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서비스 ‘옥수수’·‘푹’ 합병…자금력·오리지널 콘텐츠가 승부처
‘SK텔레콤·지상파 3사’ 토종 연합군, 넷플릭스 공세 막을 수 있을까
용어 설명
OTT(Over The Top) 인터넷 스트리밍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영화·교육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은 ‘넷플릭스 잔치’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가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것을 포함해 넷플릭스가 제작한 콘텐츠가 5관왕에 올랐다.

이미 넷플릭스는 미국 방송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는 2013년 미국 최대 케이블 방송 ‘HBO’의 가입자 수를 초과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문화 깊숙이 침투해 있다.

이러한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넷플릭스는 한국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통신사와의 제휴를 통해 IPTV(인터넷 TV)에도 진출했다. 이를 지켜보는 기존 사업자들은 초조하다. 국내에서도 콘텐츠의 공급과 생산까지 모두 넷플릭스가 좌우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우려 때문이다.
‘SK텔레콤·지상파 3사’ 토종 연합군, 넷플릭스 공세 막을 수 있을까
◆영화계 ‘눈엣가시’에서 ‘귀빈’ 된 넷플릭스

190여 개국에 걸쳐 1억37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넷플릭스는 인터넷에 연결된 디바이스만 있으면 다양한 언어와 장르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이다. 2016년 한국에 진출했고 합리적인 가격에 모든 콘텐츠를 제약 없이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계정 하나로 최대 5명의 사용자 프로필을 생성할 수 있어 타인과 계정을 공유할 수도 있다. 특히 광고를 보지 않고도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사용자들의 큰 호평을 얻고 있다. 넷플릭스 측은 “다양한 시청자들에게 각기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소개하기 위해 새롭고 훌륭한 이야기를 계속 발굴하고 있다”며 “지역이나 언어의 장벽으로 아시아 회원들이 접하기 어려웠던 글로벌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현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는 9%대의 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5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며 방송사를 위협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하고 공급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는 넷플릭스에 힘을 더한다. 지난해 제75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는 오리지널 영화 ‘로마’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는데, 이는 넷플릭스 제작 영화가 칸·베를린·베니스에서 열리는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최초의 사례가 됐다.

이 수상은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플랫폼을 바라보는 문화계의 시선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일부 영화계 관계자들은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를 통해 공급되는 작품을 영화제에 초청하지 말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1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 도리어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귀빈’으로 대접받게 됐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도 활발한 오리지널 콘텐츠 공급에 나서고 있다. 2017년 ‘옥자’를 시작으로 지난해 ‘범인은 바로 너’, ‘YG전자’, ‘B의 농담’, ‘라바 아일랜드’ 등 4개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했다. 올해는 1월 25일 공개하는 ‘킹덤’을 필두로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시청자들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동시에 넷플릭스는 한국 문화 산업에도 깊이 침투 중이다. 대표적 예가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다. ‘미스터 션샤인’은 드라마로는 드물게 430억원의 제작비가 소요된 대작으로 지상파 방송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규모다.

‘미스터 션샤인’의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넷플릭스에 약 300억원을 받고 드라마 판권을 판매했다. 결과적으로 드라마 제작사는 제작비를 충당했고 ‘미스터 션샤인’은 약 190개국의 시청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는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글로벌 OTT 플랫폼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넷플릭스의 네트워크는 국내 콘텐츠들이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좋은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현재 넷플릭스의 회원 중 절반 이상인 57%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넷플릭스를 즐기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콘텐츠를 공급한다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날 수 있고 배우는 해외 팬덤까지 구축할 수 있다. 질 높은 콘텐츠를 보유한 한국은 넷플릭스에 점유율을 꼭 높여야 하는 국가 중 하나다.

이 기세를 몰아 넷플릭스는 안방 TV에도 진출했다. 지난해 11월부터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와의 협력을 통해 LG유플러스의 IPTV ‘U+tv’ 가입자들이 넷플릭스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했다. 양 사는 조만간 결합 상품도 내놓을 예정이다.

넷플릭스의 안방 극장 상륙에 기존 방송 사업자들은 불편한 속내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지상파 등 40여 개 방송사로 구성된 한국방송협회는 성명을 통해 LG유플러스의 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LG유플러스의 불공정한 넷플릭스 연동형 서비스는 한국 미디어 산업 전반을 파괴하는 뇌관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국내 사업자 보호 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자칫하면 한국 문화계가 넷플릭스에 종속될 것이라는 우려다.
‘SK텔레콤·지상파 3사’ 토종 연합군, 넷플릭스 공세 막을 수 있을까
◆“韓 시청자 분석만 성공한다면 토종이 유리”

국내에서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더 커지기 전에 토종 OTT들이 성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OTT로는 지상파 3사가 만든 ‘푹(POOQ)’, CJ ENM의 ‘티빙’과 SK텔레콤의 ‘옥수수(oksusu)’, KT의 ‘올레TV’, LG유플러스의 ‘비디오포털’, 네이버의 ‘네이버캐스트’, 카카오의 ‘카카오TV’ 등이 있다. 하지만 투자 규모나 보유 콘텐츠 양에서 넷플릭스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이다.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옥수수’다. SK텔레콤은 2016년 1월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함께 ‘옥수수’를 처음 선보였다. SK브로드밴드는 옥수수의 콘텐츠 마케팅과 기획, 수급, 운영, 사용자 환경(UI), 사용자 경험(UX) 개발 등을 맡고 있고 SK텔레콤은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음성인식·인공지능(AI) 등 기술적 부분의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옥수수가 지상파 3사의 ‘푹’과 손을 잡았다. 지난 1월 3일 SK텔레콤과 KBS·MBC·SBS 등 지상파 3사는 한국방송회관에서 통합 OTT 서비스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MOU에 따라 방송 3사가 공동 출자해 ‘푹’ 서비스를 운영하는 콘텐츠연합플랫폼과 SK브로드밴드의 ‘옥수수’ 사업 조직을 통합해 신설 법인을 출범시킨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각 사가 최근 OTT를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는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에 대항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OTT 사업 역량을 갖춘 토종 사업자 간 연합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

통합 법인은 방송 3사가 보유한 콘텐츠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국내외 콘텐츠 사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양질의 콘텐츠를 공급한다. 또 ‘푹’과 ‘옥수수’를 합친 새로운 브랜드와 서비스를 론칭하고 고객들의 미디어 사용 패턴을 고려해 요금제도 새로 내놓을 계획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향후 통합 법인의 서비스를 ‘아시아의 넷플릭스’,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 경쟁하는 토종 OTT의 대표 주자로 키워 K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선도하고 국내 미디어 생태계의 활성화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합병 후 양 사는 우선 가입자 수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2018년 3분기 기준으로 푹의 가입자 수는 370만 명(월간 실사용자 92만 명), 옥수수 가입자 수는 946만 명(월간 실사용자 280만 명)이다. 업계에서는 합병 법인이 중복 가입자를 빼고도 약 1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합병을 통해 양 사의 취약점도 보완될 것으로 보인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존 옥수수는 주문형 비디오(VOD)에 강점을 갖고 있지만 지상파 스트리밍 서비스가 빠져 있었다”며 ‘푹’과의 제휴를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푹은 지상파 VOD와 지상파 실시간 스트리밍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푹’의 문제점 중 하나는 복잡한 지배 구조였다. 푹을 운영하는 콘텐츠연합플랫폼은 MBC 40%, SBS 40%, KBS 20%로 각각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최 애널리스트는 “푹은 콘텐츠연합플랫폼의 대표와 임원을 방송 3사에서 번갈아 맡는 구조”라며 “이번 합병과 투자 유치를 통해 옥수수와 푹 플랫폼의 단점이 상호 보완되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합병이 이뤄지면 SK텔레콤은 통합 OTT 회사의 지분 30%를 확보하며 최종 지분율은 추후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지상파 3사’ 토종 연합군, 넷플릭스 공세 막을 수 있을까
이상원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넷플릭스나 푹과 같은 SVOD(가입자형) 유형의 OTT 비즈니스 모델은 일정기간 동안 다수 콘텐츠 이용에 대한 판권 구매로 콘텐츠 수급은 유리하지만 비용 지출이 상당히 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OTT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많이 확보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 교수는 “미국 등에서 OTT에 의한 유료 방송 대체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며 “국내의 유료 방송 가격이 해외보다 저렴한 편이기 때문에 국내 OTT들은 가격보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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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5G’의 시너지 효과는

전문가들은 푹과 옥수수의 기존 단점을 극복하는 수준으로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의 공세를 막아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내 OTT 플랫폼이 시장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을 끌어올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자체 콘텐츠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옥수수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총 68개의 타이틀을 자체 제작했다. 지난해에는 ‘나는 길에서 연예인을 주웠다’, ‘이런 꽃같은 엔딩’, ‘시작은 키스’ 등을 제작하며 전년 대비 3배 이상 오리지널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했다.

글로벌 플랫폼과는 차별화된 전략도 펼쳐야 한다. 옥수수는 ‘모바일 최적화’라는 방법을 택했다. 옥수수 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콘텐츠들은 해외 OTT 서비스에서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와 달리 15~30분 내외의 ‘프리미엄 미들폼’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옥수수의 콘텐츠는 러닝타임이 짧아 모바일 동영상 시청자들에게 최적화된 형태로, 추후 풀 버전의 합본을 통해 극장과 TV용 버전으로도 방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상용화될 5G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합병 법인의 경우 통신사인 SK텔레콤이 참여한다는 점은 유리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초고속·초저지연·초연결 네트워크인 5G는 미디어 분야에서 혁신적 변화를 일으켜 이전엔 경험할 수 없었던 실감형 미디어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특히 5G는 대용량 트래픽을 처리할 수 있어 VR·홀로그램 등 차세대 미디어 서비스를 활성화할 수 있다.

합병 법인은 국내 시장점유율 상승에만 만족하지 않고 해외 진출 계획도 설계 중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콘텐츠 경쟁력 강화와 서비스 차별화는 물론 해외 진출이 필수라는 판단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통합 법인을 통해 글로벌 파트너와 제휴, 금년 중 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해외에 진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에서 1억37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와 경쟁하기에는 자금력이나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쟁력이 모두 부족하다는 부정적 의견도 나온다.

이들의 결합은 ‘넷플릭스’를 견제할 수 있을까. 이상원 교수는 “국내 사업자들은 한국 이용자가 원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해외 OTT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며 “지상파는 콘텐츠에서 강점이 있고 SK텔레콤은 방송 플랫폼을 제공한 경험이 있어 시너지 효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합병 법인이 자리 잡으면 다른 OTT 업체와의 추가 인수·합병(M&A)이나 전략적 제휴로 영향력을 넓힐 수도 있다.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7호(2019.01.14 ~ 2019.01.2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