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자기 계발은 ‘나’ 만을 위한 게 아닌 ‘나와 회사’를 위한 게 돼야
이런 일을 시키실 거면 저를 왜 뽑았습니까?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얼마 전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원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회사가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고 일할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아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직장에서 부서 업무를 지원하는 업무비서를 담당했다. 그는 법무로 전문 경력을 쌓고 싶어 몇 달 전 직장을 옮겼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 달리 회사의 법무 업무는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전 회사에서처럼 잡다한 업무를 맡는 본부의 업무비서 역할을 같이 맡게 됐다.
참다못한 그는 상사에게 “저를 법무 담당자로 뽑은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의 상사는 “법무 업무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법무 업무를 주로 맡으면서 본부의 업무비서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가 왜 자기를 뽑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잘못 뽑았어요. 업무비서를 주로 하면서 법무 업무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어야 했는데 저를 뽑았으니 참 답답합니다. 법무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옮겨야 할지, 아니면 법무 업무 비중이 커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 고민입니다.”

나는 그 회사의 임원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래서 얼마 뒤 다른 일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직원 얘길 물어봤다. 그런데 임원은 직원과 조금 다르게 얘기했다.

“법무 담당자로 뽑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법무 경력을 쌓고 싶어 그런지 순수한 법 관련 업무만 맡으려고 해요. 법무 업무라는 게 다른 업무와 연결되는 것이 많잖아요. 업무를 제대로 하려면 다른 업무도 같이 해야 하는데 법 관련 일만 고집하니 일처리가 잘 안 돼요.

또 동료 직원들이 바쁘거나 휴가로 자리를 비울 때 그들의 업무를 맡아 줘야 하는데 법무가 아니라고 외면합니다. 그러다 보니 부서장이나 동료 직원들이 불편해 해요. 아무래도 법무 담당자를 다시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전문성 키우기’가 때로는 회사에 독이 돼

요즈음 전문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에서 이렇게 자기 업무의 전문성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들은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을 늘리고 경험을 쌓고 싶어 한다.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해야 성장 발전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전문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커리어를 이어 가려고 한다.

이들은 또 틈이 날 때마다 책을 보고 강의를 들으며 전문 분야의 지식을 늘리려고 한다. 일부 직원들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그 분야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기도 한다.

이 같은 전문성 강화 노력은 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특히 많이 나타난다. 20대는 직장 구하기에 급급해 자신의 진로와 전문 영역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못한다. 그런데 입사해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몇 년을 지내다 어느 순간 덜컥 겁이 난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직장을 잃으면 어떡하나’ 걱정되는 것이다. 주위에서 구조조정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직장 문을 나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만의 차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30대에 접어들면서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전문성을 고민하고 전문성 확보에 조바심을 내게 된다.

회사로서는 이런 이들의 모습이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직원들의 직무 전문성이 강해지면 회사의 생산성이 개선된다.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도 높아지고 궁극적으로 회사 가치가 커진다. 회사로선 만류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회사 간부들은 직원들의 전문성을 향한 행보를 마뜩하지 않아 한다. 일부 상사들은 노골적으로 전문성을 쌓겠다는 부하 직원들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기업들이 직원들의 전문성 쌓기 노력에 호의적이지 않은 이유는 전문성 쌓기가 회사가 아니라 자기 커리어의 발전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전문성 강화가 회사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기업들은 거의 없다.

직원들의 전문성 강화 노력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대개 업무와 큰 관련이 없다. 처음부터 업무를 위해 자기 계발을 한 게 아니어서 자기 계발 자체가 목적이고 업무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간접적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모르되 단기적으로 직접적 효과만을 따진다면 전문성 추구가 그리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판단한다.

직원들의 전문성 강화 노력은 때로 업무 집중을 방해하기도 하고 조직 운영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직원들이 업무와 관련 없이 자신의 커리어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 조직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회사가 원하는 것은 성과인데, 직원들이 추구하는 것은 성과가 아니라 전문성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직원들이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업무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 없다.

자연스럽게 직원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를 하게 되고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직원을 교체하게 된다. 전문성 강화가 직원의 커리어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장애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회사가 직원들의 전문성을 키워 주는 쪽으로 인력을 운영하면 된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의 전문성을 길러주기 위해 애를 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직원들의 전문성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회사가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과이고 직원의 전문성 강화는 성과를 확대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일 뿐이다. 직원들의 전문성 강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멀티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성공할 수 있어

그런 점에서 직장인들은 전문성 강화에 나서기 전에 자신의 전문성 추구가 회사의 성과에 기여하기 위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회사의 성과 창출과 무관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상사나 동료의 따가운 눈총을 피하기 어렵고 심하면 직접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성 강화 노력이 회사의 성과와 무관하다면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그것도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추진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전문성이 조직의 성과 창출과 맞물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만약 기다릴 수 없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전문성과 맡은 직무가 일치하는 곳으로 직장을 옮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직원들의 냉대를 감수하면서 전문성을 강화하려면 직장 내 왕따를 감수하겠다는 ‘만용’이 필요하다.

답답한 것은 이렇게 만용을 부리는 30대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너무 조급하게 전문성을 확보하려다 보스나 동료들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앞서 말한 대로 직장에서 중요한 것은 성과인데, 현실적으로 이 성과를 내는 데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전문 능력과 일반 능력의 조화다. 전문성이 중요하지만 전문성만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기업들은 전문성 위에 다양한 업무 지식을 기반으로 연관 직무까지도 담당할 수 있는 ‘멀티 스페셜리스트’를 선호하고 있다. 조직에서 전문가보다 멀티 스페셜리스트가 성과를 잘 내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대상에 오르는 사람은 전문성이 아니라 성과가 부족한 직원들이다.

기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이렇게 전문성의 기반 위에 다양한 직무를 이해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성과를 내는 데 전문성은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유럽의 기업들은 일인다역(cross-functional)을 해낼 사람을 선호한다. JTI(JT International)의 글로벌 인력관리(HR) 책임자인 폰 알먼 부사장은 “직무 순환을 통해 다양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게 JTI 인재 관리의 목표”라고 설명한다.

그는 “직원들에게 인사 영업 마케팅 등 여러 종류의 일을 경험하도록 요구하고 유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조직과 무관한 성과는 성과가 아니다

직장인들이 전문성을 쌓겠다고 특정 직무만 고집하는 것은 커리어 관리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장에서 주어지는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각 직무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을 쌓아 가는 게 효율적이다.

그렇게 장기적 관점에서 업무와 관련된 전문성을 키워야 다양한 직무 능력을 함께 갖출 수 있다. 직장에서 전문성은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요소의 하나일 뿐이다. 일반적 업무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를 잘 내기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과다. 전문성도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된다. 따라서 직장이나 직책을 선택할 때 전문성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연봉이나 직급은 모두 성과에 뒤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업들이 어떤 사람을 채용하고 승진시키고 전보하는 것도 모두 성과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만약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했는데도 입사에 실패하고 승진이 좌절되고 원하는 직책을 맡지 못했다면 자신의 성과 창출 능력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성과 창출 능력을 개선하고 경영진이나 상사, 또는 면접관이 이를 믿도록 한다면 자연스럽게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기업마다 직책과 직무마다 성과에 대한 개념과 평가 기준이 다르다는 점이다. 따라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자신이 속한 조직이 어떤 성과를 추구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성과를 조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조직이 성과를 몰라서가 아니다. 그들이 만드는 성과가 조직이 원하는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과 무관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성과에 주력한 뒤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답답한’ 직장인들이 의외로 많다.

[일러스트 김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