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Ⅰ= 금융권 핵심 경쟁력 '지속가능 금융'] -기후변화,사회문제 해결 앞장...6월 금감원 스터디 개최 이후 한국에서도 관심
대세는 '착한 은행'...금융권 경쟁력으로 떠오른 '지속가능 금융'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지속 가능’이 금융권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이라고 하면 수익만 좇는 냉혹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금융업에서도 환경과 사회적인 가치를 고려하는 투자와 경영 활동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지속 가능 금융, 사회 책임 금융과 같은 용어들이 금융권에서 더욱 부각되는 배경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대세’로 자리 잡은 지속 가능 금융에 국내 금융권에서도 점점 더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대표적인 금융그룹들은 은행을 중심으로 전사적인 차원에서 지속 가능 금융과 사회 책임 금융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날씨 정보에서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게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됐다. 미세먼지 문제가 악화되면서 이미 국내 많은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에 ‘미세먼지’와 ‘금융’은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최근 글로벌 금융사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는 바로 ‘미세먼지’를 포함한 기후변화다. 바로 이 ‘미세먼지’와 ‘금융’의 연결고리가 ‘지속가능·사회책임 금융’이다.
◆ 금융사가 미세먼지 해결에 관심 두는 이유

‘지속 가능 금융’이란 용어는 2015년 유엔이 결의한 ‘지속 가능 개발 목표(SDGs)’ 달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금융 서비스와 상품, 관련 제도와 시장 체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SDGs는 국제사회가 달성해야 하는 인류 공동의 17개 목표를 제시한다. 빈곤과 기아 퇴치, 경제성장, 불평등 감소, 기후변화 대응 등이 포함돼 있다. 보통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등 친환경과 관련한 금융사들의 활동을 ‘녹색 금융(Green Finance)’이라고 말하는데 지속 가능 금융은 사회·환경적 요소에 경제·지배구조 등을 모두 아우르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금융사가 투자와 같은 경영 활동을 할 때 수익성 등과 같은 재무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 발전’을 위한 금융의 역할을 보다 강조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쉬운 예를 들어 예전에는 금융사가 석탄 회사에 투자를 고려할 때 단지 이 회사에 투자한 뒤 얻을 수 있는 ‘수익률’과 같은 재무적인 수치만 중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회사가 미칠 수 있는 환경적 영향력 등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지 금융사의 투자 활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캠페인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지속 가능 금융에 대한 관심이 매우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 유럽을 휩쓴 폭염 사태를 비롯해 이상기후에 따른 위협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기후변화를 포함해 불평등 등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갈수록 잦아지는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위기감이 커지면서 지속 가능한 경제와 금융의 필요성은 향후 더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주요 20개 국가가 모인 ‘G20’은 2016년 녹색금융스터디그룹(GFSG)을 신설했는데 최근 명칭을 지속가능금융스터디그룹(SFSG)으로 변경하고 연구 범위를 확대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6월 금융감독원이 지속 가능 금융에 대한 국내 금융권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관련 스터디를 개최한 바 있다. KB·신한 등 5대 금융지주사, KEB산업·수출입·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연구원 2곳, 녹색기후기금(GCF) 관계자들이 첫 스터디에 참여해 지속가능·기후금융에 대한 글로벌 논의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스터디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지속 가능 금융은 이미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 흐름이다. 짧은 시간 동안 잠시 스쳐 지나가는 단발성 이슈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대부분의 글로벌 대형 금융사들이 적극적으로 지속 가능 금융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사회 책임 투자(SRI), 그린 본드 발행 등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이며 단지 금융 상품 발행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실제 유럽 대형 은행을 중심으로 대출 심사에 기후 리스크를 반영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고 SRI와 자금 지원 등을 통해서도 지속 가능 금융을 추진 중이다. 파리 기후협약 이후 유엔환경프로그램 금융계회(UNEP FI)이 설립되면서 글로벌 은행권 포트폴리오에 기후변화 리스크와 기회 요인을 반영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네덜란드의 ING은행과 프랑스 은행 나티시스가 대표적이다. ING는 환경영향평가에 따라 자본비용이 연동되는 지속 가능성 연계 대출을 실시하고 있다. 나티시스는 기업의 기후 친화적 사업 등 친환경 프로젝트를 반영하는 지표를 개발해 반영 중이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녹색 금융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투자도 지속 가능 금융의 중요한 축이다. 금융사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각 지역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경제력을 갖춘 건강한 지역사회를 구축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이는 환경 보존을 위한 활동뿐만 아니라 미래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사업,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최초 감염률을 낮추기 위한 보건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이 포함된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글로벌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대표적이다. 상생 경영을 위한 다양한 지역사회 투자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치료가 가능한 시각장애인을 지원하는 SIB(Seeing is Believing) 캠페인, 글로벌 HIV·에이즈(AIDS) 교육 프로그램인 ‘리빙 위드(Living with) HIV’ 캠페인 등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며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다.
◆ 글로벌 금융 트렌드, 국내도 대응 필요

이에 비해 한국은 지속 가능 금융의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금융업계에서도 다양한 지속 가능 금융 활동이 전개하며 매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속가능·사회책임 금융은 워낙 장기적인 관점에서 광범위한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다 보니 한국의 대표적 금융지주들을 중심으로 그룹 전사적인 차원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금융지주사들의 ‘맏형’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들이 핵심 동력으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금융지주를 맡아 이끌고 있는 수장들의 이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하반기 영국과 북유럽 등 SRI 투자에 관심이 높은 지역 투자자들을 방문해 적극적으로 소통할 계획이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UNEP FI’ 글로벌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전 세계 금융 산업을 위한 ‘책임 은행 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Banking)’을 공동 제정·발표하기도 했다. 이 원칙은 금융 산업의 파리 기후협정과 유엔 지속 가능 개발 목표(SDGs) 이행을 위한 역할과 책임을 규정하는 국제 협약으로, 중국공상은행·바클레이스·BNP파리바·ING 등 28개 글로벌 금융사가 신한금융과 함께 참여했다.

KB금융그룹 또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을 중심으로 지난 4월 ‘KB혁신금융협의회’를 출범하는 등 지속 가능 금융에 관심이 높다. 특히 기후 기술 기업 등 혁신 성장 기업에 기술 금융을 지원하고 고객과 함께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동참하기 위해 적금과 신탁으로 구성된 ‘KB맑은하늘’ 금융 상품 패키지를 출시하는 등 녹색 금융에 앞장서고 있다.

김수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에너지·모빌리티·농산업·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지속 가능 금융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지금보다 앞으로 점점 더 부각될 것”이라며 “중·장기적 금융 트렌드를 반영하고 국제적인 평판을 높인다는 관점에서도 지속 가능 금융이 국내 금융사들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2호(2019.09.16 ~ 2019.09.2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