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선승구전(先勝求戰)’은 전투의 진리…무모한 도전은 패배를 불러
성공하고 싶다면 ‘이기는 싸움’만 하라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이순신 장군의 전투 이야기는 접할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어떻게 23전 23승 기록을 세웠을까. 가지고 있는 전선도, 거느리고 있는 군사도, 식량도, 무기도 부족하기 그지없었는데 어떻게 싸울 때마다 이길 수 있었을까.

특히 명량해전에서의 승리는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투는 조선군이 가장 열세인 상황에서 벌어졌다. 당시 이순신 장군은 호위함 13척에 고속정 32척으로 바닷길의 요충지만 근근이 지키고 있었다.

앞서 벌어진 원균 주도의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완전히 궤멸됐는데 이때 겨우 도망친 12척이 이순신 장군의 핵심 전선이었다. 이에 비해 당시 왜군은 동원했던 전선만 133척에 이를 정도로 막강했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 비결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가 이길 가능성이 높은 전투를 했다는 점이다. 그는 조선수군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애를 썼다. 당시 조선수군은 왜군보다 기동력에서 앞서 있었고 함포 활용 능력도 뛰어났다.

특히 남해의 복잡한 지형지물을 잘 아는 것은 최대 강점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조선수군의 이런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소로 왜군을 끌어들여 전투를 벌였다. 지리적 조건을 이용해 수적 열세를 극복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이 같은 전략·전술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두 가지 전투의 원칙과 잘 맞아떨어진다. ‘지피지기(知彼知己)’와 ‘선승구전(先勝求戰)’이다.

전자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어떤 싸움을 해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고 후자는 ‘이기는 군대는 먼저 이길 조건을 만들어 놓고 전투를 한다’는 의미다. 잘 알려져 있고 누구나 수긍하는 말이지만 이것을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했던 이유는

‘손자병법’은 이기는 군대에 대해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든 뒤 전투를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이길 수 있는 구조를 짜서 사실상 승리를 확정해 놓고 그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반면 지는 군대는 일단 전투를 시작한 뒤 그때부터 승리하는 방법을 찾는다. ‘손자병법’의 관점에서 보면 이기는 군대의 승리는 드라마틱하지 않다. 당연한 것이고 예정된 것이다. 장수와 병사들은 계획한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승리는 저절로 따라온다.

따라서 유능한 장수는 전투 전에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짜고 형세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이순신 장군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왜군의 약점과 조선수군의 강점을 정확히 파악했고 그 약점과 강점이 최대한 드러날 수 있는 전투를 기획했다.

그는 전투를 벌이기 전에 승산을 높이려고 최선을 다했다. 조선수군의 전력이 워낙 약하다 보니 이길 수밖에 없는 전투까지 만들지는 못했더라도 이길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투의 구조를 짠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같은 이순신 장군의 지피지기와 선승구전은 직장인들의 직장 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직장은 군대가 아니고 직장 생활도 전투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이 그런 것처럼 직장 생활이나 커리어 관리에도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직장을 옮겼거나 직업 자체를 바꾸는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들에게 “하는 일은 잘 되느냐”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면 유보적인 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 이들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직은…”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이때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강행한 일이어서 실패를 자인하기 싫을 뿐이지 이미 실패로 판명 났다고 봐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이들의 이직과 전직을 만류한 것은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개 직장에서 일정한 평가를 받았다. 일 욕심이 있어 업무 성과가 좋은 편이었고 직장 내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본인은 늘 이런 평가를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노력이나 성취한 결과에 비해 회사의 평가가 미흡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자신이 갖고 있는 약점 때문이라고 믿었다. 학력이나 외국어 능력, 출신 배경, 인적 네트워크 같은 것들이 약해 자신의 노력과 성과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평가가 기대에 못 미치면 직장을 옮길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의 선택이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이직이나 전직 과정에서 ‘손자병법’이 강조하고 있는 지피지기나 선승구전의 원칙이 잘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우선 자신에 대한 평가가 주변 사람들에 비해 너무 높다. 자신의 업무 능력을 상당히 과신한다. 이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직무, 직책과 직급, 보상이 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이 이룬 성과의 상당 부분은 동료와 선후배의 몫이다.

회사의 브랜드나 시스템, 조직 구성원들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결과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성과의 대부분을 자기가 혼자 힘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 대한 조직의 평가가 너무 인색하다고 느낀다. 지피지기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콤플렉스에 정면으로 맞서는 전략을 취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약점이 도드라지는 곳에 뛰어들어 정면 승부하려고 한다. 헤드헌팅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종종 학력이 뒤지는 데도 명문대 석·박사 출신들이 즐비한 곳에서 경쟁하려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또 성형수술까지 해가며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 틈에서 입지를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도 만난다. 해외에서 오래 체류해 원어민 수준의 외국어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즐비한 집단에서 독학으로 습득한 외국어 능력으로 경쟁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선승구전의 원칙을 아예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평가해 줄 만하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자신이 내세우는 강점이 오히려 약점으로 부각되는 곳에서 그 약점을 강점 삼아 경쟁하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새 직장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먼저 확인하라

만약 이순신 장군이 전투력에 대한 자기도취에 빠져 육전에 능한 왜군과 육지에서 싸우려고 했다면 어찌 됐을까.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조선수군의 전투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육전에서 육군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술의 기본은 적의 약한 곳을 치는 것이고 전쟁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적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운, 어쩌면 이기는 게 불가능한 판에 뛰어들어 자신을 소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직장에서 자신의 업무 능력과 성과에 대한 조직 내 평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먼저 왜 그런 평가가 내려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신의 업무 능력이나 성과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지나치게 높거나 낮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평가가 왜곡되면 어떤 해법도 약효를 발휘하기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에 대한 조직의 평가가 부당하다면 물론 직장을 옮겨야 한다. 하지만 옮길 곳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강점이 제대로 발휘돼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자신의 강점이 평범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오히려 약점이 되는 곳이라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선택하면 안 된다. 당장은 직무와 직책, 직급과 보상이 마음에 들어도 성과를 잘 내지 못해 얼마 지나지 않아 퇴진 압력을 받게 된다.

이기는 군대는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든 뒤 전투를 시작하듯이 직장인들도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직장을 옮기고 직업을 바꿔야 한다. 이직과 전직을 결정하기 전에 구조를 짜고 형세부터 만들어야 한다.

치밀한 사전 조사와 반복적 연습을 통해 옮겨 간 직장과 바꿔 탄 직업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 파악하고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한다. 일단 옮기거나 바꾼 뒤 그다음 살길을 도모한다면 패배가 예정된 전투를 하는 셈이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은 못해도 질 게 뻔한 싸움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속이 터질지라도 ‘때’를 기다려야

이 과정에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시기다. 조건은 내가 노력한다고 다 갖춰지는 게 아니다.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면 기다려야 한다.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조조에게 쫓기던 유비와 제갈공명은 30만 대군의 조조와 맞설 곳으로 장강의 적벽을 선택했다.

이곳에서 조조 군대를 불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손권과 동맹을 성사시키는 등 전투 준비도 철저히 했다. 그런 뒤에도 그들은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까지 공격을 미뤘다.

이순신 장군도 전투할 때 조건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조선해군이 대승한 한산도해전이나 명량해전에서 그는 바다의 물때가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격을 시작했다. 중국의 덩샤오핑 역시 때를 기다릴 줄 알았다.

그는 문화혁명으로 형세가 불리해지자 칠순에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시골로 내려가 3년간 트랙터 수리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자 중앙 정치에 복귀했다. 그의 개혁·개방 정책은 트랙터 수리공으로 지낼 때 구상했던 것들이다.

‘손자병법’은 전투에서 지는 군대의 특징 중 하나로 개인적 분노를 못 이겨 급하게 재촉하는 것을 꼽는다.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는데도 감정 때문에 성급하게 전투를 시작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손자병법’은 형세가 불리하면 실력을 보존해 나중에 다시 싸울 길을 모색하라고 조언한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속이 터지고 화가 치밀고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도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몸을 숙이고 바람을 피해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 타고난 자신보다 월등히 앞서 있는 사람들과 ‘이길 수 없는 경쟁’을 하느라 자신을 소진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자세를 낮추고 역량을 기르다가 결정적 기회가 오면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다. 새 직장으로 옮기고 새 직업으로 갈아타기 전에 그곳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 조건’부터 만드는 게 먼저다.

속이 터지고 화가 치밀고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해도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면 몸을 숙이고 바람을 피해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 타고난 자신보다 월등히 앞서 있는 사람들과 ‘이길 수 없는 경쟁’을 하느라 자신을 소진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일러스트 = 김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