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리학 카페]
뇌는 맛보다 브랜드에 더 강하게 반응… ‘맛집’의 비밀은 자극적인 맛
‘절대 미각은 환상’ 자기 입맛대로 먹어라
(일러스트 김호식)

[김진국 문화평론가·융합심리학연구소장] ‘에어컨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 사람은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다.

연일 섭씨 영상 30도가 넘는 폭염과 열대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은 요즘, 리콴유 전 총리의 말이 더욱 실감난다.

누진세로 전기요금 폭탄이 겁났던 것도 잠시뿐이다. ‘사람 좀 살고보자’며 밤새 에어컨을 켜고 자는 가정이 늘고 있다.


◆ ‘맛집’이라는 브랜드가 최면 효과

요즘 냉면을 찾는 사람이 많다. 냉면은 겨울이 제격이라지만 아무래도 시원한 여름에 더 찾기 마련이다. “여름에는 ○○면옥에서 수육 한 접시에 물냉면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하는 게 최고야!” 광고회사에 다니는 한 고향 친구의 말이다.

그는 서울 5대 냉면집, 전국 10대 맛집 등 누가 매겼는지도 모르는 리스트를 나열하며 ‘○○옥은 뭐가 어떻고 ○○냉면집은 뭐가 어떻고…’ 끝없이 찬사를 늘어놓는다.

미안하지만 필자는 그런 리스트를 믿지 않는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다. 맛있다면 얼마나 맛있다고 바깥 기온이 섭씨 영상 4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서에 30분 넘게 줄 서가면서 비지땀을 흘린단 말인가.

맛은 주관적이다. ‘돼지 삼겹살은 수육으로 먹어야 과학적으로 더 맛있고 의학적으로도 건강에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네 입맛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선회는 물고기를 잡자마자 바로 회로 먹는 활어(活魚)보다 얼마간 숙성해 먹는 선어(鮮魚)가 과학적으로도 더 맛있다’고 주장하며 활어회를 즐기는 다수의 한국인들을 비과학적인 야만인으로 몰았던 어떤 음식 평론가의 태도는 틀렸다고 본다.

그의 그런 주장 이면에는 고기는 비쌀수록 더 맛있다는 생각과 음식을 고를 때는 자신처럼 과학적 분석을 하는 전문가의 절대적인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오만함이 깔려 있다. 과연 음식을 고를 때 절대적인 기준이 있고 그것을 따르는 게 올바른 선택일까.

식품 및 외식 프랜차이즈가 전공인 컨설턴트에게 물어봤다. 이준 아이디어크루 대표의 말이다.

“맛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혀가 예민하지 않습니다. 맛을 잘 모른다는 말이죠. 그냥 ‘맛집’이라는 브랜드에 최면이 걸려 몰려듭니다.

또 사람들의 입맛은 저마다의 혀와 체질에 따라 다릅니다. 절대적인 맛? 없습니다. 대중적인 맛은 있죠. 상대적으로 더 짜거나 더 맵거나 더 달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대개의 맛집들은 이렇게 대중적인, 그러니까 자극적인 맛으로 승부합니다.”

영국의 심리학자인 리처드 와이즈먼이 일반인 578명을 대상으로 와인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봤다.

예상대로 사람들은 6000원짜리 값싼 와인과 3만원짜리 와인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이가 허다했다. 그러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면 상황이 달라질까. 마찬가지였다.

역시 영국에서 240명의 소믈리에, 즉 와인 전문가를 초청해 1만6000종의 와인을 블라인드 테스트한 결과, 최고의 와인으로 선정된 와인은 7000원짜리였다.

프랑스에서 프레데릭 브로셰라는 사람이 실험한 바에 따르면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빨간 색소를 넣어 레드 와인처럼 속인 화이트 와인을 발견해 낸 소믈리에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블라인드 테스트의 최고봉은 역시 ‘펩시의 도전’으로 잘 알려진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대결이다. 결과는? 펩시콜라의 완승이었다. 눈을 가리고 맛만으로 고를 때는 펩시가 월등한 성적을 거뒀다.

문제는 이런 실험 결과가 펩시의 실제 매출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라는 장치를 갖고 스캔해 봤더니 블라인드 테스트 때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브랜드를 알고 마실 때에는 사람들의 뇌가 펩시에 보이는 반응이 코카콜라에 비해 형편없이 낮아지더라는 것이다. 뇌조차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미각’을 가진 사람은 전체의 2~3%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와인·냉면·콜라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맛은 혀끝으로 들어오는 물리적 자극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각을 좌우하는 것은 많은 대중이 찾는 이름 높은 브랜드, 소위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비싼 제품이나 맛집 등이 주는 최면 효과의 영향이 더 크다.

필자가 줄 서야 먹을 수 있는 유명한 냉면집보다 장충동의 보통 냉면집에 자주 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절대’는 없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살지 말고 주관적인 세상, 자기 주관대로, 자기 입맛대로 사는 게 최선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