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뚝심’과 ‘원칙’으로 대우조선 매각 등 난제 해결
…‘혁신 지원’ 산업은행 새 비전 구상도
-흔들림 없는 이동걸식 구조조정, 경제 환부 도려내는 ‘메스’로
-구조조정 해결사·혁신 성장 마중물·산은 역할 재정립 ‘척척’
‘진보 학자’ 이동걸, 구조조정 해결사로 돌아오다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대명사’로 불리던 KDB산업은행이 이동걸 회장 시대를 맞아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4차산업혁명이라는 혁신 기술 중심의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국가 경제에 필요한 중소·벤처·스타트업을 키우는 투자은행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동걸 회장의 임기 반환점을 맞아 현재 대전환기인 산업은행의 주요 이슈를 짚어봤다.

이동걸(66)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 회장이 2017년 9월 취임 이후 3년 임기의 반환점을 돌았다. ‘이동걸 체제’에서 ‘산업은행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 2년간 산업은행은 금호타이어·대우조선해양 매각 등 묵혔던 과제를 해결해 나가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관리 중인 기업들에 대한 흔들림 없는 구조조정 기조를 이어 가면서도 혁신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마중물로의 변신도 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지원 등 혁신 성장을 선도하며 중소·중견기업 육성, 산업과 기업의 체질 개선, 기업 구조조정 등을 추진하며 새로운 정책 금융회사로 거듭나고 있다.

물론 아직 과제는 남아 있다. 2018년 금호타이어와 한국GM 등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했고 올해는 노조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인들을 설득해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대우건설과 KDB생명 매각도 해결해야 한다.

이 가운데 전임 수장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20년 애물단지’ 대우조선해양 매각 성과는 이 회장의 ‘뚝심’과 ‘원칙주의’의 값진 결과물이라는 분석이다.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에 넘기며 국내 조선업계를 ‘빅2’ 체제로 재편하는 ‘빅딜’을 성사시켰다. 그가 취임 일성으로 강조한 ‘인정승천(人定勝天 : 노력하면 하늘을 이길 수 있다)’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1953년 4월 9일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경기고를 거쳐 1977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예일대 대학원에서 금융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1994년부터 산업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을 거쳤다.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을 지냈다. 참여정부에서는 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제5대 금융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이후 한림대 객원교수와 동국대 초빙교수로 활동하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국책은행 수장으로 산업은행을 이끌고 있다.

◆ 조선업 재편, 학자 출신 이동걸이 해내
‘진보 학자’ 이동걸, 구조조정 해결사로 돌아오다


이 회장은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로 김대중 정부 때 1년, 참여정부 때 1년 반을 정부에서 일했다. 이후 한림대 객원교수, 동국대 초빙교수로 활동하며 학자로 돌아갔다가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국책은행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문재인 캠프’에서는 가계 부채 대책 등 금융정책을 설계하기도 했다. ‘원칙주의자’로 유명한 이 회장은 그동안 재벌 개혁과 금산분리 원칙, 출자총액제한제도 강화 등을 주장하며 소신 발언을 해왔다.

공직에 들어섰을 때도 변함이 없었다. 그는 국내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인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추천으로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으로 발탁됐다. 김 전 경제수석은 이 회장과 대학과 대학원, 연구원을 나란히 거친 선후배 관계다.

2016년에는 김 전 경제수석과 윤석헌 현 금융감독원장, 윤원배 전 금감위 부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 등 경제 전문가들과 ‘비정상경제회담’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거쳐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지만 1년 반 만에 중도 사퇴한 경험이 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훗날 언론 인터뷰와 저서 등을 통해 삼성생명의 변칙 회계 관련 문제를 제기한 이후 언론·관료 심지어 청와대까지 등을 돌리는 바람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최근 재계에서 가장 큰 이슈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의 퇴진 배경에는 이 회장이 있었다. 박 회장은 그룹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3월 28일 경영 위기의 책임을 지고 사임을 선언했다. 회장직은 물론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직도 내려놓는다는 결단이었다.

전격적으로 퇴진을 결정하게 된 것은 최근 아시아나항공이 회계법인의 ‘감사 범위 제한으로 인한 한정’ 의견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은 3월 26일 ‘적정’ 의견을 다시 받을 때까지 주식거래가 정지되면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며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박 회장은 전날 이 회장을 만나 빠른 경영 정상화 의지를 설명하고 금융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이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먼저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방안을 마련해 제출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2018년 7월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에 이어 성희롱 논란에도 휘말리면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불신을 샀다.

1989년 국영기업인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해 한진중공업으로 간판을 바꾼 뒤 30년간 회사를 이끌어 왔던 조 회장은 필리핀 수비크 조선소 리스크로 경영권을 내려놓게 됐다. 수비크 조선소 경영 악화로 현지 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하면서 모회사인 한진중공업이 제공한 보증 채무가 손실로 반영되면서 한진중공업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이에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 3월 한진중공업에 대한 6874억원 규모의 출자 전환을 확정했다. 출자 전환으로 채권단이 한진중공업 지분 80% 이상을 보유하게 돼 최대 주주가 기존 한진중공업홀딩스에서 산업은행으로 바뀌었다. 한진중공업홀딩스를 통해 경영권을 행사하던 조 회장은 경영권은 물론 사내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재계에서는 박 회장과 조 회장의 전격 퇴진 배경에는 취임 이후 줄곧 이해 당사자들의 고통 분담과 독자 생존을 강조해 온 이 회장의 압박이 주효했다고 분석한다. 산업은행 자회사로 있는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상선의 수장 역시 이 회장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임기를 2년 이상 남긴 채 올 초 중도 퇴임했다.

이 회장은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교체에 대해 “그분들 역할은 끝났고 새 시대에 새 관점에서 미래 지향적인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은 정성립 사장 후임으로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장이, 현대상선은 유창근 사장이 물러난 자리에 배재훈 범한판토스 전 대표가 취임했다.

◆ 정부·오너·노조에도 소신 발언…직설화법
‘진보 학자’ 이동걸, 구조조정 해결사로 돌아오다

“국가 경제와 대상 기업에 최선이 되는 판단 기준과 엄정한 원칙, 투명한 절차에 따라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

“구조조정의 원칙은 해당 기업의 자구 노력이다. 끌려 다니는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 (이동걸 회장)

이 회장은 취임 당시 구조조정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최우선 원칙으로 이해 당사자의 책임과 고통 분담을 강조해 왔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그는 대우조선해양·금호타이어 매각과 한국GM 잔류 등을 끌어냈다. 학자 출신으로는 드물게 소신 발언과 직설화법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2009년 금융연구원장을 돌연 사임하면서 이임사를 통해 당시 이명박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는 당시 “비판은커녕 정부 정책을 앞장서 홍보하지 않는 연구원장은 현 정부에 제거 대상인 듯하다”며 “연구원을 정부의 ‘두뇌(Think Tank)’가 아니라 ‘입(Mouth Tank)’ 정도로 생각하는 정부에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한갓 사치품에 불과하다”고 정부를 겨냥해 파장을 일으켰다.

8년 연속 적자를 낸 현대상선을 강도 높게 비판한 적도 있다. 그는 2018년 11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현대상선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받아보니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앞으로 해운 노선별로 실적을 주(週) 단위로 점검해 두 달, 석 달 동안 실적이 나아지지 않으면 (해당 임직원을) 퇴출하겠다. 실태를 살펴보니 혁신과 비즈니스 마인드가 없고 정부에 의존하려고만 든다”고 비판했다.

앞서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자회사인 KDB생명(구 금호생명)에 대해 “애초에 인수하지 말았어야 할 회사”라고 발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 2월 현대중공업그룹의 인수에 반대 투쟁하던 대우조선해양 노조를 향해선 “투쟁과 파업만으론 일자리가 지켜지지도, 기업 경쟁력이 오르지도 않는다”며 일침을 가했다.

◆ 산업은행, 혁신 성장 마중물로 변신 중

‘진보 학자’ 이동걸, 구조조정 해결사로 돌아오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산업은행은 2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산업은행은 3월 31일 2018년 영업실적을 공개했는데 지난해 2조5000억원 규모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4348억원) 대비 2조750억원(477%) 늘어난 수준이다. 이는 과거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주식 손상 관련 비용 일부 환입분(약 2조원)을 포함한 것이다.

산업은행은 조선·해운·자동차산업 구조조정 지원 부담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자체 손실 흡수 능력인 이익 유보가 늘어나 정책금융 수행을 위한 토대가 보강됐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이익 유보 증가분을 활용해 혁신 중소·중견기업 지원 직간접 특별 대출 프로그램, 사회적 기업·소셜 벤처기업 지원 프로그램 등 다양한 정책금융 프로그램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 회장은 2017년 취임과 함께 산업은행의 역할 변화를 주문해 왔다. 취임 당시 그는 혁신 성장 지원, 부실기업 구조조정 마무리, 산업은행 경쟁력 제고 등 세 가지 목표를 세워 산업은행의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산업은행이 단순히 국책 금융회사를 넘어 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꾸려 나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산업은행은 2018년 말 내부 조직 개편을 통해 9개 부문 가운데 하나인 구조조정부문을 구조조정본부로 축소하고 기존 혁신성장금융본부를 혁신성장금융부문으로 격상했다. 현재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전담 자회사인 ‘KDB AMC(가칭)’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평소 이 회장의 지론대로 기업 구조조정 업무는 자회사에 맡기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혁신 기업 지원에 더욱 힘을 쏟겠다는 구상이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산업은행은 ‘넥스트 라운드’라는 투자 유치 프로그램을 통해 유망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금융을 지원하는 마중물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제까지 시장에서 국가 경제적으로 필요한 혁신 기업들에 대한 자금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 실패의 영역이었던 것”이라며 “정책금융은 민간이 개입하기 어려운 시장 실패 영역에 들어가 물꼬를 터주고 마중물 역할을 해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은행의 구조조정과 혁신 기업 육성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약력]

1953년 경북 안동 출생
1972년 경기고 졸업
1977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4년 미국 예일대 금융경제학 박사
1994~1998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1998~1999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1999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2000~2003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3~2004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2004~2007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7~2009년 제5대 한국금융연구원장
2009~2013년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2013~2017년 동국대 경영대학 초빙교수
2017년 9월~ KDB산업은행 회장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9호(2019.04.08 ~ 2019.04.1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