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 부상으로 부동산 선호 변화…혁신 기술로 트렌드 변화 이끌기도
맨해튼에서 본 세계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
#1. 미국 중서부의 도시 덴버에 사는 제니사 화이트 씨는 가구 소득이 연 10만 달러(약 1억2000만원)가 넘는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하지만 렌트비(월세)를 내고 집을 빌려 산다. 화이트 씨는 “빚이 많아 집을 살 때 내야 할 다운페이먼트(착수금)를 낼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의 연평균 평균 가계 수입은 2018년 6만3179달러(약 7000만원)다. 10만 달러는 여전히 많은 수입이다. 하지만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가구 중 주택을 빌려 사는 비율은 올해 19%에 달한다. 2006년 12%에서 대폭 상승했다. 340만 가구가 집을 사는 대신 임차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2. 뉴욕 맨해튼의 가장 중심 지구는 소위 ‘미드타운’이다. 센트럴 파크 아래 40~59번가 지역을 말한다. 그랜드센트럴과 펜스테이션(기차역)과 포트오소리티(버스터미널) 등 교통 시설이 집중돼 있고 대규모 마천루들이 솟아 있는 곳이다.
대표적 오피스 빌딩인 ‘1330 애버뉴오브아메리카스’는 지난 10년간 임대료가 거의 변화가 없었다. 스퀘어피트당 2007년 84달러였던 렌트비는 10년이 지난 2017년 82달러로 소폭 하락했다. 하지만 미드타운 남쪽 첼시 지역의 스타렛 리하이 빌딩의 렌트비는 2007년 29달러에서 2017년 63달러로 112% 올랐다. 젊은 밀레니얼 세대 직장인들이 카페와 레스토랑, 주거지역과 오피스가 어우러진 첼시 지역을 선호하자 기업들이 옮겨간 덕분이다.

[뉴욕(미국) = 김현석 한국경제 특파원] 미국 부동산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젊은 밀레니얼 세대가 부상하고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조하면서 부동산에 대한 선호가 바뀌고 있는 데다 전자 상거래와 공유 비즈니스의 발전 등 혁신 기술이 사회에 파고들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에서 몰려드는 거대한 자본이 돈 냄새를 맡아 빠르게 움직이면서 새롭고 거대한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변화는 세계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이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 가지 주요 최신 트렌드를 살펴보자.
맨해튼에서 본 세계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
①기술이 바꾼 부동산, ‘리테일 대신 창고’
미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부동산은 물류 창고다. 반면 공실이 급격히 증가해 찬밥 대우를 받는 것은 리테일(상가)이다. 부동산을 주택·오피스·리테일·창고 등으로 나눠 볼 때 지난 2년 새 가장 많이 오른 것은 창고이고 가장 많이 떨어진 것은 리테일이다.
이는 전자 상거래 발달의 영향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부동산 시장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의 약진으로 지난해 미국에선 전자 상거래가 전체 소매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를 넘었다. 3~4년 내 15%를 넘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성장세를 감안할 때 물류 수요는 앞으로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지난 9월 26일 187억 달러(약 22조원)를 들여 1억7900만 스퀘어피트 규모의 도심 인근 물류 창고들을 인수한 게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특히 블랙스톤이 사들인 것처럼 대도시 인근의 물류 창고의 인기가 높다. 아마존의 ‘하루 배송’ 때문이다. 아마존이 하루 배송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미국 유통업계에서는 배송 시간 단축이 사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관건으로 떠올랐다. 이런 하루 배송이 가능하려면 도심과 인접한 물류센터를 확보한 뒤 주문이 많은 물건을 대량으로 쌓아두고 있어야 한다. 즉 ‘라스트마일(last mile)’ 물류 창고를 확보하는 전쟁이 조용히 벌어지고 있다.
현재 유통업자들은 물류비용의 80%를 트럭 등 운송비로 쓴다. 반면 물류 창고 렌트비는 물류비용의 4.3%에 불과하다. 미국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자들에게 렌트비는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렌트비를 올릴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물류 창고의 수요는 많지만 도심 인근에 남는 땅은 많지 않다. 맨해튼 인근에는 빈 땅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도심 내에 신축 물류 창고는 여러 층으로 지어지고 있다.
반면 리테일은 한파를 맞았다. 많은 도시에서 상가 면적이 감소하고 있다.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쇼핑몰은 전자 상거래가 가능한 옷·잡화 등을 다루는 점포 면적이 줄어들었다. 그 대신 피트니스·헬스케어·레스토랑 등의 면적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쇼핑몰의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 과거 쇼핑몰은 몰 주변을 주차장으로 감쌌지만 최근에는 몰 옆에 아파트와 메디컬 오피스(병원) 등을 배치하는 새로운 구조로 짓고 있다. 체험하면서 오랜 시간을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넣는 것이다.
맨해튼에서 본 세계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
②밀레니얼이 맨해튼 오피스에 미친 영향
오피스 빌딩의 공간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임원들의 별도 업무 공간이 창문 주변에 배치됐다. 하지만 렌트비가 올라가면서 최근 오피스 공간은 책상들이 매우 빽빽하게 배치되고 회의실 공간을 늘리는 식으로 설계된다. 임원실은 사라졌다.
이에 따라 수십년 전에 비하면 1인당 쓰는 면적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면적이 좁은 만큼 답답해진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건물주들은 층고가 높고 채광이 좋은 공간을 제공하는 게 중요해졌다.
기둥이 없어야 빽빽한 레이아웃에서도 답답하지 않은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신축되는 미국의 빌딩들은 기둥을 줄이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미팅 장소, 컨벤션 시설, 피트니스센터 등 부속 시설을 제공하는 게 임차인을 확보하는 데 매우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이런 특징은 밀레니얼 세대가 오피스 주력 인구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 효율을 높이려면 임차인인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공간을 공급해야 하는 것이다.
맨해튼에서 본 세계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
최근 미국 대도시에서 새로운 오피스 지역으로 성장하는 곳은 보스턴의 시포트 지역, 시애틀의 사우스 유니언 지역, 뉴욕의 첼시 지역 등이 꼽힌다. 이들 지역은 사무실과 주거 시설 그리고 레스토랑과 극장 등 먹고 마실 수 있는 여가 시설이 모두 함께 있는 게 특징이다. 이런 지역을 선호하는 게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다.
고용자가 뜨는 지역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어야 최고의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뉴욕 맨해튼을 보면 과거엔 포트오소리티·그랜드센트럴 등이 들어선 미드타운이 각광받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첼시 등 미드타운 남쪽 지역으로 기업들이 이동하고 있다.
금융사들은 대부분 미드타운에 자리 잡고 있지만 최근 맨해튼에서 사무실을 확대하고 있는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은 대부분 미드타운 사우스 쪽으로 입주하고 있다. 이곳은 주거 시설과 여가, 사무실들이 함께 자리한 복합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미드타운의 임대료는 10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지만 미드타운 사우스 지역은 임대료가 급등해 거의 미드타운과 비슷해진 상황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창조된 공간은 최근 신축된 허드슨 야드다. 미국의 3대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 헤지펀드업계의 거물인 스티브 코언의 SAC캐피털어드바이저스, 댄 로브의 헤지펀드 서드포인트 등이 모두 허드슨 야드로 옮겼거나 이전할 예정이다.
맨해튼에서 본 세계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
③주택에 부는 변화, ‘소유보다 임대’로
밀레니얼 세대가 바꾸고 있는 시장은 오피스뿐만이 아니다. 주택 시장도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집을 사기보다 임대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집값 폭락 여파로 부모들이 학비를 대지 못하면서 대학 졸업 때부터 학자금 부채를 수만~수십만 달러씩 진 세대다. 여기에 자동차 할부, 신용카드 빚 등에 쫓겨 모기지를 빌리기 위해 필요한 다운페이먼트(통상 집값의 20%)를 마련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또 집을 렌트하면 소유할 때보다 관리 부담이 적기 때문에 렌트하겠다는 비율도 높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07년 금융 위기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부터 임차인 가구 수는 25% 증가했지만 주택 소유 가구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후 경기가 살아나면서 최근 실업률이 50년 내 최저인 3.5%까지 떨어졌지만 주택 소유율은 60.9%에 머무르고 있다. 장기 평균인 65%보다 낮고 최고 기록인 69%에 비해 훨씬 낮다.
지난 2분기를 기준으로 4390만 가구가 주택을 빌려 살고 있고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7500만 가구에 그친다. 게다가 모기지 금융회사 프레디맥의 조사에 따르면 임차인 중 24%만이 앞으로 주택을 소유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이는 4년 전 조사보다 11%포인트나 하락한 비율이다.
이런 성향은 소득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시애틀·신시내티·앤아버 등의 도시에서는 2006~2017년 새 연 10만 달러 이상을 버는 임차인의 수가 두 배 이상 많아졌다.
이 때문에 대규모 고급 임대 주택을 보유한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주택 임대 회사인 인비테이션홈스와 아메리칸홈스포렌트는 휴스턴과 덴버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도시 주변에 13만3000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 임차인들의 가구 연소득은 평균 10만 달러가 넘는다. 소득이 높은 이들은 한곳에 오래 주거하는 경향이 높고 렌트비로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낮다. 이 때문에 고소득 밀레니얼 세대를 노린 고급 아파트와 콘도 붐이 일고 있다.
은퇴하는 베이비부머를 위한 시니어 홈 건설도 붐을 이루고 있다. 최근 신축된 시니어 홈은 소득이 많은 베이비부머들을 타깃으로 최고급 부대시설을 갖춘 곳이 대부분이다.
realist@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7호(2019.10.21 ~ 2019.10.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