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내용 충실하지 않으면 좋은 형식도 무용지물}
형식과 내용 구분 짓는 관성 버려야 할 때
(일러스트 김호식)

[한경비즈니스=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형식이란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사물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일할 때의 일정한 절차나 형식 또는 한 무리의 사물을 특징짓는 데 공통적으로 갖춘 모양’을 의미한다.

◆죽음까지 부른 형식의 경직성

문제는 ‘형식을 위한 형식’일 때다. 형식은 하나의 규범이나 제도로 규정되기 쉽다. 일단 그렇게 정해지면 형식은 여간해서 변화하지 않는다. 형식은 분명 그 자체로 내용을 가장 합리적으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내용이 변하고 상황과 조건이 바뀌는데도 여전히 이전의 형식만 고수하고 집착한다면 그것은 퇴행되기 쉽다.

예를 들어 조선의 이념과 생활을 지배했던 성리학은 지나치게 형식주의에 빠져 당면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쟁과 갈등을 일으키고 심지어 사화와 당쟁으로 이어질 때도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제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조선시대를 장악했던 ‘주자가례(朱子家禮)’는 관혼상제(冠婚喪祭) 등 네 가지 기본 예법에 관한 제도를 다루고 있고 주자학이 국가 정교의 기본 강령으로 확립됐기 때문에 그것을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요구됐다.

처음에는 왕가와 사대부 가문에서 따르던 것이 나중에는 일반 서민에게까지 보편화됐다. 이 책은 주자가 유가(儒家)의 예법의장(禮法儀章)에 관해 상술한 책인데, 문제는 그것이 송나라 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남송(南宋)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송대의 가례가 조선의 현실과 완전히 맞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주자학과 ‘주자가례’의 예법과 형식의 엄격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 그래서 예송(禮訟)의 문제가 빈번히 야기됐다.

대표적인 것이 현종 즉위년(1959년)의 ‘기해예송’과 현종 15년(1674년)의 ‘갑인예송’이었다. 효종이 죽었을 때 그의 계모후인 장열왕후가 어떤 상복을 입을지, 효종비 인선왕후가 죽자 장열왕후가 어떤 상복을 입을지 다퉜고 죽음을 초래하는 사화로 이어졌다.

그만큼 조선에서 성리학, 특히 주자학이 초래한 형식의 경직성은 과도했다. 실제로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있을 만큼 예법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법이고 그 정도의 융통성은 인정됐지만 형식주의가 강화되면 그마저도 트집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엄격한 형식성은 결국 조선이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마비시켰다. 물론 이러한 예법과 규범이 예와 효를 중시하는 한국의 가족제도와 문화를 발달시킨 점은 있지만 그 허물이 공보다 크지 않을까 싶다.

노자는 기존의 형식뿐만 아니라 관념까지도 불필요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노자는 공자의 태도가 자신의 틀 속에 갇힌 부자유한 것일 뿐이라고 통박한다. 그것은 경직된 것이고 따라서 배움과 실천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자유를 제약하거나 속박한다는 것이다. 도(道)는 학습으로 얻어지거나 수련으로 담기는 것이 아니라 ‘꾸밈이 없는 사물과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형식주의적 태도 거부한 ‘노자’

이렇듯이 노자가 ‘본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는 철저하게 형식주의적 태도를 거부한다. 실제로 유가가 교의적(敎義的)으로 흐르는 것은 그것이 정치와 사회적 이념으로 작동된 까닭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형식주의적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노장사상은 그러한 교의적 함몰을 경계하고 형식주의를 거부한다.

하지만 내용이 형식보다 우선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식을 뛰어넘는, 즉 기존의 형식으로 담아낼 수 없는 내용을 창출해야만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자기 충실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형식의 거부는 결국 내용이 산만하고 통제되지 않으며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바탕을 상실하는 것이다.

형식은 제약적 틀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체계화라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내용을 끊임없이 만들어 낼 때만 내용 우선주의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될 것이다.

사실 형식과 내용은 상호 모순이나 갈등의 요인이 아니다. 둘은 서로를 자극하고 변증법적으로 진보할 수 있는 독립적 요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식과 내용을 그릇과 내용물로 대비하는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그릇과 내용물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서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지만 형식과 내용은 상호 필요 충분적인 관계를 맺으며 넘나들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항구조 혹은 대립구조로만 형식과 내용을 구분 짓는 관성을 버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