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트렌드]
협상력은 ‘배트나’에 좌우…이익보다 손해를 강조하라
‘대안’이 있어야 협상에서 이긴다
[한경비즈니스=김한솔 휴먼솔루션그룹 수석연구원] 비즈니스 세계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뭔가를 ‘파는’ 사람과 그걸 ‘사는’ 사람이다. 최대한 많이 팔려는 사람과 가능한 한 유리한 조건으로 사려는 사람 간의 끊임없는 머리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가끔, 허망한 말이 들릴 때가 있다.
“그냥,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다. 모든 행동을 명료하게 설명하기 힘들 때가 많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갖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냥’ 싫을 수도 있다. 이는 냉정한 ‘계산’이 오간다고 하는 비즈니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많은 것은 ‘마음’의 문제다. 상대가 어떤 마음 상태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나의 제안이 먹힐 수도 있고 묻혀 버릴 수도 있다. 내 제안에 상대가 ‘예스(yes)’를 말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알아보자.

◆부동산 중개인의 ‘티 나지 않는’ 거짓말

몇 달을 고민하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여기보다 더 좋은 집을 얻을 자신이 없다. 한 번만 더 둘러보고 부동산 중개인과 가격 할인을 위한 협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집을 둘러보던 차에 부동산 중개인의 전화가 울린다.

“아 네 사장님! 2210호요? 지금 바로 오신다고요? 지금 다른 분과 얘기 중인데, 잠시만 있다가 다시 전화 드릴게요.”

끊어진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부동산 중개인을 본 당신. 가격 할인은 이미 머릿속 깊이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성급히 외친다.
“저 여기 지금 계약할게요!”

부동산 중개인이 가장 많이 하는 ‘티 나지 않는’ 거짓말이 있다.
“이 집, 벌써 몇 분이나 보고 가셨는지 몰라요.”

중개인 스스로가 ‘나는 많은 대안이 있으니 빨리 선택하지 않으면 계약하기 힘들 수 있다’는 암묵적 사인을 보내는 것이다.

이를 협상학에선 ‘배트나(BATNA :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협상 결렬 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라고 말한다. 협상력은 누가 좋은 배트나를 가졌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배트나가 없다는 것은 자기 앞의 상대 외의 대안이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결국 심리적으로 ‘쫓기는 입장’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제안을 좀 더 논리적으로 비교해 볼 힘도 사라진다.

그래서 협상에서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서는 내 눈 앞의 상대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상대와의 협상이 결렬됐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앞에서 부동산 중개인이 ‘또 다른 사장님’을 언급하는 것처럼…. 하지만 현실의 협상에서 이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래서 필요한 방식이 ‘상대의 배트나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내 배트나가 아닌 상대의 배트나를 이용한다? 간단히 말하면 상대가 ‘나 말고 다른 곳을 보지 못하게 하라’는 의미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세상엔 수많은 보험 설계사들이 있다. 하지만 ‘성공한’ 설계사는 많지 않다. 성공의 비결은 뭘까. 이들은 보험 상품이 아닌 ‘관계’를 파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상품에 대한 혜택이 아닌 본인이 맡고 있는 고객 개개인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보험 외적인 것에 대해서도 전문가 수준의 조언을 해 준다.

이렇게 되면 그 설계사는 더 이상 ‘보험 파는 사람’이 아니다. ‘재무 설계 담당자’가 될 수도 있고 ‘노후 계획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면 고객이 다른 설계사로 ‘갈아탈’ 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결국 대안, 즉 배트나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협상 상대를 설득하고 싶은가. 그러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혹은 우리 회사와 계약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설명하라.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그게 협상의 시작이다.

‘나만이’ 줄 수 있는 혜택을 찾았다면 최대한 매력적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이익’을 좋아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손해’는 싫어한다. 하지만 여기에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이익과 손해에 대한 가중치다. 둘 중에 뭐가 더 강할까. 내 것을 뺏기기 싫은 욕구가 훨씬 더 강하다.
‘대안’이 있어야 협상에서 이긴다
◆얻은 2만원보다 잃은 3만원이 중요

이를 증명한 재미난 실험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2만원을 선물로 준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말한다. “지금 받은 2만원을 걸고 확률 50%의 게임을 하시죠? 게임에서 이기면 3만원을 더 드리겠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로 생긴 2만원에 행복해 하며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자 상황을 바꿨다. 이번엔 2만원이 아닌 ‘5만원’을 한꺼번에 손에 직접 쥐여 준다. 공짜로 생긴 5만원에 행복해 하는 찰나, 5만원 중에 3만원은 다시 돌려달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처음 갖고 있었던 3만원을 되찾으시려면 2만원을 걸고 확률 50%의 게임을 하셔야 합니다.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임에 참여했다. ‘잠시’ 자기 손에 들어왔다가 ‘사라진 3만원’에 대한 고통 때문에 게임을 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이익보다 오히려 손해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선 손실 회피 심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행동경제학자들이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이익을 봤을 때보다 손해를 봤을 때 느끼는 ‘부정적’ 강도가 2~2.5배 정도 크다고 한다. 쉽게 말해 ‘10만원짜리 벌금 고지서’를 받았을 때 그로 인한 짜증을 해결하려면 최소한 20만원 이상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면 이를 비즈니스 협상에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상대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잃게 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안하는 법’이 중요하다.

내 제안대로 이뤄졌을 때 상대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충분히 어필하는 게 시작이다. 물건을 팔아야 하는 이라면 그 물건을 사용해 편리해질 수 있는 걸 보여줘야 한다. 단, 그것이 상대가 중요시하는 영역과 연관돼 있어야 한다.

‘품질’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상대에게 ‘납기를 빨리 해 줄 수 있다’와 같은 혜택은 별 영양가가 없다. 오히려 ‘무상 애프터서비스 기간 연장’ 같은 게 매력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이런 혜택을 ‘실제로 누린다’고 느끼게끔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앞의 실험에서 5만원을 ‘손에 직접’ 쥐여준 것처럼…. 비록 내가 얻은 게 ‘실제로’ 내 것이 아니더라도 내 것이라는 착각만 갖게 해줘도 뺏기기 싫은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내 제안으로 ‘핑크빛 기대’를 품게 한 다음 내 제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상대가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원하는 대로 비용이 싸지는 대신 잃게 되는 것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그러면 상대는 ‘아까 봤던 최고의 상황’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워하게 되고 그걸 되찾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될 것이다.

선물을 할 때 우리는 정성을 담아 포장한다. 협상에서의 제안도 마찬가지다. 매력적인 제안을 어떤 포장에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

◆‘논리’ 보다 ‘감성’이다

상대의 배트나를 무력화하고 손실 회피 심리를 활용해 내 제안에 대한 매력을 높였다면 이제 상대의 선택에 ‘확신’을 줘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선택한 것이 ‘옳은 것’임을 증명해 주라는 말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남들도 하니까’라는 생각에서 많은 걸 이해하는 존재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박람회 같은 곳에 가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부스를 발견하게 된다. ‘뭐 하기에 이렇게 줄을 서 있지’라는 생각에 묻는다.

“여기 뭐 하는 줄이에요?”
이때 가끔 황당한 답이 돌아온다.

“몰라요, 뭐 주나 봐요. 일단 서 있는 거예요.”
이렇게 사람들은 ‘남들’이 하면 왠지 모르게 그걸 믿게 된다. 많은 사람이 선택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협상에서도 이는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흔히 ‘레퍼런스’라고 말하는 것들을 얼마나 잘 제시할 수 있느냐가 상대의 선택에 ‘확신’을 높이는 방법이다.

생각해 보자. 구매를 결정하기 전 ‘이거 잘나가는 거죠?’라고 물었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만약 판매자가 ‘고객님 나이대분들이 제일 많이 찾는 상품이에요’라고 말해 준다면 나도 모르게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협상할 때 이성적 판단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생각해야 할 게 있다. 결국 모든 협상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라는 것이다. 그래서 논리적 사고 만큼이나 ‘마음’이 중요하다. 뭘 제안할지 고민하기 전에 상대가 어떤 마음을 갖게 할지 먼저 생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