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휴머노이드 시대, 불붙기 시작한 로봇윤리 논쟁
"복사기를 발로 차면 '로봇윤리'에 어긋날까"
(사진) 1999년 개봉된 영화 ‘오피스 스페이스’에서 남자 주인공 피터와 그의 친구들이 팩시밀리를 발로 차고 야구방망이로 부수고 있다. /영화 ‘오피스 스페이스’

[한경비즈니스=정동훈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 장면 하나.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는 남자 주인공 피터. 사무실은 늘 답답하다. 게다가 툭하면 고장 나는 팩시밀리까지…. “이놈의 기계마저 나를 짜증나게 하다니….”

결국 직장 동료 두 명과 함께 퇴사하는 피터. 마지막 날 그들은 그동안 잦은 고장으로 짜증을 불러일으켰던 팩시밀리 한 대를 갖고 나온다.

장면이 바뀌어 넓은 벌판. 팩시밀리가 내동댕이쳐진다. 마치 갱스터의 모습을 한 이들은 팩시밀리를 발로 차고 야구방망이로 마구 부순다.

심지어 사람의 얼굴을 치듯이 팩시밀리를 주먹으로 후려치기까지 한다. 산산조각 난 팩시밀리. 가해자들은 통쾌한 모습으로 자리를 떠난다.(로맨틱 코미디 영화 ‘오피스 스페이스’ 중)
"복사기를 발로 차면 '로봇윤리'에 어긋날까"
(사진) 미국의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공개한 2015년형 4족 보행 로봇 스폿(Spot). 이 영상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 관계자들은 스폿의 균형 감각을 시험하기 위해 막대기로 밀거나 넘어뜨린다. /CNN 캡처

#. 장면 둘. 로봇 개발로 유명한 미국의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15년 4족 보행 로봇 모델인 ‘스폿(Spot)’을 공개했다.

이 동영상에서 스폿은 사무실과 거리를 어슬렁거리는데 제대로 균형을 유지하는지 시험하기 위해 직원들이 일부러 스폿을 차거나 힘껏 밀기도 한다. 2016년 소개된 인간 모형을 한 2족 보행 로봇인 아틀라스(Atlas)의 처지도 비슷하다.

이 회사 직원들은 아틀라스가 넘어졌을 때 제대로 일어나는지 시험하기 위해 커다란 막대기로 아틀라스의 등을 힘껏 밀어 넘어뜨린다.(유튜브 ‘Robot gets hilariously abused’ 중)

두 장면을 차례대로 상상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두 장면은 기계를 괴롭히는(?) 모습을 비교한 것이다. 첫째 장면에서는 팩시밀리를 두들겨 팼고 둘째 장면에서는 4족과 2족 보행 로봇을 발로 차거나 밀어 넘어뜨린다.

첫째 장면은 아마 우리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접하는 모습일 것이다. 복사를 하다가 종이가 걸리면 복사기를 두드리면서 종이가 잘 나오게 시도한다. 프린트를 할 때 색깔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면 프린터를 힘껏 흔들기도 한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모니터를 툭툭 쳐보는 것이다.

혹시 이렇게 기계를 두드릴 때 마치 사람을 때리는 것처럼 감정의 동요가 생길까.

둘째 장면은 아직 실생활에서 경험하기 힘들다. 로봇이 보편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장난감 로봇을 생각해도 좋다. 소니가 만든 아이보(Aibo)를 비롯해 와우위의 칩(CHiP), 스핀마스터의 줌머(Zoomer), 한국 기업인 앙토가 만든 제로미(Jeromi)는 인공지능형 로봇강아지다.

이 로봇강아지는 인공지능 기능을 탑재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그에 맞춘 대화도 하고 움직인다. 춤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쓰다듬으면 웃는다.

앞에서 한 질문을 다시 한 번 해보자. 혹시 이런 인공지능형 로봇강아지를 누군가 때리거나 흔들면서 험하게 다룬다면 팩시밀리나 복사기의 예처럼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기계를 다루는 것과 같은 똑같은 감정이 들까.

◆반려로봇에 느끼는 특별한 감정

2015년과 2016년 스폿과 아틀라스가 동영상을 통해 소개됐을 때 사람들은 놀라운 기능에 환호성을 질렀지만 동시에 스폿과 아틀라스가 불쌍하다며 로봇에 이런 잔인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로봇에 잔인한 짓을 하지 말라는 사이트(http://stoprobotabuse.com)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CNN·포천·뉴요커 등 유수의 방송과 언론에서 이를 다뤘다. 동물을 닮거나 사람과 닮았다면 우리가 로봇에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 개를 닮은 로봇을 발로 차거나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을 괴롭히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일까.

최근 로봇과 관련해 로봇 윤리 이슈가 부각되고 있다. 로봇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고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는 산업용 로봇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간과 정서적인 측면에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소셜 로봇(social robot)이 등장하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은 로봇을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용 로봇으로 구분한다. 소셜 로봇은 서비스용 로봇에 포함되며 인간과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반려로봇(companion robot)이라고도 한다.

인공지능 소셜 로봇은 인간의 규범·윤리·가치를 이해하는 로봇으로, 사람의 행동에 감성적으로 반응해 인간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인간과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로봇이다. 하지만 소셜 로봇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떤 형상을 갖출 필요는 없다.

인간과 채팅하는 로봇인 챗봇처럼 인터넷을 통해 사용자와 대화하는 소셜 로봇의 범주다. 아마존의 알렉사(Alexa), SK텔레콤의 누구, KT의 기가지니, 네이버의 아미카와 같은 인공지능 음성인식 등이 소셜 로봇의 한 형태다.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면 소셜 로봇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형상화된 소셜 로봇은 윤리 문제가 더 고려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와 친숙한 모습으로 만들어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러한 로봇은 크게 휴머노이드(humanoid)와 안드로이드(android)로 나뉜다.

먼저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형태를 한 로봇으로, 인간의 신체와 유사하게 만들어 인간의 행동을 하게끔 만든다. 앞서 ‘장면2’에서 예를 든 아틀라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형상을 한 휴머노이드다.

안드로이드는 쉽게 말해 인조인간이다. 외모는 물론 동작이나 지능까지 인간과 거의 같지만 실제 이를 구현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는 사람 모양의 로봇은 모두 휴머노이드다.

휴머노이드는 종교·철학·예술 분야에서 얘기하는 의인관의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의인관은 인간이 비인간적 실체에 인간의 성격·감정·의도 등을 부여하는 것을 말하는데 소셜 로봇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행동을 따라 하며 인간이 갖는 성격을 갖고 인간처럼 생각한다면 그 로봇은 인간처럼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너무 어렵다면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을 생각해 보라.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몬티는 우리 가족이다. 잘 때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 눕고 식사 시간에는 식탁 밑에서 함께 식사를 한다. 몬티는 인간처럼 생기지 않았고 인간의 행동을 하지 않으며 더욱이 인간처럼 생각하지도 않지만 우리는 이들을 가족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반려로봇이라고까지 부르는 소셜 로봇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까.

◆의인화하면 ‘로봇학대’ 논쟁 불붙을 것

물론 로봇의 의인화가 사회적으로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본의 모리 마사히로 로봇 공학자는 1970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라고 주장했다.

로봇이 점점 더 사람의 모습과 흡사해질수록 인간이 로봇에 대해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바로 ‘불쾌한 골짜기’다.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뚝 떨어지는 모양을 골짜기로 표현한 것이다.

이 골짜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로봇의 외모와 행동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행태를 인간과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만들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호감을 갖게 되지만 정교해질수록 인간의 기대치가 높아진다.

따라서 기대치가 일치되는 로봇이 만들어지면 호감도가 다시 높아지고 결국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감정의 수준에까지 접근할 수 있다. 로봇에 대한 의인화가 이뤄지는 지점이다.

사실 로봇은 복사기와 다를 것이 없다.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인간의 관점은 또 다른 문제다. 내가 그렇게 인식하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인간의 태도·믿음·가치관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나 인간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스폿과 아틀라스를 통해서도 어떤 사람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로봇을 의인화하면 로봇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 어쩌면 동물학대보다 더 큰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동물과는 결혼할 수 없지만 로봇과는 결혼은 물론 성관계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로봇시민법과 로봇세, 로봇 의인화까지 로봇이 우리의 일상에 들어오면서 편리함과 함께 고민거리도 더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