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절망한 청춘들, ‘이민’이 답일까
(일러스트 김호식)

{빈손 이민은 성공 확률 낮은 도박…그 용기면 무엇을 못 하나}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대한민국에 지쳤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이 나라에서 취업과 결혼이라는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어찌어찌 직장을 얻고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과 격차가 이미 너무 벌어져 있고 좁힐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외국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다.”

“한국의 각박함이 너무 싫습니다. 벌써 4년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쉬어본 지가 언제인지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야근과 주말 특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휴가, 제게는 너무도 먼 얘기입니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꿈이나 희망 같은 단어는 그저 남의 얘기로만 들립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10년이 넘도록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왔습니다. 그간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생겼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 어쩌면 내 자식들은 더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쟁은 갈수록 심해질 뿐 도무지 완화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이민 가서 잠시라도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해외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글들이다.

이들은 경쟁에서 뒤처져 있는 지금의 상황을 뒤집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치열한 경쟁 양상이 바뀔 것 같지도 않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어 한다. 조금이라도 여유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소박하고도 간절한 꿈이다.

◆‘헬조선’ 이민 권하는 대한민국

해외 이민을 꿈꾸는 사람은 과거에도 지금 못지않게 많았다. 1960~1970년대 가난하고 헐벗은 경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1970년~1980년대 군부독재의 정치 상황이 만들어 내는 절망적 사회 분위기가 싫어 떠나고 싶어 했다.

정치·경제적으로의 안정되고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 선진 공업국으로의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민을 생각하는 이유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 예전에는 경제적 궁핍이나 정치적 강압처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이민을 자극했다. 반면 최근 이민을 생각하게 만드는 요인은 한국 사회 내부에서 심화하고 있는 경쟁과 격차다.

즉 과거의 요인이 절대적 빈곤과 강압적 사회 분위기였다면 지금은 상대적 박탈감과 격화하는 경쟁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트렌드모니터가 2016년 3월 전국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6.5%만이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어 할 뿐 61.1%는 이 땅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삶의 여유가 없고 복지제도가 부족하며 지나치게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었다.

76.9%는 이민을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민에 대한 바람은 젊을수록 강했다. 사람들은 이민을 통해 잘 갖춰진 복지와 팍팍하지 않은 여유로운 삶을 꿈꿨다.

또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 격차나 소득 불평등, 지나치게 과열된 한국 사회의 경쟁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것에 절망했고 먹고살기 힘들고 취업하기 어려운, 그래서 미래가 없는 한국을 떠나려고 했다.

한국인들,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은 최근 들어 ‘경쟁 피로증’과 ‘격차 혐오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나친 경쟁과 그 경쟁의 부산물인 격차는 젊은이들에게 한국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른바 ‘헬조선’과 ‘탈한국’의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현실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난 것에 절망하고 있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자신이 싫다. 앞서 있는 사람들을 따라잡고 싶지만 그렇다고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기는 부담스럽다.

또 고심 끝에 경쟁에 뛰어들기로 마음먹어도 방법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한다. 그래서 남들 눈에서 자유롭고 기회가 많을 것 같은 외국으로 가려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셈이다. 삶의 절반도 채 살지 않은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그런데 정말 우리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원하는 이런 삶이 불가능한 것일까. 앞서 있는 사람들을 따라잡기는커녕 평균 수준의 소박한 꿈도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일까. 선진국에서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선진국에 가면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이 보장되는 것일까. 그리고 인생의 새로운 시작은 꼭 이민을 가서 해야 하는 것일까.

◆녹록지 않은 이민자의 삶

내가 아는 30대 중반의 어떤 남성은 꽤 오랫동안 이민을 꿈꿔 왔다. 평생은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중견기업에 다니고 있는 그는 여자 친구와 함께 외국에서 공부를 더 한 뒤 아예 눌러앉는 방안을 찾아 왔다. “멀쩡한 직장을 놔두고 미쳤느냐”는 질책을 들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이민 박람회에 다녀온 뒤 이민 계획을 접고 말았다. 박람회에서 직원이 얘기해 준 방법을 듣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이민을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민 회사의 직원은 그에게 취업 이민을 권했다. 문제는 1년간 호텔에서 청소하거나 식당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85년 최인호 소설을 원작으로 개봉된 영화 ‘깊고 푸른 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한 남자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불법 체류자 신세의 남자 주인공은 영주권을 받기 위해 한국계 미국인 이혼녀인 여자 주인공과 위장 결혼한다.

그는 미국 이민국 직원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고 영주권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여자 주인공은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는데 남자 주인공의 머릿속은 오로지 한국에 있는 부인과 아이로 꽉 차 있다. 하지만 한국의 부인에겐 이미 다른 남자가 생겼다.

당시 비극으로 끝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까지 하면서 영주권을 얻을 만큼 미국에서 사는 게 좋은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저런 비참한 생활을 감수할 정도의 마음가짐이라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삶을 도모해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저런 상황까지 견디면서 미국 영주권을 얻으려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 길이 전혀 안 보이는 모양인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의 상황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이민을 간다는 것은 다른 나라를 한 번 경험하는 수준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익히고 관계를 맺어 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안착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매우 확률이 낮은 도박이요, 극단적 선택이다.

이런 도박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이 어렵고 돌파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불구덩이에라도 뛰어드는 심정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민을 꿈꾸는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는 걸까.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본 것일까. 하고 싶은 일들은 외국이 아닌 국내에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일까.

이민을 꿈꾼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다 지우고 새로 쓰고 싶고 컴퓨터를 포맷해 완전히 새 컴퓨터로 만들고 싶다는 뜻이다. 단순히 외국 생활을 선호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이나 현재의 모습이 싫어 새롭게 바꾸고 싶다는 의미다. 그만큼 새 삶을 간절히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민을 간다고 해서 새로운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가 지워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민을 가서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상황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수많은 난관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만약 타지에서 그런 난관을 넘을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있다면 한국에서도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

한국에서의 삶이 퍽퍽하다면 퍽퍽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이 있다. 그 요인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외국에 가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궁핍 때문에 한국 생활이 힘들다면 외국에선 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경제적 능력만 있다면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경제력이지 한국이라는 지역이 아니다.

몇 년 전 미국 뉴욕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하던 50대 남성과 한참 이야기했다. 그는 2000년대 초 이민 와 한국인을 상대로 관광 가이드를 하면서 살고 있었다. 이민 오기 전 그는 한국의 대기업의 중간 간부였다.

“한국 생활이 남부럽지 않았을 텐데 왜 이민을 오게 됐느냐”고 묻자 그는 자식들 교육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에게 일찍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며 부인이 먼저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으로 왔는데,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자신마저 합류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와 나눈 이야기 가운데 이런 말이 기억에 남았다. “가진 자산이 없다면 이민 와서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정말 한국이라는 지역이 문제일까

가끔씩 외국에서 정착한 사람들의 눈물겨운 정착 과정을 듣게 된다. 그들이 안착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을 쏟아냈을까 생각하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 저 정도의 노력을 한국에서 했다면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빠른 성공을 거두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이들의 성공은 이들의 땀과 한숨과 눈물 덕분이지 결코 외국이라는 지역 덕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왜 내가 이것을 그만두려고 하는지, 새로운 것을 하면 현재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같은 정도의 노력이라면 현재 상황에서 시도하는 게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민 갈 정도의 용기가 있다면 먼저 이곳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