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트위터 넘어선 '포켓몬 고' 열풍 … 구글, AR 광고시장 탐내나

'포켓몬이 살린 AR'…새로운 광고시장 열린다
유령은 실제로 존재할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유령의 존재를 대개는 믿지 않는다. 믿는 사람들조차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피카추(Pikachu)’는 어떨까. 지난 며칠 동안 최소 수백만 명이 목격했으니 그 존재를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일본의 게임회사 닌텐도는 포켓몬스터(이하 포켓몬)라는 가상의 존재를 탄생시켰다. 세계 곳곳에 서식하는 다양한 포켓몬을 작은 공으로 포획해 수집하고 성장시키는 스토리를 게임으로 만들었다.

◆스무 살 포켓몬, 현실 세계로 나오다

포켓몬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돼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는 콘텐츠가 됐다. 특히 전기 스파크를 일으키는 노란색의 몬스터 ‘피카추’는 귀여운 외모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상상 속의 존재였던 포켓몬이 탄생 20년이 된 올해 현실 세계에 나타난 것이다. 지난 7월 6일부터 세계 여러 곳에서 포켓몬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포획에 나섰다.

최고의 포켓몬 트레이너가 되겠다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수백만 명을 넘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포켓몬 출몰 지역이 미국·호주를 시작으로 영국·일본 등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켓몬은 육안으로 볼 수 없다. 트레이너 전용 애플리케이션(앱) ‘포켓몬 고(Pokemon Go)’가 설치된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이 앱을 실행하면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부근에 있는 포켓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가까이 다가가면 포획할 수 있다.

◆구글에서 분사한 나이앤틱 ‘대박’

포켓몬 트레이너로 입문하지 않은 사람들은 포켓몬이 눈앞에 있어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그들은 포켓몬 따위는 세상에 없다고 말하지만 피카추는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버젓이 목격하지 않았는가.

위 이야기는 지난 7월 6일 나이앤틱(Niantic)의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 고’ 출시 이후의 상황을 게임 이용자 시점에서 각색한 것이다. “게임 따위는 관심 없다”는 사람도 이것만큼은 알아둬야 한다.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꿔 놓을 존재일 수도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는지 모른다.

구글에서 분사한 나이앤틱은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땅 따먹기 게임을 만든 경험이 있다. 당시 한 발 앞선 기술 도입 그리고 색다른 게임성으로 주목받았지만 널리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나이앤틱의 그 경험과 기술력이 바탕이 되고 닌텐도의 킬러 콘텐츠인 포켓몬이 결합해 탄생한 게임이 바로 포켓몬 고다. 그리고 세상에 등장한 지 며칠 만에 전 세계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시밀러웹 등 시장조사 업체들에 따르면 출시 닷새 만인 7월 11일을 기준으로 미국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이용자의 10명 중 1명(10.81%)이 이 게임을 설치했고 하루 이용자(DAU)는 2100만 명에 달했다. 전체 미국인의 6.5%가 매일 현실 세계에 등장한 포켓몬을 수집하러 다니고 있는 셈이다.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이 33분을 넘어 트위터와 페이스북마저 제쳤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게임 하나가 아니라 어쩌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플랫폼의 등장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게임에는 AR 기술과 위치 기반 서비스(LBS)가 적용됐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상용화된 익숙한 기술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이 기술을 제대로 활용한 서비스가 아직 없었을 뿐이다.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스마트폰은 필수품이 됐고 세상은 바뀌었다. 하지만 초기에 아이폰을 보며 개인휴대단말기(PDA)를 떠올린 사람들은 이 조짐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미 나온 지 오래된 기술이고 몇몇 사람들에겐 유용하고 필요하겠지만 대중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다.

AR와 가상현실(VR)도 마찬가지다. VR 기기는 스마트폰 이후 가장 빠르게 보급될 디바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AR는 과도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O2O(Online to Offline)’ 비즈니스의 폭발적인 성장을 주도할 열쇠다.

지금까지 이 기술들에 대한 인식은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슷했다. 신기할지는 모르지만 이미 나온 지 오래된 기술이고 그동안 대중화되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포켓몬 고가 그 인식을 바꿔 놓고 있다. 돈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포켓몬의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닌텐도의 주가가 급등했다. AR가 가져올 세상의 변화는 게임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주목해야 할 회사는 닌텐도가 아닌 구글이다.

VR는 온라인에, AR는 오프라인에 가까운 기술이다. AR는 위치 정보나 물리적 매개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AR 기술로 만든 무언가는 이 땅 위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다.


◆가로수길에서 AR 노점상을?

이용자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콘텐츠에 불과한 포켓몬을 현실 세계의 어느 장소에 존재한다고 받아들인다. 이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해석하면 AR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특정 위치에 가져다 놓으면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각광 받는 O2O 비즈니스는 온라인 사업자들이 기존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해 지배력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카카오가 콜택시, 대리운전, 미용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그 예다.

정보기술(IT)과 온라인 서비스가 핵심 경쟁력인 이 싸움은 오프라인 사업자들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AR는 일방적인 대결이 아니다. 오프라인 거점을 가진 사업자가 콘텐츠를 활용해 고객을 더 많이 불러 모으거나 구매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포켓몬 고처럼 많은 이용자를 확보한 AR 플랫폼이 등장한다면 현실의 부동산 위에 존재하는 가상의 부동산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 임대료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AR로 가상의 노점상을 차린다고 상상해 보라. 이 상상이 현실화된다면 또 다른 형태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오프라인 광고 시장도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다. 특정 장소에서 AR 콘텐츠나 광고를 보여주고 매개체가 되는 스마트폰이 측정 수단이 된다면 PC나 모바일에 못지않은 큰 광고 시장이 열릴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지금 모바일 경제를 주도하는 그들의 주요 수익원이 광고라는 걸 상기해 보자. 이쯤 되면 구글의 속내가 읽힌다.

◆구글, 지도 반출 가능할까

구글이 스마트폰의 OS를 장악했지만 이용자들이 머무르는 공간은 페이스북·카카오톡 등 다른 인터넷 서비스다. 모바일 광고는 페이스북에, 커머스는 아마존에 위협받는 구글이 AR를 활용한 위치 기반 서비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점찍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포켓몬 고’가 한국 정부와의 지도 데이터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카드가 된다.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금지하는 현행법을 이유로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 여러 서비스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

사실 소비자들은 그들의 지도 데이터 분쟁에 별 관심도 없다. 하지만 꼭 필요한 혹은 열렬히 원하는 서비스를 지도 데이터 반출 문제 때문에 국내에서 이용할 수 없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포켓몬 고처럼 말이다. 여론이 크게 움직이지 않을까. 두고 볼 일이다.

다만 ‘포켓몬 고’ 열풍이 자칫 부작용을 낳을까 걱정이다. ‘알파 고(Alpha Go)’에 이은 둘째 ‘고(Go)’ 쇼크에 정부가 또 다른 전시성 정책을 내놓지는 않을까. ‘한국형 알파 고’에 이은 ‘한국형 포켓몬 고’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우습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한경비즈니스=이규창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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