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트렌드]
카메라·센서 등 탑재하고 질병 부위에 직접 접근…부작용 적고 질병 모니터링도
당신의 건강을 지키는 초소형 알약 ‘스마트 필’
(사진)이스라엘의 기븐이미징에서 개발한 의료용 캡슐 내시경 필캠SB2(pillcam SB2)는 복용식 카메라로 환자에게 아무런 아픔도 주지 않고 소장 내부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소화기관의 모습을 컬러로 보여준다. /기븐 이메이징 제공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오늘날 글로벌 의학 산업의 화두는 바로 정보기술(IT)과 의학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디지털 헬스 케어다. 여러 의학 분야에서 각종 IT를 접목해 질병 치료 수준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관련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헬스 케어를 실현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스마트 필(Smart Pill)이 의학 산업의 새로운 혁신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스마트 필은 마이크로프로세서·센서·반도체 등 각종 전자장치가 내장된 초소형 알약으로, 인체 내부에 쉽게 투입될 수 있는 기기다. 몸속에 투입된 스마트 필은 특정 지점에 치료약을 투여하거나 신체 부위의 질병 발생 여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스마트 필은 기존 치료법으로는 실행이 어려웠던 기능들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먹거나 주사를 통해 약을 투입하는 것은 질병이 없는 부위까지 약의 성분이 전달되므로 각종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하지만 스마트 필은 질병이 발생한 부위에 직접 접근해 약물을 주입하기 때문에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스마트 필이 신체 내부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각 부위의 질병 발생 징후를 포착하고 의료진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다면 치료가 어려운 병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안전한 전기 공급 난제 해결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동시에 합병증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약을 만드는 것은 모든 제약 기업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입·피부·혈관 등을 통해 주입되는 약은 환자의 고통을 유발하는 증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하나의 약이 시중에 유통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개발(R&D) 및 임상 시험이 이뤄져야 한다. 만약 스마트 필을 사용해 특정 자리에 약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면 복용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신약을 실제 제품으로 출시하기까지의 시간과 노력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스마트 필이 미래 의학 산업의 혁신 기술로 기대를 모으면서 시장 규모 역시 지속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시장조사 기관 마켓스앤드마켓스는 전 세계 스마트 필 시장이 2014년 15억6000만 달러에서 2024년 89억8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간 스마트 필 개발에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됐던 것은 전기를 공급하는 배터리 및 회로의 안전성 문제였다. 체내에 흡수된 배터리와 회로가 작동하면서 예기하지 못한 자극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부품들이 부식되거나 분해됐을 때 인체 외부로 배출되지 않는 유해 물질로 남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고안된 스마트 필이 도리어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

스마트 필을 매우 작게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스마트 필을 쉽게 복용하고 인체 내부에서 자유롭게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각 부품들을 미세한 수준으로 구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스마트 필의 개념이 막 등장할 당시 기술로는 카메라·센서·안테나·약물 수송 등 스마트 필에 필요한 기능들을 세밀하게 집약해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 필 제작을 위한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상상 속에 그려졌던 스마트 필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매우 작은 크기로 기계 및 전자장치를 제작할 수 있는 멤스(MEMS : 미세전자제어기술)의 등장은 스마트 필 개발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또한 오늘날 IT 산업의 핵심으로 부상한 마이크로프로세서·센서·네트워크 등 사물인터넷(IoT) 역시 효과적으로 동작하는 스마트 필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체내에 안전하게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 역시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 크리스토퍼 베틴저 카네기멜론대 교수는 2013년 인체의 수분에 포함된 칼슘·철·나트륨 등 각종 미네랄 이온을 배터리 전해질로 사용해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을 발표했다.

또한 존 로저스 일리노이대 교수는 2014년 인체 내에서 자연 분해될 수 있는 배터리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당신의 건강을 지키는 초소형 알약 ‘스마트 필’
(사진)실리콘밸리의 제약 벤처기업 프로테우스 디지털헬스(Proteus Digital Health)는 의료진에게 환자의 약 복용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스마트 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로테우스 디지털헬스

◆FDA, 미 벤처기업 제품 판매 승인

이런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현재 많은 기업들이 독창적인 기술을 앞세워 스마트 필 연구·개발에 나서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제약 벤처기업 프로테우스디지털헬스는 의료진에게 환자의 약 복용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스마트 필을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프로테우스디지털헬스는 해마다 환자가 약을 적절히 복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의료사고가 적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기존의 먹는 약에 부착할 수 있는 프로테우스디지털헬스의 스마트 필은 지름 1mm 크기의 초소형 센서를 포함하고 있다. 이 센서는 환자의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과 반응해 미세한 전류를 만드는데, 이 전류가 환자의 신체에 부착돼 있는 신호 감지용 패치에 전송된다.

이 패치는 수신된 정보를 환자 및 의료진의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시스템 등에 전송해 환자의 약 복용 여부와 시간 등의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이 제품은 무기질로 구성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소화되므로 인체에 해를 주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미국식품의약국(FDA) 역시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시중 판매를 승인했다.

글로벌 제약 기업들도 스마트 필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바티스는 스마트 필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 라니테라퓨틱스와 전략적 제휴, 스마트 필을 사용해 약물을 인체 내부의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전달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구글 등 여러 기업들의 투자와 후원을 받고 있는 라니테라퓨틱스는 각종 치료제를 싣고 나를 수 있고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흡수될 수 있는 초소형 스마트 필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래 스마트 필 기술은 질병 연구 및 치료 방법의 고도화 등 의학 산업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내시경이 보편화되면서 위와 대장 등 특정 신체 기관을 자세하게 검사할 수 있게 됐지만 내시경을 사용하기 어려운 대부분의 신체 기관은 질병 발생 및 진행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IT·BT·NT 결합되는 융합 기술

스마트 필의 개발과 적용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의학과 각종 IT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술은 물론 바이오(BT)·나노(NT) 등 다양한 기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스마트 필 기술은 의학을 넘어 많은 산업에 걸쳐 큰 파급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구글과 오라클 등 디지털 헬스 케어 산업에 관심을 보이는 많은 기업들이 스마트 필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연구·개발 및 관련 기업과의 협력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글의 미래 신기술을 연구하는 조직인 구글 X(Google X)는 2014년 나노 입자를 몸속에 투여해 암을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박테리아보다 훨씬 작은 나노 입자는 특정 암세포와 결합하면 자기장을 띠게 되는데, 이러한 나노 입자들을 손목의 혈관에 모아 스마트워치 등 환자가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에서 자기장을 감지해 암 발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는 완전한 형태의 스마트 필은 아니지만 암과 같이 조기 발견이 어려운 질환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스마트 필 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스마트 필이 인간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기기라는 점에서 복용의 안전성을 입증하기까지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스마트 필의 복용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 및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 등도 스마트 필이 극복해야 할 난제로 손꼽힌다.

상용화를 위한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국·유럽·일본 등 다수 국가 및 글로벌 기업들은 스마트 필을 미래 핵심 기술로 선정하고 시장 선점을 위한 활발한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을 통해 스마트 필이 성공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숱한 질병과 싸워 온 인류의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