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Ⅰ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적대관계보다 ‘조언자’로 자리잡아야”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사모펀드(PEF) KCGI가 한진칼 지분 9%를 매입하면서 국내에서도 ‘행동주의 펀드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종준(39) 라임자산운용 대표는 KCGI보다 한 발 앞서 2016년 국내 첫 행동주의 헤지펀드 ‘라임-서스틴데모크라시펀드’를 선보였다.

원 대표는 “최근 행동주의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역성장’에 접어든 한국 경제의 시대적 산물”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라임자산운용 사무실에서 11월 21일 원 대표를 만났다.
“행동주의, 역성장 시대의 투자 대안으로 떠오를 것”

-KCGI 제1호 펀드의 ‘한진칼 지분 9% 취득’을 어떻게 보십니까.


“누가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한진그룹의) 경영진과 회사에 대한 문제가 비교적 명확하게 많이 알려진 사례예요. 외국 같았으면 진작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들어갔을 일이지만 한국의 자본시장 특성상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죠. 이번 투자를 계기로 행동주의 투자가 활성화되면 앞으로 더 많은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행동주의 투자가 더 확산될 것으로 보십니까.

“한국에서는 아직 제대로 된 바람이 불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업사이드는 있을 것 같아요. KCGI 투자가 지금처럼 크게 이슈화될 수 있는 것은 한국 기업의 매출과 이익이 역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에요. 이전까지는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기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문제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역성장이 시작되면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투자전략으로 관심이 향하게 됩니다. 역성장 국면에서는 ‘저가에 사서 오르면 팔라’는 정상적인 투자전략은 통하지 않아요.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같은 작업들로 기업이 효율화되고 기업 가치가 높아져 주가가 오르고 수익이 발생하는 투자전략이 부각될 수 있죠.”

-역성장 국면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 이상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 없어요. 내년에 반도체가 꺾이게 되면 나머지 산업에서 뒷받침해야 하는데 기껏해야 콘텐츠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콘텐츠는 정말 작은 시장이거든요. 자동차·철강·조선·기계·화학·정유 시장이 뒷받침했던 때와는 다르죠.

올해 3분기 상장사 ‘어닝 쇼크’ 비율이 37%였는데 전문가들이 4분기와 내년 시장 전망을 계속 낮추고 있어요. 한국 증시가 저평가됐다고 말하지만 ‘성장’이 없으면 주식을 살 이유가 없어요.”

-한국 증시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고 보십니까.

“한국 기업은 많은 자산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왜 주가가 오르지 않을까요. 자산은 현금도 있지만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공장이나 기계설비, 부동산도 포함합니다. 문제는 한국 기업들이 ‘투자자가 갖고 싶지 않은 자산’을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예컨대 과거에는 유통 애널리스트들이 유통 기업 A사가 소유한 전국 각지의 백화점과 마트의 부동산 가치를 합산해 A사의 목표 주가를 내곤 했어요. 그런데 온라인 채널이 확대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덩치 큰 오프라인 마켓의 부동산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아요.

한국 산업구조상 이런 자산들이 많다 보니 기업의 자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 된 거죠.”

-행동주의 펀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습니까.

“한국 증시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결국 기업이 효율성 있게 바뀌어야 밸류에이션을 높일 수 있고 그래야 우리 증시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기업이 스스로 그 작업을 해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경영의 효율화를 위해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특히 기업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내 기업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게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다’는 점이잖아요. 적은 지분으로 ‘내 회사’처럼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회사를 통해 개인의 꿈을 이루려고 하니까요. 그런 게 없었으면 아마 한국 기업들의 기업 가치는 지금의 주가보다 훨씬 더 고평가됐을 것이라고 봐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합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작업이에요.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보수가 좀 높긴 하지만 상장 주식을 분석하고 매매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요. 한국 시장 규모가 작다 보니 지인들을 통해 ‘다시 생각해 봐라’ 그런 압력도 엄청 들어옵니다.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행동주의를) 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이 그동안 경영을 잘못했기 때문이에요. 상식에 맞게 해왔다면 운용사들이 굳이 그 일에 뛰어들 필요가 없거든요.”

-단기 수익을 노린 투기 세력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상 경영 참여 목적의 대량 보유 공시를 한 이후에는 6개월 동안 매매할 수 없어요. 장기적으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 후 기업 가치가 오르면 그때서야 매도가 가능한데 최소 2~3년 후입니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단타 세력’이라는 것은 시장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엘리엇 등 해외 행동주의 펀드와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엘리엇이라든지 과거의 특정 사례를 보면서 ‘이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야’라는 인식을 갖는 게 가장 무서운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은 경제구조와 투자자들의 특성상 기업과의 적대적 관계가 쉽지 않아요. 미국 같은 나라에선 각종 연기금·재단·개인(패밀리오피스)들이 워낙 거대한 부를 쥐고 있다 보니 남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애플과 페이스북이 서로 공격하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애플폰 쓰지 말라고 하잖아요. 한국은 다릅니다.

예컨대 대기업 A사가 아무리 경영을 잘못하더라도 국내 자산 운용사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A사가 자산 운용과 관계된 은행에 전화해 ‘주거래은행을 바꾸겠다’고 통보하면 어떨까요. 인맥 네트워크가 좁고 사업 연관성이 짙은 한국 사회에서는 적대적 관계가 어렵습니다.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들은 합리적인 수준 내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할 것이라고 봅니다.”
-차등의결권 도입 논란은 어떻게 보십니까.

“스타트업이나 성장기에 있는 기업들은 차등의결권과 같은 방어 수단이 필요합니다. 스타트업은 자금 조달이 필요한데 계속 자금을 투입하다 보면 오너의 지분율이 급속하게 낮아지면서 오히려 리스크가 커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성숙 단계에 들어간 기업들의 경우에는 경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유지시켜 주는 제도로도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행동주의 펀드를 조언자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처럼 나쁜 습관이나 잘못된 관습에 대해 본인이 직접 바꾸기 어렵잖아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효율화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행동주의 투자에 대해 오해하거나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어요. 엘리엇이 삼성과 현대차에 했던 지적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효율화 작업으로 주가가 오르면 주주들도 좋고 그 주식 보유자가 국민연금이라면 국민연금도, 연금 가입자인 국민도 종국에는 이득이에요. 전 국민적으로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약력 : 1979년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2005년 우리은행 증권운용부. 2008년 트러스톤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 2010년 브레인자산운용 주식운용1본부. 2012년 라임투자자문 대표. 2015년 라임자산운용 대표(현).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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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0호(2018.11.26 ~ 2018.1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