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
‘1등 워크숍’ 여는 KT, 직원 성향 분석하는 신세계

[한경비즈니스 칼럼=오승리 HSG 휴먼솔루션그룹 전문교수] 1950년대에는 60년, 지금은 15년. 뭘 의미할까. 기업의 평균수명이다. 시장이 급변하고 기업의 흥망 속도가 빨라졌다.

따라서 온라인 쇼핑몰 회사 자포스의 ‘홀라크라시(holacracy : 관리자 직급을 없애 상하 위계질서에 의한 의사 전달이 아닌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제도)’처럼 두터운 계층구조를 버리고 가볍고 유연한 조직으로 재구성하거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 ‘님’이나 ‘매니저’로 불러보기도 한다.

하지만 세대 간 위계가 확실한 한국의 기업 문화에선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도리어 책임과 권한이 명확한 것이 더 효율적이고 의사결정도 빠르다는 이유로 몇 년 만에 기존의 직급제로 되돌리는 조직도 있다.

혁신을 위해서는 직급이나 호칭 파괴보다 본질적 고민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혁신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이 세 가지부터 시작해 보자.

◆첫째, 현장의 문제부터 해결하라

새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 판매하려는 조직에서 흔히 나타나는 광경이 있다. 영업 현장에서는 ‘뭐 이렇게 비싸고 딱히 필요도 없어 보이는 걸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한다. 개발 또는 마케팅 담당자는 ‘그 좋은 서비스를 왜 팔지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비난하기 바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로 시작한 서비스를 불완전한 상태로 출시해 도리어 소비자에게 외면 받는 일이 많다.

하지만 막상 개선하려고 나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관련 부서와 담당자가 총동원돼 해결책을 찾고 의견을 정리하지 않는 한 서로 책임을 미루며 제자리걸음할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하나둘 쌓여 가는 내부의 고질적 문제 상황을 해결한 국내 기업이 있다. KT는 ‘1등 워크숍’으로 관련 문제를 해결했다.

KT에서는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든지 워크숍을 요청할 수 있다. 요청이 접수되면 사무국에선 현장의 문제와 해결책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모은다. 그리고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진행하에 직위나 직책에 상관없이 ‘계급장’을 떼고 토론할 자리를 만들어 준다.

‘검토해 보겠다’는 말과 함께 손뼉 치고 끝내는 빤한 워크숍이 아니다. 책임과 권한을 가진 사람이 토론 결과를 승인해 실제로 집행해야 한다. 토론에서 나온 해결책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그 자리에서 답변해야 한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이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내놓은 솔루션이 실제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참석자들에게 e메일로 알려줘야만 워크숍이 완료된다.

KT는 지난 20년간 최고경영자(CEO)가 바뀔 때마다 ‘혁신’을 외쳐 왔다. 따라서 구성원들의 ‘혁신 피로감’이 상당했다. KT는 오랜 고민 끝에 잘 먹히지 않는 ‘톱다운’ 방식의 혁신을 내려놓고 ‘구성원이 체감하는’ 문제부터 혁신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1등 워크숍’이다.

해당 워크숍에 총 3만5000여 명의 직원이 참여해 2400여 개의 의제를 토론했다. 워크숍에서 결정된 내용 중 70% 이상이 현장에서 실행됐고 약 3879억원의 매출에 기여했다. 그 덕분에 KT는 이전의 보수적 이미지를 버리고 첨단 정보기술(IT)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과정에서 덤으로 얻은 선물도 있다. 조직 문화의 변화다. 워크숍에서 만나 얘기했던 사람들이 서로 명함을 교환한 뒤 궁금한 점이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연락해 의견을 나누고 교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장의 고민에서 시작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제안이 반영된다고 느낄 때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혁신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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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T의 ‘1등 워크숍’. /KT 제공

◆둘째, 의도적으로 강점을 찾고 활용하라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같은 사람이 같은 일만 하면 발전할 수 없다. 새로운 정보와 사람이 흘러야 조직에 활력이 생기고 혁신이 일어난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많은 조직이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지닌 인재들을 수혈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그런데 결과는 다르다. ‘사람 잘 뽑아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회사를 그리 많이 보지 못했다. 인재는 불러왔지만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월등한 기획력을 지닌 인재를 뽑아놓고 서비스 원가절감 아이디어를 요구하거나 품질 개선 등 지금까지 해 온 일에 매달리게 해서다. 물론 얻은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당장 서비스의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만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도록 해야 할 사람이 다른 직원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일만 하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자주 일어나는 ‘평준화의 함정’이다.

효율을 추구하는 것은 조직의 숙명이다. 이 때문에 안전하고 검증된 방식으로 일하기 원하고 개성 많은 직원을 뽑아 자꾸 해당 조직이 익숙하고 잘하는 방식에만 맞추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평균 정도의 성과는 낼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고 그걸 통해 혁신을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된다.

페이스북은 이런 상식을 뒤집어 접근했다. “일에 맞춰 인재를 뽑을 게 아니라 인재에게 맞는 일을 찾아 주는 게 조직이 할 일이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가 한 말이다.

실제 페이스북은 채용이 확정되면 강점을 진단 받아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일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인재들을 활용한다.

조직을 안전하게 이끌려면 약점을 보완하고 이전의 방식에 맞추면 된다. 하지만 차별화한 혁신을 이끌고자 한다면 구성원이 지닌 강점에 집중하고 극대화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신세계그룹도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해 수개월에 걸쳐 직원 300여 명 개개인의 강점 기반의 성향 분석을 마쳤고 협업하기 전 상대방의 성향과 강점을 미리 볼 수 있도록 서로에 대한 정보를 제공 중이다.

외부에서 수혈된 경력 직원과의 소통이나 신규 계열사의 내부 통합을 위한 노력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업무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모이면 굉장히 불편하다. 그 불편함 때문에 내부 통합 과정에서 조직은 평준화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좀 튀지 않고 행동이 계산 안에 들어와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혹을 깨려면 새롭게 수혈된 인재들이 업무와 소통에서 각각의 강점에 주목하고 개발하는 의도적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강점 찾기는 구성원의 직무 연결 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다양성을 수용하는 조직의 그릇을 키우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원칙과 룰을 공유하라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한 회사의 업무 규칙이다. 9시 1분,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할까. 언뜻 보면 제조 회사에 붙어 있을 법한 규율 같다. 아니다. 젊고 창의적인 조직으로 잘 알려진 ‘우아한 형제들’의 내부 규칙이다.

‘우아한 형제들’은 온라인 주문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 민족’으로 창업 6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목전에 두고 있는 회사다.

이들의 가파른 성장에 대해 주변에선 이런 분석도 나온다. 파티션이 없고 고정 좌석도 없는 놀이터 같은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다양한 배경과 사고를 지닌 인재들이 모여 토론하는 문화 덕분이라고…. 하지만 내부의 생각은 다르다. 자유롭고 즐거워 보이지만 오히려 이면에 존재하는 엄격한 규율과 질서를 강조한다.

‘혁신’ 하면 왠지 회사 휴게실에 당구대 하나는 놓아야 할 것 같고 자유로운 복장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원칙과 기준이 서지 않을 때 자유로움은 오히려 혼란이 될 수 있다.

‘협업할 땐 최소한 이것만큼은’, ‘보고할 때는 이것만큼은 지키자’는 식으로 이견을 줄일 만한 원칙과 룰이 있을 때 서로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일에 몰입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쌓이다 보면 창의와 혁신은 자연스레 꽃을 피운다.

무엇이 조직을 혁신적으로 만들까. 호칭을 파괴하고 조직을 쪼개보고 다양한 인재를 등용하는 노력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본질적 고민을 놓치지 말자. 너무 멀리 말고 구성원이 공감하는 현장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불편한 스타일 속에 숨겨진 강점을 찾아 활용하는 의도적 노력을 기울여 보자.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원칙과 기준을 세우자.

결국 혁신이란 것도 파격이 아닌 기본을 갖추는 노력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