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의 흐름이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장 가치가 가장 큰 5대 기업 중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한 기업에 불과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월마트 같은 유통 대기업 또는 유가가 치솟던 시절에는 엑슨모빌·쉘 등 석유 관련 대기업들 그리고 씨티그룹 등 금융회사들이 수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2016년 현재 톱 5는 애플·알파벳(구글 지주사)·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페이스북 등으로 예외 없이 모두 디지털 기업이다.

그리고 신생 기업들의 부상 속도가 눈부시다. 최근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성공적인 신생 기업들의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약 11조)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980년대 창업한 기업들은 25~30년이 소요됐지만 최근의 스타 기업들은 5년도 채 안 된다.

예를 들어 우버는 5년, 스냅챗은 불과 2년 7개월 만에 이 반열에 올랐다. 제4차 산업혁명의 흐름이 얼마나 빠른지 웅변하는 사실들이다.

그러면 한국의 창업 생태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정말 새로운 기업들이 탄생하고 그래서 경제구조가 혁신되고 디지털 혁명의 파고에서 낙오되지 않는 생태계가 조성되고 강화되고 있을까.

지난 수년간 한국에는 소위 창조경제센터와 벤처타운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대부분이 막대한 예산과 정부가 견인한 대기업의 투자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곳에는 많은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몇 년 된 이런 시범센터에 입주한 기업 중 실패하고 망한 벤처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김호식
일러스트 김호식
정부와 대기업의 후원에 기대 연명하고 있는 기생적 벤처이거나 모험 기업이 아닌 곳이 많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는 살인적으로 물가가 비싼 지역이다.

이러한 고비용의 생태계는 혁신 모험 기업들이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빨리 망하게 해 시장에 의한 선별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데 한국처럼 ‘지원’ 위주의 생태계로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좀비성 기업들을 연명시키고 좀비 기업이 많은 생태계에서는 혁신 기업들마저 생존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전자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옛날과 달리 매우 적극적으로 벤처 기술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대상 중에는 최근 인공지능에 관련한 투자의 예에서 보듯이 국내 벤처기업들이 거의 없다.

그만큼 시대를 앞서 나가는 모험 기업보다 해외에서 이미 유행하는 모방성 창업이 많기 때문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국내의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의 거래 시장의 부재에 대해 일방적으로 대기업을 비난하는 것이다.

즉 한국의 대기업들은 벤처기업이나 그들의 아이디어를 ‘정당한 값’을 주고 사지 않고 일부는 아이디어만 편취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도 있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왜 우리 대기업이 외국 기업들은 인수·투자하면서 국내 벤처들은 인수·투자의 대상이 극히 적은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않는다.

외국 기업들은 벤처기업의 아이디어를 잘 사준다는 것은 환상이다. 기술이 확실히 혁신성이 있거나 이미 많은 고객을 확보해 후발 개발하더라도 추적이 불가능하다면 고객과 시장을 사는 것이 대부분이다.

즉 혁신적 기술이거나 고객을 사는 것이지 애플리케이션이나 아이디어를 사는 것은 아니다.

벤처는 창업가 정신이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이 그렇게 불신의 대상이면 그들의 자선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공정하다고 믿는 해외의 대기업이나 투자자들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한국 벤처계의 일부는 대기업에 대한 불평과 비난으로 자신의 혁신성 부족을 변명하려는 분위기가 너무 팽배하다. 그러면서 정부가 나서 자신들을 보호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올바른 창업가 정신이 아니다.

구글·야후 등의 압도적인 글로벌 경쟁자들의 압력 속에서도 네이버는 ‘지식인’이라는 창조적인 서비스로 우리의 검색 시장을 지켜낸 불가능에 가까운 혁신의 기적을 일궈 낸 벤처기업이었다.

그 주인공이던 이해진 의장이 구글의 지도 시장 진출 가능성에 대해 국내법과 지도 반출 사안과 관련이 희박한 구글세 문제를 거론하며 경쟁자에 대한 비우호적 여론 조성에 나섰다.

이해진 의장, 혁신은 어딜 가고 구글 비판만
서비스의 혁신보다 규제를 활용한 시장 지키기에 나선 것이다. 이것이 한국 벤처 기업가들의 창업가 정신이 실종되는 상징이 아니기를 희망해 본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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