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에도 핵심은 ‘사람’… ‘업무 전문성’ 중요해져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금융 산업은 리스크 관리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금융사를 보면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정착시킨 은행은 생존했고 이를 경시한 은행은 파산하거나 다른 금융사에 인수됐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실패는 대부분이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한 데서 출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리스크 관리가 은행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융 산업의 운명을 좌우할 리스크 관리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계량 모형에 기반을 둔 리스크 관리로 커버할 수 없는 사각지대의 위험은 정성적 평가, 즉 사람의 의사결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봇 행원이 등장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인사는 만사’다.

한경비즈니스는 신한·KB국민·KEB하나·우리은행 등 시중은행 4곳과 IBK기업·NH농협은행 등 특수은행 2곳 등 6대 은행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 ‘리스크 컨트롤타워’를 집중 분석했다.

각 은행별 전사적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는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 6명과 신용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는 최고신용관리책임자(CCO) 6명 등 총 12명의 임원이 대상이다.
6대 은행 리스크 관리 컨트롤타워 ‘누구’
◆변화하는 국민 vs 안정 추구하는 신한

6개 은행의 CRO와 CCO 12인의 이력을 분석한 결과 임원 대부분이 리스크 관리와 신용 리스크 전문가로 구성됐다.

과거에는 여신심사역, 기업금융 전담역(RM) 등 관련 경력이 전무한 임원이 CRO, CCO 자리에 앉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직무 연관성이 보다 중시된 결과로 분석된다.

최근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곳은 KB국민은행(이하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3년 만에 KB금융지주와 분리 경영에 나서면서 지난 연말 임원 인사에서 리스크관리총괄 임원인 CRO의 지주사와 은행 겸직을 폐지했다.

동시에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리스크 부문과 여신 부문 모두 임원을 교체했다. ‘영업 일선’에서 일하던 지역 영업그룹 대표들을 CRO와 CCO 부문에 앉힌 것이 특징이다.

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대표에 오른 서남종 전무는 입행 후 주로 현장에서 활약한 ‘영업통’이자 ‘재무통’이다. 전북대 경제학을 나와 국민은행의 자금부장과 재무기획부장을 거쳤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수도권을 돌며 지점장을 역임했고 이후에는 전북지역영업그룹 대표, 중앙지역영업그룹 대표직을 지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실무형 인물로 현장에서의 경험을 리스크 부문에 녹여 낼 것으로 기대된다.

여신그룹 대표에 선임된 이계성 전무 역시 충북과 서초지역에서 영업그룹 대표를 역임한 ‘현장통’이다. 기업여신심사부에서 수석심사역과 부장을 지낸 여신 전문가로도 통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실무에 능통한 젊은 임원을 전면에 배치해 조직 내 활력을 불어넣고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은행과 1, 2위 다툼이 치열한 신한은행은 임원진의 큰 변화가 없었다. 리스크관리그룹을 총괄하는 조재희 상무는 관련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실무 출신 임원이다. 조 상무는 2006년부터 리스크관리부 팀장으로 3년여간 근무하고 2009년부터 리스크총괄 부장으로 2년간 일했다. 2014년 1월부터 전략기획부를 거쳐 2016년 1월 다시 리스크관리그룹에서 2년째 그룹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말 임기가 종료된 이기준 여신심사그룹장(부행장) 또한 연임에 성공하며 여신지원그룹을 다시 이끌게 됐다. 이 부행장은 은행 내 여신 전문가로 통하는 인물이다. 전략여신심사실 실장 겸 선임심사역을 거쳐 여신기획부장·여신지원본부장 등을 지냈다.

국민은행과 달리 은행의 리스크관리본부장이 금융지주의 CRO를 겸임하며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곳도 있다. 황효상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이 이끄는 KEB하나은행(이하 하나은행)이다.
6대 은행 리스크 관리 컨트롤타워 ‘누구’
◆시너지 꾀한 하나, 강자로 변한 우리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후 대기업 여신 비율이 경쟁 은행보다 크게 높아진 것이 약점으로 꼽혀 왔다.

이에 따라 황 부행장을 중심으로 전사적인 리스크 관리 노력을 기울여 경기 민감 업종 대기업의 여신을 줄이고 금융그룹의 전체적인 부실 여신 비율을 개선하는 등 자산 건전성을 강화했다.

황 부행장은 1983년 옛 외환은행에 입행해 여신심사부와 리스크관리 부서에서 12년 이상 근무한 리스크 관리 분야의 전문가다. 2015년 말부터 지금까지 리스크관리그룹장과 하나금융지주 그룹 리스크 총괄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전무에서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이번 임원 인사의 부행장 승진자 2명 가운데 1명이다.

하나은행의 여신 리스크 관리 부문에도 새로운 인물이 투입됐다. 여신그룹장인 박승오 전무는 하나은행의 채권관리팀과 지점장, 심사본부 개인여신심사부 등을 거쳤다. 또한 영업지원그룹 중앙영업본부와 기업영업그룹 기업사업본부에서 현장 실무 경험도 쌓았다.

우리은행은 최근 리스크 관리 부문의 새 강자가 됐다. 민영화 이전에는 정부가 대기업의 구조조정에 직접 관여하면서 부실 기업의 부채를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민영화 이후 체질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신용 평가사가 ‘3년 전 우리은행과 지금의 우리은행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렇게 바뀔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며 “이광구 전 행장 취임 이후 ‘뒷문 잠그기’를 통해 부실을 털어내는 전사적인 노력이 힘을 발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 리스크관리그룹에 자금시장그룹을 이끌던 이종인 상무를 낙점했다. 이 상무는 재무·인사·영업 등 은행 주요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물로 뛰어난 리스크 관리 능력을 보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신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수협은행장에 오른 이동빈 전 부행장의 뒤를 이어 여신지원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선규 부행장도 손꼽히는 ‘여신통’이다. 1979년 입행 후 중소기업과 대기업심사부의 심사역을 거쳤고 다년간의 지점장 생활로 현장에서의 실무 경험도 쌓았다.

◆여풍 부는 IBK, 전문성 강화한 NH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은 3월 기존 카드·신탁사업그룹을 이끌던 최현숙 부행장이 여신운영그룹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최 부행장은 6개 은행의 12명의 임원 중 유일한 여성이다.

2010년 학동역지점장을 거쳐 여신관리부장·신탁사업그룹장(부행장)을 역임하는 등 여신 부문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 왔다.

리스크관리그룹은 지난해 7월 선임된 강남희 부행장이 이끌고 있다. 강 부행장은 이리상고를 졸업한 후 1979년 입행해 38년간 기업은행의 지점장·검사부장·지역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그룹장에 오른 인물이다.

NH농협은행(이하 농협은행)은 2016년만 해도 경험이 전무한 임원이 은행 리스크 관리 총괄을 맡아 논란이 일었지만 최근에는 직무 중심의 인선으로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허충회 리스크관리부문장(부행장)은 농협금융지주에서 리스크관리부장을 지낸 리스크 전문가다. 전북대 회계학을 졸업해 지점장, 보험기획부 단장을 거쳐 경영기획본부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능력과 전문성, 성과 우선주의 원칙에 따라 변화와 혁신을 이끌 적임자를 선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허 부행장은 선임 후 얼마 안 돼 리스크관리부문 임직원 100여 명을 초대해 사업 추진 결의 대회를 여는 등 리스크 관리 부문을 강화하기 위한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철홍 농협은행 여신심사·기업구조개선부문장(부행장)은 1986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해 지점장·리스크관리부장·신용감리부장·여신감리부장 등을 두루 거친 여신 및 리스크 관리 전문가다.

여신 심사 기업 구조 개선 부문의 손익 목표 달성과 윤리 경영을 선도할 핵심 인물이라는 게 농협은행 측의 설명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