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와 ‘잭 리처(2012년)’,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연한 ‘데몰리션 맨(1993년)’, 최근 후속편 개봉으로 원작에 대한 관심이 더해진 해리슨 포드 주연의 ‘블레이드 러너(1982년)’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생체 인식 기술이 사용된 장면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지문 인식과 망막이나 홍채 인식 등을 통해 신분 확인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래 사회를 다룬 공상과학 영화에서 주로 사용돼 왔다.
그랬던 영화 속 생체 인식 기술이 최근 현실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대중에게 익숙해진 생체 인식 기술은 그 성장세가 폭발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스트래티스틱스MRC에 따르면 세계 생체 인식 기술 시장은 2016년 약 3조5000억원(32억4000만 달러) 규모였던 것이 2023년 약 13조4000억원(122억2000만 달러)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시장조사 업체인 리포트링커는 2022년 약 33조원(294억 달러)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체 인식 기술은 사람마다 다른 인간의 특정 생체 정보를 자동화된 장치로 추출해 본인 여부를 판별하는 기술이다. 생체 인식에서 사용되는 신체 특징은 지문·망막·홍채·얼굴 등의 신체 부위뿐만 아니라 서명·걸음걸이 등과 같은 행동 습성도 포함된다.
생체 인식 기술의 핵심은 누구나 갖고 있는 정보를 대상으로 하고 그 정보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때 활용되는 정보는 변하지 않아야 하고 변화시킬 수도 없어야 한다. 그리고 센서로 정보를 추출하는 방식이 편리해야 하고 정보 보안이 강해야 한다.
생체 인식 기술이 각광받는 큰 이유는 생체 인식만이 갖는 편리성과 보안성 때문이다. 온라인 비밀번호처럼 굳이 대문자·소문자·특수문자와 숫자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도 된다. 단 한 번의 터치나 스캔으로 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편의성과 함께 개인의 생체 정보를 빼내기 쉽지 않아 보안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생체 정보가 한 번 유출되기만 하면 돌이킬 수 없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네트워크 환경에서 안전하게 생체 인식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조직된 대표적 단체가 ‘피도연맹(FIDO Alliance)’이다. 피도연맹은 전 세계 200개 다국적 글로벌 기업이 생체 인식 기술을 활용한 인증 방식 기술 표준을 정하기 위해 2013년 2월 설립된 조직이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알리바바·인텔·비자 등 해외 기업을 포함해 삼성전자·LG전자·BC카드·SK텔레콤 등 많은 국내 기업 등이 참여해 국제 인증 기술 표준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약 30억 명의 사용자가 피도연맹의 인증 방식을 따른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생체 인식 방법에 따라 기술 역시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생체 인식 기술은 대체로 △사용자의 생체 정보를 추출하고 저장하는 단계 △생체 정보를 통해 사용자 본인임을 확인하는 인증 단계 △데이터베이스의 수많은 기록 중 사용자를 찾아내는 식별 단계 등으로 기술 영역이 구분된다.
①지문 인식
먼저 가장 오랫동안 사용된 방식인 지문 인식 방법이 있다. 피부 표피 밑층인 진피 부분이 손상되지 않는 한 평생 변하지 않기 때문에 생체 인식 기술로 가장 널리 쓰인다. 개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기계에 접촉하는 방식으로 인식률이 높아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 출시된 삼성전자 스마트폰인 갤럭시 시리즈나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에서도 가장 먼저 지문 방식이 채택될 정도로 활용도가 높다. 단, 땀이나 먼지 등으로 인식률이 떨어진다는 점과 손의 상처나 변형에 민감하고 접촉 방식으로 본떠 위조할 수 있다는 문제는 단점으로 꼽힌다.
②음성인식
음성인식은 사람마다 말하는 습관과 억양에 따른 고유한 음의 높낮이 정보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이용한 방법이다. 음성인식은 사용자의 음성을 저장한 후 입력 음성의 패턴과 저장된 음성의 패턴을 비교하는 패턴 매칭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다른 생체 인식 기술과 달리 현장에 있지 않아도 전화로 확인할 수 있고 손과 발 등 물리적 조건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보안보다 사물인터넷(IoT)과 연관돼 구글 ‘홈’이나 아마존 ‘에코’, KT ‘기가 지니’와 SK텔레콤 ‘누구’처럼 인공지능(AI) 스피커에서 비서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개발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기술 수준도 높지 않아 스마트폰이나 인공지능 스피커와 같은 기기에서 쓰이며 앞으로 활용 범위가 가장 넓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낮은 인식률과 주변 환경의 잡음, 음성 모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숙제다.
갤럭시 S8, S8플러스에도 채택된 홍채 인식과 얼굴 인식 기능은 최근에 가장 뜨는 생체 인식 기술이다. 이 중 홍채 인식 기술은 사람마다 고유한 특성을 가진 안구의 홍채 패턴을 이용한 기술이다. 검은 동공과 흰자위 사이에 있는 도넛 모양의 홍채를 인식하는데 정확성, 안정성, 사용 편리성, 처리 속도 면에서 가장 진일보한 생체 인식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홍채 인식의 가장 큰 장점은 편리함이다. 기존의 망막 인식 기술은 눈을 기기에 밀착시켜 스캔해야 했기 때문에 불편함과 동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일정 정도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홍채 인식은 카메라를 2초 정도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인식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고 정확하다. 홍채는 복제가 불가능하고 일생 동안 변화하지 않으며 렌즈나 안경을 착용하더라도 높은 인식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장 진보된 생체 인식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고가의 기술이라는 것이 대중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④얼굴 인식
얼굴 형태를 3차원 영상으로 파악하거나 얼굴 혈관에서 발생하는 열을 분석하는 방법 또는 눈·코·입 등의 위치 정보를 포함한 얼굴의 전체 윤곽 정보를 추출한 후 인증하는 것이 얼굴 인식 기술이다.
갤럭시 S8의 얼굴 인식 방법은 전면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의 안면 전반을 스캔한 후 딥러닝 기반의 얼굴 인식 기술을 통해 사용자의 얼굴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딥러닝 방식이므로 사용할수록 학습량이 늘어 정확도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애플 역시 ‘아이폰 X(텐)’에서 ‘페이스 ID’를 통해 안면 인식 기술을 선보인다.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과 같은 하드웨어와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이 함께 작동해 정확성과 보안성을 확보하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딥러닝 기반의 얼굴 인식 기술을 활용한 사진 분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구글은 최근 실내용 보안 카메라인 ‘네스트 캠 IQ’를 소개했는데 안면 인식 기술을 사용해 비디오에 찍히는 사람을 구별한다. 얼굴 인식 기술은 카메라와의 거리가 멀어도 적용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인식 과정을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빛과 같은 외부 환경과 자연 노화나 성형 등의 자연적인 변화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숙제로 남는다.
⑤정맥 인식
최근에는 정맥 인식 기술을 활용한 보안 기술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정맥 인식 기술은 손바닥·손등·손목에 있는 정맥 형태를 인식하는 기술이다. 적외선과 필터를 사용해 혈관을 투시한 후 잔영을 이용해 정보를 추출한다. 혈관 모양으로 인식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중화의 가능성은 낮지만 안보나 금융 등 보안이 특히 중요한 분야에서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정맥 인식 기술 기반의 보안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용
이 밖에 걸음걸이, 귀 모양, 유전자 정보, 서명 등 생체 인식의 범위가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생체 인식 기술은 IoT 기반 서비스가 대중화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채택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분야만 해도 휴대전화나 자동차 등 사용자 인증이 필요한 기기 분야, 모바일 뱅킹이나 전자 상거래, 결제 수단 등으로 사용되는 금융 분야, 전자주민증이나 출입국 심사에 사용되는 공공 분야, 닮은 사람 찾기나 유명인과의 유사율을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 분야, 전자처방전이나 환자의 신분을 확인하는데 사용되는 의료복지 분야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생체 인식 기술이 대중화됨에 따라 안전성과 편리함을 얻는 것은 물론 영화에서 봤던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한경비즈니스=정동훈 광운대 교수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