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기업, 디지털 혁신 통해 ‘기하급수 기업’으로 변신해야 생존할 수 있다

[한경비즈니스 칼럼=전창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모토로라는 1990년대 말 ‘이리듐’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었다. 지구 저궤도에 77개의 인공위성을 띄워 세계 어디에서든 단일 가격으로 이동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동통신 기지국 건설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다.

모토로라는 전 세계를 커버하는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50억 달러를 투자했다. 100만 명이 위성전화기 한 대에 3000달러씩 내고 추가로 분당 5달러의 이용료를 낸다면 이리듐은 금방 수익을 낼 것이라는 예측을 기반으로 한 투자였다.

하지만 이후 기지국 설치비가 저렴해지고 네트워크 속도가 차츰 개선되면서 위성 이동전화의 경쟁력이 급격히 저하됐다. 이리듐 프로젝트는 기술혁신의 가장 드라마틱한 희생양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리듐의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실패 원인은 기하급수적으로 변하는 기술의 발전을 모토로라가 산술급수적 시각으로 외면한 데 있다.

◆‘포천 500대 기업’의 70% 곧 망한다

왜 대기업은 외부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할까. 대기업의 관심과 초점은 기본적으로 내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내부에 충분한 자원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부의 사다리를 잘 타고 올라가기만 해도 충분한 보상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외부와의 협업 대신 내부 조직 논리 중심으로 반응하고 행동한다. 설령 외부의 혁신 기술에 대해 관심을 갖더라도 자신들과 연관된 기술에 한한다.

물론 과거에는 이러한 행태를 고집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모토로라만 하더라도 2011년까지 생존했다. 하지만 이제는 변해야 한다. 세계 500대 기업의 평균수명은 1950년대엔 45년이었지만 2016년 기준 15년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로 불리는 비벡 와드와 카네기멜론대 교수나 존 챔버스 시스코 회장은 ‘포천 500대 기업’의 40~70%가 10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기하급수 기업은 디지털 혁신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을 의미한다. 비즈니스의 모든 과정을 디지털화하고 고객과 함께하는 과정 전부를 변화시키는 것, 직접적 상호작용부터 백 앤드 프로세스 등 모든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고객을 향해 정렬하는 것이 바로 ‘빙 디지털(Being Digital)’, 즉 디지털 혁신이다.

기하급수 기업으로의 변신은 단지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달린 문제가 됐다. 기하급수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각 기업의 인식과 조직 문화, 기준점, 추진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혁신 위해선 사람부터 바꿔라

첫째, 디지털 혁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닌 사람의 변화에 있다. 기술을 혁신하는 것에 앞서 각 기업의 임직원을 어떻게 스스로 혁신해 나갈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경직되고 닫혀 있고 의사결정이 느린 기존 조직에 디지털 기술을 일부분 적용했다고 해서 기하급수 기업이 될 수는 없다.

기업 내·외부의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고객과 함께하는 전 과정에 디지털 기술이 적용돼야만 디지털 혁신을 통한 기하급수 기업으로 성공적인 변신이 가능하다.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한 툴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인 싱귤래러티대는 포천 500대 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혁신 파트너 프로그램’이라는 4일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해당 교육 프로그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일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다.

둘째, 외부에 대해 개방적이고 내적으로는 자율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혁신은 조직 밖에 있고 천재들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구글X(구글 글라스, 자율주행차 등을 주도)와 같은 회사 내부의 파괴적 혁신 팀에 의한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로 변혁할 필요가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2013년 크라우드 소싱 사이트인 캐글과 함께 플라이트 퀘스트라는 상금 경진 대회를 열어 알래스카항공의 비행시간 연착 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줬다. GE는 개방적 태도를 바탕으로 제조업 위주의 회사를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회사로 완전히 변화시켰다.

삼성전자도 2013년 실리콘밸리에 이노베이션센터를 만들어 외부 혁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있다. ‘C 랩(Lab)’이라는 사내 창업 스타트업 플랫폼을 구축, 조직 내부에 스타트업 문화를 전파·확산하는 등 조직 문화를 자율 창의 중심의 수평적 조직 문화로 바꿔 나가는 중이다.

◆디지털 혁신의 기준점은 고객이 돼야 한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법
(사진) 아마존 물류센터의 짐꾼 로봇 ‘키바’. /한국경제신문

셋째, 기준점에 대한 생각이다. 디지털 혁신의 기준점은 고객이 돼야 한다. 최근 세계 최고의 부자로 등극한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고객을 중심에 둔 끊임없는 자기 파괴적 혁신으로 유명하다.

베조스 창업자는 “전략은 변하지 않는 것에 토대를 둬야 한다. 사람들은 내게 5년 후나 10년 후 무엇이 변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묻고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세상이 변하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제공한다면 고객은 외면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쟁자에게 집중하다 보면 뭔가를 시도하는 경쟁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고객에게 집중하면 훨씬 더 주도적이고 전향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은 현재 고객의 가치인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를 넘어 고객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가치인 ‘고객이 원할 것 같은 것을, 원할 것 같은 시간에’ 보내주는 ‘온디맨드(On demand : 수요 중심)’전략을 위해 자기 파괴적 혁신을 지속 중이다.

아마존이 물류센터에 ‘키바 로봇’을 투입하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드론을 통해 예측 배송을 추진하며 원클릭 주문 대시 및 음성인식 인공지능(AI) ‘에코’ 등으로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덕분에 2001년 5달러까지 떨어졌던 아마존 주가는 현재 1110달러로 치솟았고 베조스 창업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됐다.

◆스타벅스, 혁신 통해 수익 모델 창출

넷째, 리더십의 변혁도 빼놓을 수 없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는 스타벅스 창사 이후 첫 적자를 기록한 2008년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다시 복귀했다. 그가 CEO 복귀 후 추진한 것은 디지털 혁신이었다.

그는 당시 “아날로그적 고객의 커피 경험을 디지털 혁신을 통해 더 완전하고 매끄럽게 돌려주겠다”며 “내가 떠나 있던 지난 8년간 세상과 고객의 소통 방법이 변한 만큼 디지털 혁신을 통한 고객 경험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슐츠 CEO는 이후 회사의 디지털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2009년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앱)을 론칭했고 2011년 로열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2012년 모바일 결제를 가능하게 하고 2014년엔 스타벅스 앱에 한국에서 시작된 사이렌 오더와 위성항법장치(GPS) 기능을 더해 현재의 마이 스타벅스 앱을 완성했다.

그간 스타벅스에서의 다양한 경험 중 고객을 불편하게 했던 기다림과 종이 적립 카드의 불편함, ‘나만의 커피 만들기’의 어려움, 누적에 따른 보상 등을 매끈하게 해결함으로써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스타벅스의 매출은 연평균 10% 이상 성장했다. 올 상반기 스타벅스 매출의 3분의 1은 스타벅스 앱을 통해 발생했다. 1600만 명이 스타벅스 앱에 가입한 미국에서는 해당 앱에 적립된 고객 충전금이 약 12억 달러에 달하는 등 새로운 수익 모델이 창출됐다.

슐츠 CEO의 리더십이 스타벅스의 성공적 디지털 혁신과 고객 경험의 변화는 물론 새로운 수익 모델의 창출까지 이끌어 낸 셈이다.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을 통해 기하급수 기업으로 변신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은 기술이 아닌 일하는 방법의 문제’라는 확고한 인식 아래 조직 문화를 바꾸고 고객이라는 기준점을 정하고 리더가 앞장선다면 낙타도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