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Ⅰ]
-존재감 보이는 ‘현대가 3세’ 정기선
-대우조선해양 합병 마무리가 향후 최대 관건
체질 개선 나서며 계열사 주가 ‘쑥쑥’…부활 시동 건 현대중공업그룹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중공업을 모회사로 하는 기업집단이다. 1970년 현대건설 내에 설치된 조선사업부가 그룹의 모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창업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황량한 모래밭이었던 울산 미포만 백사장의 5만분의 1 지도와 500원 지폐 속 거북선을 보여주고 영국은행에서 자금을 유치해 세계 1위 조선소를 품은 재계 서열 7위 규모의 중공업그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의 주요 계열사 주가가 급등했다.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가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발표하고 계열사들이 양호한 실적을 거둔 결과다. 주목할 부분은 현대중공업 조선해양 부문과 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등의 조선 3사의 실적이 동반 개선된 점이다.


체질 개선 나서며 계열사 주가 ‘쑥쑥’…부활 시동 건 현대중공업그룹
◆ 30여 년 만에 오너 경영 체제로 복귀하나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 2월 6일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사주 48만8000주를 취득한 뒤 소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발행 주식의 총 3%로 약 1290억원 규모다. 자사주 소각은 현대중공업지주 창사 이후 처음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중간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2019년 매출액이 전년보다 15.4% 늘어난 15조182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 2902억원, 순이익 2131억원을 거둬 전년 대비 흑자 전환됐다. 에너지부문 계열사인 현대에너지솔루션도 2019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220억원, 순이익 235억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2018년보다 각각 54.3%, 24% 늘어난 수치다.

또 현대중공업지주는 주주 친화 정책의 일환으로 향후 3년간 배당 성향을 70% 이상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올해는 작년과 동일한 주당 1만8500원을 책정했다. 배당금 총액은 2705억원이다.

최근 현대중공업그룹은 30여 년 만에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 오너 경영 체제로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그동안 최대 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오랜 정치권 활동으로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을 중심으로 한 계열사별 전문 경영인 체제를 이어 왔다.

그런 현대중공업그룹이 지배구조 체제 개편 등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은 최대 주주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의 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정기선 부사장은 최근 경영 일선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2019년 7월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간담회에 현대중공업그룹 대표로 정 부사장이 참석해 3세 경영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룹 회장인 권오갑 회장이 아닌 정 부사장이 공식적인 행사에서 재벌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체질 개선 나서며 계열사 주가 ‘쑥쑥’…부활 시동 건 현대중공업그룹
정 부사장은 해외 무대로도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그룹이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의 국영 석유 회사이자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아람코와 조선·정유·엔진 등 다방면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데 정 부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다.

정 부사장은 2015년 11월 현대중공업과 아람코가 전략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이끌어 내며 사우디와 협력 관계를 주도해 왔다. 사우디 아람코·현대중공업·람프렐·바흐리 간 합작회사인 IMI를 설립하기 위해 2015년부터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직접 지휘했다.

그 결과 현대중공업그룹은 사우디 정부의 탈석유화 정책에 따른 ‘비전 2030 프로젝트’의 주요 사업 파트너로 자리하게 됐다. 정 부사장은 2019년 6월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현대중공업그룹 대표로 단독 면담을 할 정도로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부사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많지 않다. 다만 과거 알 나세르 아람코 사장은 그에 대해 “사업 기회를 포착하는 예리함은 정주영 일가의 DNA”라고 평하기도 했다.

정 부사장의 사업 수완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정 부사장은 사우디 협력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손수 챙겼다. 2016년 7월 조선소 건설 프로젝트를 놓고 사우디 에너지 장관과 아람코 경영진을 만났을 때 정 부사장이 상대방에게 줄 선물로 은 거북선을 준비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거북선은 조부이자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특별한 손님에게 주던 선물이다.

현재 정 부사장의 공식 직함은 그룹선박해양영업 대표,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 등 총 3개다. 정 부사장은 2009년 대리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가 미국 유학 후 2013년 부장 직급으로 재입사했다. 이후 2014년 상무, 2015년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전무 승진 2년 만인 2017년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2016년 12월 분사한 조선 기자재 애프터서비스(AS) 전문 계열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도 맡게 됐다.

정 부사장은 주력 사업뿐만 아니라 미래 먹거리 찾기에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실적이 정 부사장의 경영 능력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선박 엔진 플랜트 분야의 AS가 새로운 수익 창출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한 신규 사업이라는 판단 아래 정 부사장 주도로 2016년 설립됐다.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선박 AS 분야의 친환경 부품의 성장세에 따라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매출도 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최근 콘퍼런스콜을 통해 현대글로벌서비스의 올해 매출 목표를 1조2000억원으로 잡았다.

체질 개선 나서며 계열사 주가 ‘쑥쑥’…부활 시동 건 현대중공업그룹
◆ 노련한 권오갑 회장의 리더십 필요

2019년 11월 현대중공업그룹의 임원 인사에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 부사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부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승진하자 재계에서는 권 회장의 ‘뒷바라지 경영’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권 회장은 그룹의 지속 성장의 기틀을 다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 중이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 인수·합병(M&A) 작업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각종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오너 경영 체제로의 전환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란 현실적인 판단을 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의 3세 경영이 본격화했지만 아직은 40여 년간 몸담은 노련한 전문 경영인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는 관측이 많다.

권 회장은 정몽준 이사장의 최측근으로 그룹 내에서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다. 1978년 평사원으로 입사해 2019년 그룹 총사령탑으로 승진하면서 현대중공업그룹의 43년 역사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정주영 창업자와 정몽준 이사장을 모두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온 만큼 오너가와 밀접하고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이다. 권 회장이 조선업계 빅딜인 대우조선 인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정기선 시대’의 초석을 놓는 셈이 된다.

권 회장이 그룹 지속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연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마무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재 대우조선 합병을 위해 한국을 비롯해 일본·유럽연합(EU)·중국·싱가포르에서 기업 결합 심사를 받고 있다.

최근 일본은 한국 조선업 대형화에 대한 견제구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양 사 합병에 대해 KDB산업은행과 정부 지원 등을 거론하며 보조금 협정 위배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 결합 심사는 총 6개국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한 국가라도 반대하면 합병이 무산된다. 일본은 2018년 11월 제소에 이어 1년여 만에 또다시 WTO에 제소하며 한국의 메가 조선소 탄생을 견제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조선업의 최대 시장인 EU에서도 제동을 걸 가능성이다. EU는 한국 조선업의 가장 큰 시장으로 경쟁법이 가장 엄격한 곳이다. 지난해 말 1차 심사에서는 EU가 독과점 우려를 제기하며 2차 심사에 돌입했다. 결과는 올해 상반기 중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측은 이번 제소에 대해 기업 결합 심사와 무관하다고 선을 그으며 기업 결합 심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WTO에 문제를 제기한 주체는 일본 국토교통성이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 심사는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라며 “향후 기업결합 심사의 진행과는 별개의 내용”이라고 말했다.

체질 개선 나서며 계열사 주가 ‘쑥쑥’…부활 시동 건 현대중공업그룹
◆ 기술과 혁신으로 지속 성장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기술과 혁신으로 대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계획이다. 권오갑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대비하는 최첨단 조선, 에너지 그룹으로의 전환’을 선포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춰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스마트 중공업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다.

또한 5G와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의 기술과 조선업을 융합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2011년 3월 세계 최초로 스마트십을 선보인 바 있다.

이후 업계 최초로 통합 스마트십 솔루션을 개발하고 기술 인증까지 끝마쳤다. 최근에는 현대중공업 독자 모델 엔진인 힘센엔진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 선박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KT와 5G 기반의 스마트 조선소, 스마트 팩토리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등 조선업의 ‘스마트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 밖에 현대중공업그룹은 기술 중심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창립 50주년이 되는 2022년 완공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경기 성남 판교 일대 2만3866㎡ 부지에 들어서는 글로벌R&D센터 착공에 들어갔다.

글로벌R&D센터는 지하 5층~지상 19층, 총면적 16만5289㎡(5만 평) 규모로 건설되며 2022년 완공할 예정이다. 이를 시작으로 현대중공업그룹은 연구·개발(R&D) 부문 투자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완공 이후 5000여 명의 R&D 인력이 근무하며 기술 중심 경영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앞서 현대중공업그룹은 2016년 11월 순환 출자 해소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2017년 현대중공업을 인적 분할해 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지주)를 지주회사로 하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현대로보틱스가 조선(한국조선해양), 정유(현대오일뱅크·현대케미칼), 전기전자시스템(현대일렉트릭), 건설장비(현대건설기계), 선박 AS(현대글로벌서비스)를 지배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룹이 미래 성장 동력으로 공들이고 있는 로봇 사업에서도 실적 성장이 기대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19년 12월 로봇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해 자회사 현대로보틱스를 신규 설립했다.

현대로보틱스는 자동차 제조용 로봇, 액정표시장치(LCD) 운반용 로봇 등을 개발하는 국내 1위 로봇 기업이다. 그룹이 로봇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은 이유는 산업용 로봇 시장의 고성장세 때문이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연간 설치 대수는 42만2000대로 연평균 14.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독립 경영의 발판을 마련한 현대로보틱스는 산업용 로봇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물류, 모바일 서비스 로봇 등 신사업을 확대해 2024년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세계 톱5로 도약할 계획이다.


[돋보기]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평사원에서 40년 만에 수장 올라…샐러리맨 신화 주역
체질 개선 나서며 계열사 주가 ‘쑥쑥’…부활 시동 건 현대중공업그룹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은 2019년 11월 그룹 회장으로 승진해 입사 40년 만에 공식적인 총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1978년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 플랜트영업부에 입사해 구매·영업·경영지원 등 다양한 부문을 두루 거쳤다. 2010년 현대오일뱅크 초대 사장을 지냈고 이 기간 현대오일뱅크의 철저한 체질 개선을 이끌어 동종 업계에서 3년 연속 영업이익률 1위를 달성하며 뛰어난 경영 능력을 발휘했다.

2014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와 그룹 기획실장에 취임해 조선업의 위기 속에서 과감한 의사결정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구조조정 및 사업 재편과 개혁을 단행해 회사 정상화를 이끌었다.

현대건설기계·현대일렉트릭·현대로보틱스·현대에너지솔루션 등 비조선 사업을 분할해 독자 경영의 기틀을 마련하고 지주회사 체제 전환 임무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2016년 조선업이 최악의 불황을 겪던 어려운 시기에 현대중공업지주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등판했다. 권 회장은 당시 주채권 은행과 3조5000억원 규모의 자구 계획을 마련해 비핵심 자산 매각을 단행했다.

2016년 말부터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추진하면서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순환 출자 고리를 해소했다.

권 회장은 미래 기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글로벌 연구·개발(R&D)센터(GRC) 설립을 추진했고 2019년 1월 KDB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합의해 한국 조선업 재편을 이끌고 있다. 산적한 각종 현안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11월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진행 중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 결합 완수는 그의 마지막 과제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4호(2020.02.17 ~ 2020.02.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