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카카오와 1년간 104만 명 대상으로 ‘안녕지수’ 측정
“이제는 정책도 ‘행복 타당성 검사’를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하루는 언제였을까, 월요병은 실제로 존재할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는 누구일까.’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가 작년 한 해 동안 매일 국민에게 행복을 물었다. 1년 동안 약 104만 명이 응답한 ‘대한민국 안녕지수 프로젝트(이하 안녕지수)’는 행복만을 연구하는 데이터로 세계 최대 규모다.

매년 유엔이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는 각국에서 1000여 명 내외를 표집한 결과에 기초하고 있다. 안녕지수는 유엔보다 1000배 많은 표본을 분석한 셈이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가 안녕지수를 기반으로 발간한 책 ‘ABOUT H’에 따르면 20~30대 여성의 행복은 전 연령과 성별을 통틀어 최저점을 나타냈다. 반면 60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행복지수가 높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 연구를 주도한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나 대한민국 안녕지수가 나타내는 의미를 물었다. 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 내면의 경험을 통계자료로 축적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행복에 관한 데이터 구축은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소중한 국가적 유산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주관적 행복을 측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행복을 측정하는 나라가 많지만 ‘안녕지수’처럼 365일 24시간 국민의 행복을 측정한 데이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존 연구는 1년에 한 번씩 측정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따라서 어느 나라가 행복한지 알 수 있지만 어느 날, 어느 시간대에 행복한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주가지수의 변동과 행복지수가 관계가 있는지, 미세먼지가 행복지수에 영향을 주는지 등 사건사고나 외적인 변수와 행복에 대한 인과관계를 증명할 데이터가 부족했죠. 주가지수처럼 매일매일의 행복지수를 측정한 데이터는 경제지표와 여론조사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진짜 ‘행복’에 관한 마음 지도를 살펴볼 수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간단한 설문으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측정하는 연구가 어떻게 가능했나요.
“주관적 행복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구성됩니다. 하나는 ‘삶에 대한 만족도’이고 다른 하나는 정서적인 균형, 즉 기분 좋은 상태죠. 하지만 인간은 만족스럽고 즐거운 삶, 그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자기 성장과 삶에 대한 의미와 목적도 행복의 중요한 요소죠. 안녕지수는 삶에 대한 만족감과 정서 상태 그리고 삶의 의미를 측정하는 총 10개 문항으로 구성해 행복을 측정했습니다.”

-2018년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했나요.
“점수로만 따지면 한국인들의 안녕지수 평균점수는 10점 만점에 5.18점이었습니다. 안녕지수의 중간 값이 5점임을 감안할 때 2018년 한국인들의 행복 수준은 ‘보통’이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행복의 분포를 살펴봤을 때 한국의 20%는 핀란드나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 수준의 만족도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유엔 행복지수 국가 순위와 비교). 국내총생산(GDP)에 비해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로 꼽히는 한국에서 이 같은 결과는 굉장히 좋은 신호라고 할 수 있죠. 반면 응답자의 23%는 아프리카 국민의 평균 만족도 수준의 삶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분포를 통해 행복의 양극화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행복을 느꼈나요.
“이번 책에서는 대표적 심리 지표인 ‘성격’, ‘자존감’, ‘물질주의’, ‘감사’, ‘사회 비교’, ‘사회적 지지’라는 6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행복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는 사람들,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일상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들, 남들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행복을 느꼈습니다.

세대로는 50대 이상이 높은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다만 이 조사는 온라인상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소득이나 결혼 여부, 직업 여부 등 더 다양한 변수를 얻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60대 이상이 행복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 데이터에서 추론할 수 있는 이유는 일단 나이가 들면 남과 비교를 덜 합니다. 남과 비교하기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죠. 또 돈보다 사람이나 우정 등 비물질주의적 가치관이 올라갑니다. 역설적이지만 데이터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신체가 약해지고 경제적으로 부족할 수 있지만 내면의 힘이 강해진다고 할 수 있죠.

같은 이유로 개방성 조사에서도 10대와 60대의 개방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데이터 외에 일반적인 이유를 추론해 보면 나이가 들면서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에서 해야 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 만나야 하는 사람과 안 만나도 되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삶에서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자기 삶을 관리하는 힘이 커지는 거죠.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큰 축복 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정책도 ‘행복 타당성 검사’를 해야 합니다”

-365일 중 345일이 유쾌했다는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입니다. 뇌의 기본 정서 상태가 중립이 아닌 긍정이죠. 그래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잖아요. 미디어에서는 유엔 행복보고서 순위를 보도하면서 한국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우리가 그렇게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따로 분석해 보면 여전히 한국은 스트레스가 높은 사회입니다.”

-책에 따르면 평창올림픽, 남북 정상회담, 9·13 부동산 대책 등 정부의 빅 이벤트도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결과가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국가가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거나 정책을 수립할 때 모든 여건이 국민 행복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국가 주도로 사업을 진행할 때는 항상 타당성 검사를 합니다. 제일 기본적인 검사가 경제적 타당성과 환경영향평가죠.

그런데 이제 행복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국가의 이벤트나 사업으로 인해 국민의 주관적 행복도 올라갈 수 있을지’ 행복 타당성 검사를 생각해 볼 때가 된 거죠. 흔히 행복이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역시 국민의 일상과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였습니다.”

-그러면 국민의 행복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조사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경제와 행복의 상관관계는 이미 입증됐습니다. 경제적 수준과 긍정적인 정서(기분 좋음)의 연관성은 낮지만 소득이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는 상승합니다. 그런데 지금 물음은 인과관계가 반대예요. 경제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데 ‘행복하면 경제가 좋아지느냐’ 이건 더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순환적인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은 합니다. 국민의 만족 수준이 올라갔을 때 다음 세대의 행복이 높아질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부탄이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지 않나요.
“부탄에 대한 잘못된 이해입니다. 부탄이 발표한 수치는 부탄 정부에서 계량화한 ‘국민행복지수’예요. 유엔에서 측정한 결과로는 한국이 50위권, 부탄이 100위권에 있습니다. 상대적으로나 절대적으로나 행복 수준 자체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그 대신 부탄은 행복을 국가의 목표로 삼았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경제와 행복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지만 국가의 GDP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GDP를 보완하기 위해 국민의 주관적 행복을 측정하고 나섰죠.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외형적 경제성장이 더 이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세 명의 경제학자가 ‘우리 삶을 잘못 측정하고 있는 것 : 왜 GDP가 말이 되지 않는가’라는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행복을 관장하는 주무 부처가 있나요.
“영국은 최근 ‘외로움부’를 만들었고 아랍에미리트(UAE)에는 ‘행복부’가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주관적 행복을 위해 국가가 나서겠다는 시도죠. 경제가 중요하니까 경제 부처가 있고 건강이 중요니까 건강 부처가 있잖아요.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행복을 관장할 정부 기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에서 남녀의 행복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프로젝트 결과에 따르면 연령별 안녕지수는 10대 때 높았다가 20~30대 때 최저점을 찍고 다시 반등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20~30대 여성의 행복은 전 연령과 성별을 통틀어 최저점을 나타냈죠. 이들은 삶의 만족도와 삶의 의미에서 최저점, 스트레스지수에서는 최고점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40대 이상은 남녀 차이가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여성의 행복이 남성보다 낮은 이유는 2030 시기에 여성이 남성보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커리어가 출산과 육아와 상충하면서 남성이 겪지 않는 문제에 직면하죠. 여성과 남성이 똑같이 경쟁하고 똑같이 성공해야 하는 시대인데 사회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기 때문에 경쟁하면서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어떤 과를 나오든 대학생들의 모든 꿈이 ‘유튜버’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젊은이들이 유튜버를 꿈꾸는 것은 누구나 성공 가능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튜버는 오랜 시간 정해져 있는 훈련 코스를 밟아 올라가는 길이 아니잖아요. 학벌과 전공, 집안 배경과 상관없이 누구나 재능이 있고 사람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는 하나의 사회 관문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걸 ‘바람직하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죠.”

-매년 리포트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향후 연구에서 국민의 주관적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요인에 어떤 요소를 추가해 나갈 예정인가요.
“이미 축적한 요인이 20개 이상입니다. 향후에는 시간 빈곤,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본인의 계층, 완벽주의적 성향이 나이와 성별에 따라 어떻게 다르고 행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연구할 계획입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축적해 일종의 국가 데이터베이스로 남길 계획입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2호(2019.04.29 ~ 2019.05.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