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은 성과가 전부…‘상사를 도와 성과를 낼 방법’ 찾아라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50대 초·중반의 갱년기 여성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 가운데 화병(火病)이라는 것이 있다. 울화병(鬱火病)이라고도 하는데 억울한 감정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그 분노가 불같이 폭발하는 질환을 뜻한다.

이 화병은 우울감, 식욕 저하, 불면 같은 우울 증세뿐만 아니라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 호흡곤란, 불규칙한 심장박동, 몸 전체의 통증,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느낌 등 다양한 신체 증상을 동반한다. 억눌러 왔던 우울과 분노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화병이 중년 여성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이유는 그들의 분노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들은 아내와 엄마, 며느리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노출되지만 이 감정을 배출하지 못하고 억누르면서 몇 십 년씩 혼자 속으로 삭여 왔다.

이렇게 억눌린 감정은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한의학에서 이 분노의 감정을 ‘화(火)’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직장인들 가운데 ‘제2의 화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통적 개념의 화병이 가부장적 가족 문화의 산물이었다면 또 다른 개념의 화병은 가부장적 기업 문화의 부산물이다.

전통적 개념에서 화병의 원인 제공자가 남편이나 시어머니였다면 최근 화병을 잉태하고 키우게 만드는 사람은 단연코 직장 상사다. 과거 화병이 주로 50대 갱년기 여성들에게 나타났다면 제2의 화병은 20~30대 직장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한다.
[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끔찍한 상사, 대책 없는 부하
(일러스트 김호식)

◆오너가 되지 않는 한 어디든 상사는 있어

직장 상사가 만들어 내는 스트레스는 많은 젊은이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업무 의욕을 잃게 한다. 각종 조사에서 직장인들이 회사를 떠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상사와의 갈등이 꼽힌다.

직장인들이 일이나 회사의 비전이 맞지 않아 회사를 옮기는 것은 드물다. 대부분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상처 때문에 회사를 옮긴다. 상사를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일하기 싫어진다는 직장인들이 어디 한두 명인가.

이 때문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직장 생활을 힘들고 퍽퍽하게 하는 상사들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2011년 개봉된 ‘스트레스를 부르는 그 이름 직장상사(Horrible Bosses)’는 그런 상상을 영화로 만든 미국식 코미디 영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고등학교 동창 세 남자는 직장 상사로부터 끊임없이 인격적 모욕을 당한다. 이들의 상사는 다소 과장돼 있지만 직장인들이 만날 수 있는 끔찍한 상사의 상징적 존재다.

부하 직원의 공을 가로채는 치졸한 꼼수로, 남성성을 처참하게 깔아뭉개는 성희롱으로, 정상적 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코카인 남용으로 직장 생활에 충실하려는 직장인들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힌다.

이들 세 명은 상사들이 죽이고 싶을 만큼 밉지만 퇴근 뒤 맥줏집에서 벌이는 상사에 대한 험담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하지만 점점 심해지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이들은 마침내 미운 직장 상사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직장 상사를 죽이기로 도원결의한 것이다.

다소 상투적인 이 영화가 2014년 속편을 낼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것은 그만큼 직장인들의 상사 스트레스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상사는 이제 모든 부하 직원들의 공분의 대상이 될 만큼 미운 존재가 됐다. 상사 스트레스는 심장마비나 심장 질환 가능성을 60% 더 높이고 결혼 생활과 가족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회사에서 상사가 어떤 존재인지, 상사와 관계가 직장인들의 진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30대 직장인들에게 상사 문제는 심각한 고민거리다. 스트레스를 마냥 감수할 수도, 그렇다고 상사에게 정면으로 맞설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는 직장인들이 많다.

떠날 각오를 하고 한판 붙을 수도 없고 상사의 횡포와 모욕을 계속 감당할 수도 없는 이들은 해법을 찾지 못해 괴로워한다.

직장 생활은 업무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결정한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어떻게 일하느냐가 핵심이다. 존경하는 선배와 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일반 직장인들이 쉽게 만나기 힘든 행운이다.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와 일하며 힘들어 한다. 그렇다면 상사를 피할 방법은 없을까.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이들과 마주치지 않고 직장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런 방법은 없다. 직접 창업을 한다거나 부모로부터 회사 경영권을 물려받아 오너가 되지 않는다면 상사의 존재를 무시하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상사가 없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상사는 피할 수 있거나 자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물론 상사를 이길 수 있다. 통쾌하게 한 방 먹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순간일 뿐이다.

◆상사는 가족이 아닌 리더

기본적으로 회사는 상사 편에 선다. 상사는 부하 직원에 비해 지식과 경험과 정보에서 앞서 있다. 대부분이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이들은 어느 한쪽에 문제가 있더라도 다른 강점으로 회사가 원하는 성과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웬만한 실수가 아니면 자리를 쉽게 빼앗지 않는다. 부하 직원이 상사를 이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 상사와 대적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백전백패는 아니더라도 백전구십구패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떠날 각오가 돼 있다면 대적할 수 있다. 상사의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잘못을 공개적으로 파헤칠 수 있다. 떠나기로 결심한 마당에 무슨 일인들 못할까.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정면 대응이 상사로 하여금 자기 잘못을 깨닫게 할 수도 있고 나쁜 상사가 직장에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쾌거’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최악의 상사 한 명을 제거했다고 직장 생활이 활짝 필까. 다음에 만날 상사는 존경할 수 있는 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상사와 갈등을 겪었던 직장인들은 대부분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회사는 다 비슷하고 상사는 다 똑같다.” 나쁜 상사를 벗어나 좋은 상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로 회사를 옮기고 부서를 바꿔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회사 어느 부서든 ‘팔뚝에 닭살 돋게 하는 아첨꾼’,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닭대가리’, ‘또라이와 쌍벽을 이루는 제2의 또라이’는 존재한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직장인들을 나는 여러 명 봤다. 반대로 직장 생활을 잘한다는 얘길 듣는 직원, 조직에서 인정받고 빠르게 승진하는 직원이 상사를 험담하는 것을 많이 보지 못했다.

두 그룹은 상사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상사를 자신을 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형이나 오빠, 언니처럼 여긴다. 그래서 자신에게 잘 대해 주지 않는 상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든 가만히 놔두는 상사만이 인격자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상사에게 ‘대책 없는 부하 직원’일 가능성이 높다. 일도 잘 못하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내쫓고 싶은 존재다. 밉기만 한 부하 직원에게 따뜻한 말이나 격려와 칭찬을 계속할 상사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이에 비해 후자는 기본적으로 상사를 성과를 이끄는 리더라고 간주한다. 자신을 포함한 부하 직원은 상사를 도와 성과를 만드는 존재다. 상사가 부하 직원들을 배치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성과를 만들기 위한 조치일 뿐이다.

그 상사 역시 다른 상사의 부하이고 그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상사는 자기처럼 성과를 내야 하는 또 다른 의미의 직장인이다. 그가 부하 직원을 힘들게 하는 것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직장 스트레스의 근원은 상사가 아니라 직장의 구조나 업무 시스템이다. 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에 누가 그 자리에 와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은 다르지 않다.

◆‘신뢰’를 쌓아가는 게 최고의 방법

직장인들이 상사와 갈등이나 상사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상사에 대한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상사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줘야 하는지 생각하지 말고 상사를 도와 어떤 성과를 어떻게 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상사를 부하 직원의 처지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상사가 성공해야 자기도 성공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세계적 경영학자이자 컨설턴트였던 피터 드러커는 “상사를 100% 파악해 그에게 맞추라”고 조언한다. 상사는 부하 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만약 상사가 자신과 맞지 않으면 부하 직원이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니라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우라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상사의 실적을 올려주라”고까지 말한다.

상사는 괴물도 악마도 아니다. 고의로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보스는 거의 없다. 보스는 그럴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상사가 자신을 막 대하고 괴롭힌다면 거기에 반드시 이유가 있다. 따라서 먼저 왜 그가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상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왜 자신을 그렇게 대하는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상사를 깊이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그를 돕고 그에게 애정 어린 조언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린다 힐 하버드대 교수는 “나쁜 보스 밑에서 적응하려면 먼저 자기 보스가 어떤 유형인지 알아야 하고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어떨까,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따져봐야 한다”고 말한다. 나쁜 상사는 그냥 좋은 보스가 되는 법을 모를 뿐이며 보스 역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은 대체로 상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처음부터 자신을 잘 대해 주는 좋은 상사를 만났던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상사는 처음에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상사를 도와 성과를 만들었고 이 과정에서 신뢰의 관계가 만들어졌다. 자신을 돕는 부하 직원을 외면할 상사가 어디 있겠는가.
[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끔찍한 상사, 대책 없는 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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