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녹슨 도시를 바꾸는 힘, 러스트벨트 극복의 조건④ 스페인 빌바오 편]
-지역 리더들 모여 민·관 협의체 구성…구겐하임 유치 후 120개 도시재생 프로젝트 진행

[빌바오(스페인) = 이현주 한경비즈니스 기자 / 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스페인 북쪽 바스크 지방의 중심 도시, 빌바오(Bilbao)는 한때 조선·철강·금융이 융성한 곳이었지만 산업 전환을 통해 건축과 문화의 도시로 다시 태어났다. 조선 산업의 메카에서 쇠퇴 이후 문화도시로 거듭난 빌바오의 변화는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라는 말이 자리 잡을 만큼 극적이고 성공적이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제조업 경쟁력 악화로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 지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한경비즈니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녹슨 도시를 바꾸는 힘, 러스트벨트 극복의 조건’ 특별 기획을 마련했다. 스웨덴 말뫼, 일본 기타규슈, 호주 애들레이드에 이은 넷째 도시는 스페인 빌바오다.
문 닫은 조선소에 들어선 미술관…빌바오를 살린 ‘문화의 기적’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비스카야 주 빌바오시는 전통적으로 부유한 도시였다. 공업에 기반을 둔 바스크 지방에서도 항만 도시이자 해상 교통 요충지로 무역이 성행했고 광산이 많아 제철과 중공업이 발달했다. 20세기 중반까지 조선·철강·금융 산업으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잘나가던 도시도 1980년대 전후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빌바오에는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온강이 있다. 과거 산업의 중심지로 조선소와 하역장이 즐비하던 곳이다. 강을 따라 자리한 12개의 조선소는 단 한 개를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경 파괴 문제가 극심했다. 산업폐기물로 수질과 토양이 오염됐고 1983년에는 대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면서 도시가 완전히 초토화됐다. 실업률은 35%까지 치솟았고 청년 실업률은 무려 50%에 달했다.

“지역에 다양한 위기 요소가 많았지만 먼저 정치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로 전환하면서 정치적으로 급변하는 동안 산업이 정부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고 바스크 지역의 많은 기업들이 외부로 이탈했어요. 조선업은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사회적·환경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했죠. 홍수에 테러까지 일어나면서 작은 도시 하나에 수많은 요소들이 얽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빌바오 도시 혁신 민·관 협의체인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의 알퐁소 마르티네즈 세아라 사무총장은 당시의 위기 상황을 ‘두려움’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절박함이 출발점이 됐다. 산업적 결핍과 정치적 결핍은 변화에 대한 자각과 의지를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은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공과 민간이 손을 잡고 도시를 다시 일으킬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러스트벨트 이후 새로운 빌바오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문 닫은 조선소에 들어선 미술관…빌바오를 살린 ‘문화의 기적’
강을 살리고 문화의 랜드마크를 만들다
빌바오를 대표하는 색은 붉은색이다. 빌바오의 버스나 표지판이 모두 그렇다. 네르비온강을 걷다 보면 파란색 하늘과 초록색 나무, 강을 잇는 다리의 붉은색 아치 조형물이 조화롭게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빌바오를 찾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구겐하임을 보러 빌바오에 온다”고 말할 정도로 구겐하임은 곧 빌바오이며 빌바오가 곧 구겐하임으로 통한다.

강 쪽에서 구겐하임을 끼고 돌면 정면에 제프 쿤스의 ‘퍼피(Puppy)’가 서 있다. 꽃 강아지 모양의 대형 설치 작품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하루 종일 사람들을 그러모은다. ‘메탈 플라워’라는 별칭이 붙는 은빛 티타늄 판의 미술관 외관은 햇빛에 유난히 반짝이고 있었다. 캐나다 출신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만든 건축물이자 하나의 예술품이다. 빌바오를 바스크 지역의 강소 도시에서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탈바꿈시키는 촉발제 역할을 했다.

이곳은 과거 조선소가 있던 자리다. 1980년대와 비교하면 산업의 공간에서 문화 중심의 공간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문화를 심는 것과 동시에 강을 환경적·생태적으로 살리는 것도 빌바오 혁신의 핵심 과제였다. 빌바오에 오래 거주한 시민들은 이곳의 옛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곳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시민 모니카 씨는 도시 변화의 가장 큰 성과로 “강을 돌려준 것”이라며 “사람들이 찾지 않는 우범지대 같은 곳이었는데 미술관이 들어서고 수질이 개선되고 이른 시간 내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것 자체가 시민에게는 실질적인 혜택”이라고 말했다.

구겐하임의 진짜 ‘뷰 포인트’는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미술관 전경이다. 미술관 옆으로 조성된 공원과 놀이터 그리고 산책길과 다리가 이질적인 듯 조화를 이룬다. 잘 차려입은 관광객들 사이로 트레이닝복 차림의 시민들이 길을 따라 걷거나 뛴다. 동네 아이들은 해가 저물도록 놀이터를 차지하고 있었다. 빌바오는 문화 중심 도시로 전환하며 관광객부터 시민을 비롯해 도시의 모든 것이 녹아드는 ‘용광로’가 되고자 했다.

침체된 도시의 해법으로 문화를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유효한 성장 전략이었다. 구겐하임은 1997년 개관 이후 현재까지 방문객 수 매년 10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연 40만~50만 명 수준이면 운영은 가능하다”는 당초 계산을 뛰어넘어 개관 첫해부터 예상보다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이 중 외국인과 내국인의 방문 비율은 약 70 대 30으로 유지된다. 이 수치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미술관 방문에 그치지 않고 지역 내 소비를 촉발하며 ‘문화 산업’으로의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이른바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다.

구겐하임 미술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베고냐 씨는 “내국인들은 현지에서 입장료만 쓴다면 외국인들은 주변의 호텔·상점·레스토랑 등에서 지역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며 “특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특징은 언어·풍습·건축·미식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문화를 기반으로 사업 분야가 다각화되면서 다른 도시에 비해 질적으로 다른 관광도시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빌바오에는 전에 없던 크루즈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이스(MICE) 산업의 요충지로 비즈니스 관광객도 찾기 시작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빌바오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사용하는 지출 비용은 총 5억3800만 유로(약 7100억원)로, 투자비용의 60배 되는 수준의 지출을 하고 있다. 또한 입장료 등에 포함되는 세금은 연간 7300만 유로(약 963억원)이며 지역 내 약 1만 개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문 닫은 조선소에 들어선 미술관…빌바오를 살린 ‘문화의 기적’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한 세 개의 축
빌바오의 경제 활성화 전략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으로부터 미술관을 유치한 게 전부가 아니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존 요세바 레오나르도 데우스토대 사회과학인문학부 명예교수는 “구겐하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빌바오는 구겐하임을 시작으로 20년간 12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면서 대대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 과정을 요약하면 먼저 인프라에 투자하고 현재는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빌바오 모델이 독특한 것은 ‘선정책·후설득’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런던 북부의 킹스크로스 지역이 10년 넘게 주민 설득 작업을 거쳤다면 빌바오는 그 작업을 건너뛰었다. 주민들은 제조업 기반으로 도시를 만들기를 기대했지만 더 이상 제조업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도시의 리더들은 문화도시로의 대전환을 꾀했다. 정책적인 결정을 내리고 이후 주민 설득에 나선 점에서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자칫 실패하기 쉬운 과정이었지만 전 세계의 도시들이 벤치마킹하는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에는 ‘리더십·협력·균형’의 키워드가 있다.

1980년대 당시 도시가 패닉에 빠졌지만 변화를 이끌 구심점은 없었다. 정치적으로 신뢰가 무너지고 강을 따라 형성돼 있는 크고 작은 도시들은 서로 싸우기를 반복했다. 전형적인 님비(NIMBY : 자기 지역에 혐오 시설을 꺼리는 것) 현상이 발생했다. 민·관 협의체인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빌바오의 영향권에 있는 크고 작은 30개 지역의 리더들이 모여 하나의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그 안에 130여 개의 단체가 조성돼 있다. 현재까지 정부·기업·대학·시민단체·언론사 등에서 모인 약 800명의 회원들이 모여 전 세계의 모범 사례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이때 강조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안목을 갖는 일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한 기관은 ‘빌바오 리아 2000’이다. 이곳은 실질적인 토지 개발을 이끄는 곳으로, 바스크 지방 정부와 비스카야 주 정부, 빌바오시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행정·공공기관의 의사결정권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이곳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일사천리로 실행이 가능했다. 또 다른 축에서는 빌바오시청이 행정적 지원으로 견인차 역할을 했다. 빌바오는 ‘공동의 리더십’을 추구했다. 한 정치인이나 기관이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전문가들이 리더십을 뒷받침하도록 공공과 민간의 소통이 가능한 중립 지대이자 의견 교환의 장을 만들었다. 이들 협의체는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도시의 방향성을 제안할 때 물론 여론 반대도 뒤따랐다. 처음 구겐하임 유치를 결정할 때는 90% 이상인 대부분의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문화는 사치일 뿐 더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공장이었다. 알퐁소 마르티네즈 세아라 사무총장은 “눈에 보이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먼저 영향력이 큰 프로젝트에 집중해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공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예컨대 앞서 얘기한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는 지역이 아반도이바라 지구다. 구겐하임 미술관 이외에도 에스칼두나 국제회의장 겸 음악당이 자리하고 있다. 또 쇼핑센터·대학·도서관 등이 새롭게 들어왔다. 기찻길을 지하화하고 항구를 이전하면서 확보한 땅에는 공원과 트램을 놓아 ‘보행 친화적 공간’을 확보했다. 이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이베르드롤라 타워는 2011년 새롭게 올라간 초고층 빌딩으로, 스페인 최대의 전기·전력 회사와 공공의 영역이 협력해 만든 결과물이다.

또한 새로운 빌바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했다. 빌바오에는 그래서 세계적인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물들이 많다. 버려진 와인 창고를 개조해 만든 복합 문화 공간 아즈쿠나센터는 프랑스 건축가 필립 스탁에 의해 재탄생한 또 하나의 명소다. ‘건물 안의 건물’이 콘셉트로, 도서관과 피트니스센터 등이 자리해 있고 로비에서 천장을 보면 수영장이 보이는 독특한 구조로 인기를 모은다. 이 밖에 노먼 포스터, 알바로 시자, 라파엘 모 네오, 자하 하디드 등 세계적인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가들이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문 닫은 조선소에 들어선 미술관…빌바오를 살린 ‘문화의 기적’
문 닫은 조선소에 들어선 미술관…빌바오를 살린 ‘문화의 기적’
눈에 띄는 건축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오랜 기간 공들여 온 과제다. 수비수리 보행교, 페드로 아루페 보행교를 비롯해 강을 잇는 여러 개의 다리가 놓였고 공항·지하철·고속철도 등 외부로부터의 접근성을 강화하는 인프라 투자가 이뤄졌다. 빌바오 공항은 조개 형상의 유리 구조로 돼 있고 보행교는 모두 다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빌바오 지하철은 유럽 건축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아반도이바라 지구 등 성공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수익은 낙후 지역에 재투자됐다. “도시 균형이라는 성공 열쇠였다”고 레오나르도 데우스토대 명예교수는 설명했다. 미리빌라 지구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공공 주도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불평등의 이슈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도시 혁신을 통해 누가 혜택을 받느냐’는 질문에 대해 “우리의 성공 비결은 재투자를 통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도시의 균형을 추구한 것이고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리빌라 지구는 광산이 있던 낙후 지역이었지만 아레나 경기장이 들어서고 일대에 공원과 놀이터가 새로 생기면서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인프라 투자에서 가치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빌바오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안전·쾌적 등의 가치가 강조돼 왔다면 최근에는 지식과 재능 그리고 사람이 중심이 된다.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조선·철강·금융의 도시에서 문화와 관광의 도시로 산업 전환을 이룬 빌바오도 지금 4차 산업혁명 물결의 영향 아래 있다. 요즘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은 “공무원 등 안정적인 일자리”라고 레오나르도 명예교수는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과 AI·자동화로 또다시 일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두려움이 청년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는 것이다.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에서는 향후 2035년까지의 장기 프로젝트를 모색하는 아이디어 공유의 자리를 10월 중 가질 계획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빌바오의 비전에는 또 무엇이 담길까. 전 세계에서 벤치마킹 하는 ‘빌바오 효과’가 지속적인 성공기를 쓸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 닫은 조선소에 들어선 미술관…빌바오를 살린 ‘문화의 기적’
[돋보기]
알퐁소 마르티네즈 세아라 빌바오 메트로폴리 30 사무총장
“문화는 새로운 빌바오를 위한 전략적 선택”

문 닫은 조선소에 들어선 미술관…빌바오를 살린 ‘문화의 기적’
빌바오 메트로폴리 30의 알퐁소 마르티네즈 세아라 사무총장은 “우리는 탐험가”라며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고 전 세계의 경험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비전과 전략을 공유하는 게 주요 역할”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참고했던 해외 사례는 무엇이었나.
“실업자가 두 명 발생했다고 가정할 때 그들에게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배움을 통해 진화가 가능한 사람과 직종 이직이 어려운 사람을 구분해야 한다. 당시 상황에서 우리는 조선업이 더 이상 미래에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인재와 자본이 빠져나가는 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빌바오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문화가 활용됐고 우리만의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존 요세바 레오나르도 데우스토대 사회과학인문학부 명예교수
“공동의 이익이 발생하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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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요세바 레오나르도 데우스토대 사회과학인문학부 명예 교수는 “각각의 도전 과제는 시기에 따라 달랐지만 어떤 과제에서든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고 해결책에 빠르게 대처하면서 사전 분석과 예견을 통해 다음 단계를 찾아나가는 일은 언제나 필요했다”고 말했다.

공동의 리더십을 발휘할 때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누군가는 혜택을 받고 또 누군가는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반대되는 의견이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 조직적인 구성을 통해 각각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보다 공동의 이익이 발생하도록 리더십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베고냐 구겐하임 미술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예술은 도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도 바꾼다”

문 닫은 조선소에 들어선 미술관…빌바오를 살린 ‘문화의 기적’
베고냐 구겐하임 미술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바스크 지방 정부와 비스카야 주정부 빌바오시청이 공동의 리더가 돼 진행한 프로젝트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이 아닌 자체적인 예산과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빌바오의 문화 자산”이라고 말했다.

개관 첫해부터 폭발적인 관광객이 모였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철강과 조선의 도시였던 만큼 건물 외벽으로 금속을 사용하고 배의 형상을 띠면서 빌바오의 역사를 건물 안에 함축할 수 있었다. 전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유지하는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20주년 문구 중 ‘예술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