초래한다고 봅니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작품 가치가 5만 달러(약 5600만원) 상당의 작품의 판매액이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25만 달러(약 2억8000만원) 이상의 작품의 판매량은 전체의 7%인 것에 비해 총액의 48%를 차지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아직까지 작품이나 작가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보다는 비싸고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작품에만 쏠리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생각해요.”

▶국내 미술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은 아직까지 미술품 거래에 대한 부가세가 없습니다. 저는 부가세가 없는 구조를 적극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미술품 거래에 부가세가 붙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홍콩을 제외하면 거의 없거든요.

최근 아시아 시장, 특히 중국이 주목받고 있지만 중국은 미술품 거래에 따른 세금이 아주 큰 편입니다. 한국의 미술 거래에 부가세가 없는 구조를 잘 홍보하고 이용하면 전 세계 컬렉터들을 국내로 그러모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될 수 있죠. 국가나 시 차원에서 큰 화랑이나 경매회사의 판매 행위를 국내로 이끄는 노력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최대한 규제를 적게 하면서 시장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법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위작 근절과 미술품 시장의 공정거래를 유도하기 위해 2017년 미술품 유통업 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입법 논의 중입니다. 정부의 움직임이 미술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지요.

“미술품 시장을 법으로 규제하고 제재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작은 시장을 더욱 축소시키는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최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옥션과 갤러리가 투자와 소비를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는 게 경제에 도움이 될 겁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4호(2018.10.15 ~ 2018.10.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