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문명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사고력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 등 다섯 가지 감각 역시 주변 환경을 인지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만일 이러한 오감 기능이 없다면 우리의 사고력 역시 매우 불완전할 것이다.
오감에 대한 연구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각과 청각이다. 사실 시각과 청각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비중이 가장 높기 때문에 이들 감각을 모방하려는 연구 활동이 일찍부터 이뤄졌다. 반면 그 외의 감각에 대해서는 뚜렷한 진전을 이루기 어려웠는데, 특히 냄새를 맡는 후각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저조했다. 인간이 두 발로 걸어 다니게 되면서 시각과 청각에 대한 의존이 크게 증가한 반면 후각의 역할은 축소됐고 그 수준도 다른 동물에 비해 크게 퇴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후각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시각과 청각을 사용하기 어려울 때 상황 인지 및 판단의 상당 부분을 후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냄새를 통해 음식의 종류나 부패 여부를 알 수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존재 여부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한편으로는 후각과 정서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냄새를 이용한 심리 안정 및 정서 치료 등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상황 인지 및 판단 상당 부분 후각에 의존
오늘날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후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후각의 신비를 연구하는 한편 이를 식품·미용·보건 등 여러 분야에 응용하기 위한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냄새를 활용한 상품성 강화 및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의 통신 기업 NTT는 향기를 전송할 수 있는 통신 시스템을 연구하는 등 후각의 가치가 빠르게 강조되고 있는 추세다.
후각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한 기술 개발 역시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후각이 과학으로 구현하기 매우 어려운 분야로 분류돼 왔다. 공기 중의 냄새를 효과적으로 수집하고 정확히 구별하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냄새의 종류는 수만 가지가 넘고 시간에 따른 변화도 크기 때문에 그동안 후각에 대한 연구는 다른 감각에 비해 발전이 더딘 수준이었다.
인간이 인지하는 냄새는 특정 개체로부터 발산되는 휘발성 물질이다. 이 물질이 공기와 섞여 코 안으로 유입되면 점막에 있는 후각상피세포를 자극하게 된다. 후각상피세포 안에는 각 냄새 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후각 수용체가 있는데, 여기에서 냄새에 대한 정보를 신호로 만들어 신경계를 통해 두뇌로 전달한다. 두뇌가 이 신호를 수신하고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을 되살리면서 우리는 냄새를 유발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지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냄새의 화학적 성분 탐지하는 장치가 전자코
냄새의 화학적 성분을 탐지하고 분석하는 장치가 바로 전자코(Electric Nose)다. 사실 전자코의 개념은 1980년대에 소개됐지만 이후 199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인간의 후각 기능을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는 전자코가 개발됐다. 특히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자코는 정보기술(IT) 및 바이오기술(BT) 등 각종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전자코는 사람의 후각과 원리가 유사하다. 인간이 코로 냄새를 맡고 그 정보를 두뇌로 전달하듯이 전자코도 전자 장치를 사용해 냄새를 구성하는 휘발성 물질을 수집하고 분석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중앙 시스템으로 전달해 냄새의 종류·농도·특징 등을 식별할 수 있는 것이다.
전자코는 사람처럼 냄새를 식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코를 능가하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특정 냄새를 오래 맡게 되면 그 냄새에 익숙해져 다른 냄새를 맡기 어려운데, 전자코는 이런 문제점이 없기 때문에 장시간에 걸쳐 정확하게 냄새를 분석할 수 있다. 또한 정교하게 구현된 전자코는 사람들이 분간하기 어려운 극소량의 냄새 물질까지도 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전자코는 인체에 해로운 물질이나 마약 등을 탐지하거나 음식 및 화장품 등 여러 물질의 특성 및 부패 여부를 감별하는 등 그 응용 범위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는 특수 목적의 전자코를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 미국의 IT 기업 노마딕스는 화약물질의 냄새를 파악해 지뢰를 탐지할 수 있는 전자코를 개발했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정거장에서 장기간 거주하는 승무원들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우주선 실내 공기 중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감지할 수 있는 전자코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2006년 영국의 맨체스터대 연구진은 쓰레기 매립장과 폐수 처리 시설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를 원격으로 관찰하고 이상 여부를 알려줄 수 있는 전자코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공기 중에 배출되는 가스를 분석하고 관련 정보를 원격지에 있는 컴퓨터로 전송함으로써 해당 지역 공기의 위험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최근에는 사람의 호흡에서 배출되는 냄새를 통해 각종 질병 여부도 알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전자코의 의학적 활용 역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보통 정확한 질병을 알기 위해서는 엑스레이와 핵자기공명장치(MRI), 생체 조직 검사 등 복잡한 진료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환자가 호흡하는 과정에서는 해당 질병과 연관된 냄새도 함께 배출되므로 환자의 호흡을 전자코를 사용해 분석한다면 기존 방법보다 쉽고 간편하게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 현재 스위스의 로잔 공대 등 선진국 주요 대학들은 후두암이나 구강암 등 환자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전자코 기술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후각을 모방하는 전자코 기술
반도체 기술 적용…정교한 센서가 관건
여러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전자코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난관이 적지 않다. 현재 등장하고 있는 전자코는 대부분이 특정 물질만 감지할 수 있을 뿐 사람의 후각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어렵다. 게다가 아직은 가격이 비싸 사람들이 전자코를 부담 없이 사용하기도 쉽지 않다.
전자코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냄새 물질을 효과적으로 탐지할 수 있는 정교한 성능의 센서를 만드는 것이다. 아주 경미한 양이라도 정확히 분석해 어떤 종류의 냄새인지 찾을 수 있는 센서의 탑재가 전자코의 성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출시해 대중성을 갖추는 것 또한 전자코 저변 확대의 중요 과제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전자코 활용이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자코 센서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실리콘 대신 그래핀과 같은 우수한 성능의 소재를 사용하거나 부품을 보다 정밀하게 만들 수 있는 미세전자기계(MEMS) 기술 등 첨단 반도체 기술을 적용해 전자코 성능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또한 후각 수용체를 이루는 단백질 세포를 사용해 인간에 버금가는 수준을 지닌 바이오 전자코도 연구되는 등 미래의 전자코는 점차 인간 수준에 근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코의 가격 역시 한층 저렴해지고 있다. 영국의 벤처기업 ARS 랩이 선보인 페레스(Peres)라는 제품은 온도와 습도는 물론 암모니아와 휘발성 물질의 함량을 측정하는 센서를 통해 식재료가 부패했는지를 쉽게 감별할 수 있다. 무엇보다 페레스는 120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출시돼 전자코가 낯선 일반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한 전자코는 모바일 및 사물인터넷과 접목돼 적용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소형화된 전자코가 스마트폰은 물론 스마트 워치 등 각종 웨어러블 기기에 접목된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냄새를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 탐지 및 건강, 의료 등 일상생활의 다양한 분야에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자코를 장착한 로봇이 등장한다면 재해 현장 등 인간의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 위험 물질을 탐지하고 필요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 전자코 시장은 초기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 IBM이 5년 내 후각 기능을 컴퓨터에 넣을 수 있다고 예상하는 등 전자코의 중요성은 향후 더욱 강조될 것으로 전망되며 관련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 역시 핵심 기술 개발 및 저변 확대를 통해 미래 전자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