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CPU 한계 보완 위해 등장…‘AI 퍼스트 시대’ 맞아 IT 기업 최고 격전지로 부상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미국 샌호세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5월 10일 열린 ‘GPU 테크놀로지 콘퍼런스 2017’에서 기조연설하고 있다. 이 회사는 AI를 지원하는 GPU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엔디비아

[한경비즈니스=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글로벌 정보기술(IT) 산업 트렌드를 이끄는 인터넷 기업 구글은 매년 자사가 개발하는 신기술을 발표하는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Google IO)를 개최한다.

구글은 이 자리에서 구글의 미래 전략을 발표하기 때문에 전 세계 IT업계가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의 주요 키워드는 인공지능(AI)이었다. 기조 강연에 나선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IT 산업이 모바일 퍼스트에서 AI 퍼스트로 전환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구글 역시 AI를 중심으로 새롭게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글은 스마트폰 카메라와 AI를 접목한 ‘구글 렌즈’를 비롯해 다양한 AI 관련 기술을 선보여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AI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기업은 구글뿐만이 아니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아마존 등 IT 산업 패러다임을 이끄는 기업에서부터 새롭게 등장한 스타트업까지 하나같이 AI 기술 확보와 비즈니스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AI의 적용 분야도 제조업은 물론 서비스업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AI를 둘러싼 기업들의 기술 및 인재 확보 경쟁은 향후에도 IT 산업의 주요 이슈로 자리할 전망이다.

◆AI 핵심 반도체로 부상한 GPU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이 중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향후 AI 시대에는 GPU가 가장 핵심적인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GPU 기술과 이를 활용한 AI 구현이 업계의 큰 화두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GPU는 원래 게임이나 영화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그래픽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됐다. 등장 초기에는 범용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중앙처리장치(CPU)에 가려 그다지 큰 빛을 보지 못했다. 소프트웨어의 사양이 그리 높지 않았던 1990년대에는 CPU만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GPU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멀티미디어 콘텐츠 수준이 향상되면서 CPU만으로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워졌고 CPU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GPU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됐다.

그래픽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지원하기 위한 GPU 수준도 꾸준히 성장했다. 특히 2000년대부터 사무용으로만 활용된 PC가 멀티미디어 기기로 자리매김하자 우수한 성능을 갖춘 GPU를 찾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더군다나 3차원(D)과 가상현실(VR) 등 새로운 기술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GPU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각종 기기의 필수 반도체로 자리했다.

그래픽 데이터의 고속 처리에 특화된 GPU가 AI 시대에 각광받게 된 이유는 수많은 계산을 병렬적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GPU의 기본적인 원리는 많은 계산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간단한 종류의 계산을 처리할 수 있는 코어를 수백, 수천 개 이상 장착한 GPU는 복잡한 연산을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CPU와 달리 그래픽이 중요한 게임과 동영상 등의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구동할 수 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AI 알고리즘으로 각광받는 딥러닝(deep learning)을 빠른 속도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래픽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연산을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 반도체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GPU는 CPU보다 수월하게 딥러닝을 지원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향후 AI 수준이 발전할수록 GPU가 더욱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그래픽처리장치(GPU)’
(사진) GPU(왼쪽)와 CPU

◆자율주행·번역 등 최신 기술에 쓰여

인간의 판단과 조작이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에서도 GPU의 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차에서는 센서·카메라·레이더 등 각종 기기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주행 방법을 결정하는 딥러닝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구동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자율주행을 위한 센싱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처리하는 고성능 GPU가 자동차에 탑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 자동차 기업 테슬라는 GPU를 활용해 오토 파일럿 등 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이고 있고 다른 자동차 기업들도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해 최신 GPU 기술 확보에 뛰어들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GPU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GPU 선두 기업 엔비디아의 가치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1993년 엔비디아를 설립한 젠슨 황(황런쉰)은 향후 PC로 각종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GPU를 출시했다. 이런 그의 예상처럼 GPU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독보적인 GPU 기술을 가진 엔비디아는 글로벌 IT 산업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엔비디아는 AI를 지원할 수 있는 GPU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전부터 엔비디아는 GPU의 성능이 발전하면서 멀티미디어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 GPU 사용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했다. 엔비디아는 GPU를 사용해 그래픽 처리 대신 여러 유형의 프로그램을 처리할 수 있는 일반 목적용 GPU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기술인 쿠다(CUDA)를 선보였다.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그래픽처리장치(GPU)’
AI를 위한 기반 기술 역량을 축적한 엔비디아는 자율주행차용 반도체 플랫폼 드라이브 PX는 물론 차세대 AI 지원 GPU 몰타를 선보이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거듭하고 있다.

GPU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다른 IT 기업들도 GPU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AI를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는 물론 반도체 등 하드웨어 기술 역량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AI를 기반으로 자사 제품의 기능 강화와 신규 비즈니스 발굴 등 여러 목적을 추진하기 위해 GPU 기술 역량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는 애플은 GPU를 독자적으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는 GPU 설계 기업 이매지네이션에 의존해 왔지만 최근 애플은 자체적으로 GPU를 개발해 자사 제품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강현실(AR)은 물론 자율주행차 등 첨단 기술에 주목하고 있는 애플은 이를 위한 GPU 역량 확보에 한층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추측된다.

글로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기업 페이스북 또한 GPU를 활용한 AI 서버 빅베이슨(Big Basin)을 공개했다. 이 회사는 얼굴 인식과 실시간 번역 등 AI가 적용되는 서비스 제공에 주력하며 GPU의 역할을 확대한 전용 서버를 자체 개발했다.

아마존과 IBM 등 다른 서비스 기업들도 AI 서비스를 위한 GPU 활용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IT 산업의 핵심 이슈로 부상

AI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AI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제는 IT 산업을 넘어 제조·금융·유통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AI가 기업의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AI 관련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면서 AI를 자사 비즈니스에 접목하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업종과 분야를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AI 시대의 가장 중요한 반도체로 부상하는 GPU 시장을 둘러싼 움직임은 향후 IT 산업의 변화를 전망하는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AI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필수 기술로 GPU가 부각되면서 기존 반도체 기업은 물론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기업까지 GPU 관련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GPU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기술 고도화를 기반으로 AI 전용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구글은 이전까지 수많은 CPU와 GPU가 장착된 데이터센터에서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수행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알파고를 더욱 빠르고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AI 전용 반도체 텐서프로세서유닛(TPU)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AI 시대를 선점하기 위한 다양한 기업들의 새로운 기술 개발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 전략은 미래 글로벌 경제의 큰 이슈로 자리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AI를 위한 GPU 등 새로운 반도체 트렌드의 부상은 한국의 IT 기업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따라서 GPU를 비롯해 미래 AI 구현을 위한 새로운 반도체 기술 트렌드 점검 및 이를 위한 다각적 전략 마련이 기업들의 더욱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